누가 장애인인가?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누구든 장애 당할 수 있어..’남의 일’ 아냐 OECD국중 최저...국가는 돕지 않았다 “장애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전장연 홈피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전장연 홈피

“난 사지마비 환자예요. 어린아들과 침대에 누워 있는데 물이 빠르게 치고 올라와요. 제발 도와주세요.”

2005년 하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휩쓸었을 때 실제로 있던 일이다. 제방이 무너져 마을의 60%가 물에 잠겼지만 홍수에 이동권과 돌봄서비스를 빼앗긴 중증장애인들은 꼼짝없이 사지에 내몰려야 했다. 급히 911에 전화를 했으나 도움은 없었다. 장애인 구조계획 자체가 잡혀있지 않은 탓이다. 당시 48만 4000 뉴올리언스 주민 중 23.2%만이 도시를 빠져나갔는데, 홍수가 났을 때 다섯 살 이상의 장애인이 10만2122명이었다. 장애인이 카트리나에 얼마나 희생당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장애인 희생자 비율이 훨씬 더 컸으리라는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구든 장애 당할 수 있는 사회

요즈음 뉴스매체를 통해 장애인단체 이동권 시위 장면을 종종 접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나도 반쯤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병이 몸을 괴롭히더니 몇 해 전부터인가 왼쪽 눈을 쓸 수가 없다. 사물 식별이 불가능하고 모두 뿌연 안개로만 보이는데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단다. 아직 한 눈이 멀쩡하니, 공간 감각이 조금 흔들릴 뿐 평소대로 식사 준비하고, 번역하고, 글 읽고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이따금 ‘행여 남은 한 눈마저 고장 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와 가까워진다는데 나라고 아니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현재 우리 국민 5% 이상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어느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시력을 잃으면야 지금까지의 삶을 빼앗기고, 신통치 않지만 글과 번역으로 유지해오던 수입을 완전히 잃고,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면 가족들에게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멍에를 지우게 될 것이다. 당연히 두렵고도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장애인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다. 난 기어이 포탈 뉴스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기함을 하고 말았다.

“전장연 하는 행동 보면 장애인에 대한 없던 편견, 고정관념이 생긴다.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 장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네. 왜들 그러세요?”

“세상이 장애인 된 것에 빚진 것, 책임질 것 하나 없다. 세금 내서 많은 것을 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막가도 되는가? 분수를 알고 자중하길 바란다. 그리고 경찰은 강하게 법 집행해라.”

영원히 장애를 피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댓글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장식하고 그 댓글에는 수백, 수천 명이 “공감”을 표했다.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편견과 차별이 심하다는 것도 알고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해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익히 일고 있다. 다만,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일이니까 저럴 수도 있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정말 저 사람들은 영원히 장애를 피할 자신이 있는 걸까?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식은? 평균 재해율이 0.63%에 달하고(일본 0.14%, 영국 0.03%), 지난해 산재피해자가 12만 명을 넘고 사망자가 2000명을 넘어선 나라에서? 더욱이 중대재해법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며 대대적으로 손을 보겠다는 정부가 아닌가.

저 댓글들 말마따나 “장애인에게 빚진 것, 책임질 것”이 하나도 없을까? 정말로 세금으로 많은 것을 해주고 있을까? 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0.6% 수준으로 멕시코(0%), 터키(0.5%)에 이어 최하위이며(OECD 평균은 1.9%이고, 1위인 덴마크는 4.4%에 달한다). 이 비교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장애급여·상병급여 공적지출 비율은 0.3%이고 OEDC 평균의 1/3 수준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게 “장애는 개인의 문제이니 개인이 해결하라”는 식의 시각이다. 장애인 이동시위에 대한 비아냥 댓글도 그런 시각에서 출발할 것이다. “네가 못나서, 네가 잘못해서 병신이 되어놓고 왜 국가한테 항의하며 시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냐?” 톰 크루즈가 상이군인으로 나온 영화 『7월 4일생』에 보면 론 코빅(톰 크루즈)이 하반신마비로 치료를 받는 중 기계가 고장나자 의사가 이런 말을 한다. “베트남전 때문에 예산이 삭감됐죠. 정부에서 치료비를 주지 않아요.” 말하자면, 정부가 젊은이들을 실컷 이용해 놓고 정작 장애인이 되자 부담이 된다며 내동댕이쳤다는 뜻이다.

시위대를 이끄는 론 코빅. 영화 '7월 4일생'의 스틸 컷.
시위대를 이끄는 론 코빅. 영화 ‘7월 4일생’의 스틸 컷.

장애인이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유전병인 경우도 있지만, 론 코빅처럼 전쟁터에서 다칠 수도 있고 안전망이 부족한 건설현장에서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자연재해로 변을 당하기도 한다. 자료를 보면 가난할수록, 교육을 받지 못할수록, 환경이 열악할수록, 영세한 기업에서 저임금으로 일할수록,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사고를 당하는 피해자가 대부분 하청업체 직원인 이유도 그래서다.

국가는 충분히 우릴 돕고있을까

장애인이 되면 일자리를 잃고 사회에서 배제되어 경제수준이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빈곤율은 30%를 넘는 수준으로 일반 가정의 두 배가 넘는다. 물론 OECD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장애인이 되면 이동권 등의 문제로 교육을 받기 어렵다.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은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 절반이 넘었다. 전국민의 평생교육 참여율이 36.8%이지만 장애인의 경우는 0.2%에 불과했다. 장애가 학력저하로 이어지고 빈곤의 세습을 낳고 있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생활이자 생명이다.

그런데, 정말로 저 댓글처럼 장애인이 국가의 세금을 좀 먹는 걸까? 우리는 누구나 정부의 돈을 타먹고 있다. 나 역시 올해부터 국민연금 대상자가 되어 매달 60만 원 가까이 돈을 받아먹는다. 우리 모두 코로나 정국에서 몇 차례 지원금도 받았고, 새정부는 자영업자들에게 총 50조원 규모의 보상액을 결정했다. 대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사고를 내서 장애를 입으면(도산하면) 정부는 수십 조, 수백 조 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장애인이 개인의 불행이라면, 자영업자, 기업 역시 각자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케네디, 부시는 장애인들의 돈을 빼앗아 전쟁놀이에 쏟아부었지만, 2022년 우리 정부는 부자들에게 돈을 퍼주기 위해 국민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장애인의 몫까지 빼앗아간다. 누가 뭐래도 전장연의 시위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정당한 방식이다.

장애인의 몸이 불편하고 활동에 제약이 있는지 몰라도, 그렇다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고방식까지 잘못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저런 끔찍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묻고 싶다. 신체가 건강하다는 이유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정상일까? 얼마나 더 착할까? 신체에 문제가 없다고 정신이 장애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불이 나거나 홍수가 나면 임산부, 장애인, 노인, 아이 등 약자부터 구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도덕론은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더 골치거리

고인이 된 사지마비 환자 마타 러셀(1951~2013년)은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와 장애 Capitalism & Disability』(2013, 국내 미출간)에서 부시의 장애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하소연한다.

“대중문화에서 종종 장애/불구를 악과 골칫거리의 상징으로 해석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진짜 정신병자를 뜻함)는 바로 신체 건강한 부시와 도널드 림스펠드 같은 인간이다…부활한 구세주 대통령 부시는 주님께서 친히 전쟁을 시작하라고 했다는데…이른바 말 그대로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니겠는가?…악행을 미화하기 위해 종교깃발을 흔들어대는 자들은 왜 정신검증을 받지 않는 걸까?”

김승섭 교수 역시 자신이 번역한 『장애의 역사』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애의 역사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또한 현재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고 미래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논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이 모든 복잡함을 간직한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론 코빅 병장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후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대정부시위의 선봉에 서서 전쟁 반대와 차별 철폐를 외치기 시작했다.

글쓴이

조영학 출판번역가

조영학 출판 번역가는 텃밭을 가꾸고 야생화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일을 좋아하며, 20년 가까이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 저서로는 <천마산에 꽃이 있다>, <여백을 번역하라>,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공저), <살아있는 동안 꼭 봐야 할 우리 꽃 100>(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나는 전설이다>, <스티븐 킹 단편집> 등 90여 편이 있다. 현재 서울신문, 한국일보에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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