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텃밭에서부터 온다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겨울 게으름 걷어내듯 마음부터 바빠져 텃밭 놀이에 선물처럼 다가오는 ‘봄’

겨우내 덮어두었던 마늘 밭의 보온재를 거두고 있다. 사진=조영학
겨우내 덮어두었던 마늘 밭의 보온재를 거두고 있다. 사진=조영학

“여기, 냉이 올라왔다.”
“정말?”
“응, 이거 냉이 아닌가?”

곰보배추와 지칭개. 새싹이 올라오다가 추운 날씨에 냉해를 입었다. 사진=조영학
곰보배추와 지칭개. 새싹이 올라오다가 추운 날씨에 냉해를 입었다. 사진=조영학

모처럼 따뜻한 봄날, 점심 산책 중에 아내가 찾아낸 것은 냉이가 아니라 지칭개였다. 아내는 식물에 눈이 밝지 않아 매년 지칭개와 냉이를 헷갈려한다. 아직 냉이는 보이지 않지만 쑥과 곰보배추, 망초 등은 여기저기 새싹을 내밀기 시작했다. 따뜻한 남녘과 달리 이곳 경기 북부는, 매화 꽃눈도 아직 이르고 텃밭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가득하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어김없이 봄은 바로 곁에까지 와 있다.

다시 문을 여는 시골농장

2월 중순이면 겨우내 닫았던 농장의 문을 연다. 농장이라 해봐야 산 아래 50~60평의 텃밭과 과수 몇 그루, 그리고 6평짜리 농막 하나가 고작이지만, 난 매년 2월부터 11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아와, 이랑을 만들어 퇴비를 하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은 뒤 한여름 잡초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텃밭을 시작한 지 10년, 이곳 오지에 맹지를 사서 밭을 꾸리고 농막을 지은 지도 벌써 7년이다. 이쯤 되면 지칠 만도 하건만 올해도 우리 부부는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농장을 찾아와 겨울을 밀어내고 한해의 농사를 꿈꾼다.

올해 처음 만난 텃밭. 이제 이곳을 정리해 각종 작물을 심어야 한다. 사진= 조영학
올해 처음 만난 텃밭. 이제 이곳을 정리해 각종 작물을 심어야 한다. 사진= 조영학

봄이 오기도 전에 손부터 바쁜 이유

농사는 3월 중순 이후 감자가 시작이다. 미리 문을 여는 이유는 규모가 작은 농사에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장을 끝으로 방치해 둔 비닐멀칭을 거두고 이랑을 만들고 퇴비를 해서 한 해의 밭을 만드는 것도, 텃밭과 농막의 주변 정리도 꼭 필요한 일이다. 식물에 물이 오르면 일이 몇 배, 몇 십 배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식물이 그렇게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몇 년 동안 고생한 후의 깨달음이다. 텃밭, 농막은 반려동물과도 같다. 때가 되면 밥을 주고 털을 깎고 함께 놀아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어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만다. 작물이 농꾼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끊임없이 주인의 관심과 손길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 첫날은, 마늘밭에 겨우내 덮어두었던 보온패드를 벗기고, 뒷산 경사지에 마련한 두릅, 땅두릅 밭의 잡풀, 잡목을 깨끗이 정리했다. 농사는 어차피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다.

텃밭 놀이에서 봄은 특히 선물과도 같은 계절이다. 감자를 심고 난 후 본격적인 농사는 4월 말~5월 초에 시작한다. 열대성 작물인 고추, 오이, 호박, 가지 등을 일찍 심을 경우 자칫 동사하기 쉽다. 덕분에 그때까지는 이랑 준비 정도만 하면 어지간한 일은 끝이 난다. 한여름이면 잡초와의 싸움 때문에라도 휴식은 쉽지 않으나 그즈음이라면 주변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만나다

보온패드를 벗기니 그 안에서 예쁜 새싹이 인사를 한다.
보온패드를 벗기니 그 안에서 예쁜 새싹이 인사를 한다.

봄은 대한민국이 제일 아름다운 시즌이다. 산에는 복수초, 마을은 매화를 시작으로 온갖 풀꽃, 나무꽃들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는가. 또 하나, 이곳은 오지 깊은 산자락이라 온갖 노지 나물이 절정이다. 냉이, 쑥, 망초, 민들레, 씀바귀, 영아자, 산달래 등 작은 꽃나물도 좋지만, 고추나무, 화살나무 등의 새싹도 나물로 유명하다. 냉이, 망초를 데쳐 얼리거나 다래, 개다래순을 묵나물로 만들어두면 오래오래 맛난 나물들을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나물을 캐고 작물을 키우노라면, 땅은 사는(for 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for living) 곳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맞벌이 아내도 이곳에 오면 살 것 같다며 종종 감탄하지만 어쩌면 텃밭에 나와 흙을 만지고 더운 땀을 흘리고 싶어 하는 이유도 내가 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식물이 자유롭게 ‘사는’ 이곳에서 온갖 채소를 ‘살림’으로써 비로소 내가 ‘살아간다.’ 봄은 텃밭에서부터 온다.

<참고 자료>

텃밭, 즉 도시농업은 정부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사업이다. 2017년부터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4월 11일을 도시농업의 날로 정하고 도시농업법을 제정하여 각종 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도시농업 관리사’를 육성하는가 하면, ‘복지형 도시농업,’ ‘여가체험형 도시농업’ 등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텃밭 운영을 지원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10년 15만3000명에 불과했던 도시농업 참여자 수는 지난해 2020년 184만8000명으로 12배가량 증가했으며 텃밭 면적 역시 104㏊에서 1060㏊로 10배가량 늘었다. 정부는 2022년 올해까지 도시농업 참여자 수를 400만명으로, 텃밭 면적은 2000㏊로 확대할 계획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도시농업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7년 기준 1조 70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도시농업의 사회, 경제적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에는, 건물 옥상을 텃밭으로 활용하면 냉난방비를 16.6% 절감하고 가정의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텃밭을 통해 사람들이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텃밭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조사해본 결과, ‘정서적 친밀감’과 ‘공동체 의식’이 각각 10%, 9% 높아졌고 스트레스 지수는 11% 감소했단다.

2020년 비료·종자 등 농업용품 매출이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 텃밭 가꾸기를 취미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덕으로 분석됐다. 특히 팬데믹의 시대에 도시농업을 권하는 이유다.

글쓴이

조영학 출판번역가

조영학 출판 번역가는 텃밭을 가꾸고 야생화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일을 좋아하며, 20년 가까이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 저서로는 <천마산에 꽃이 있다>, <여백을 번역하라>,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공저), <살아있는 동안 꼭 봐야 할 우리 꽃 100>(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나는 전설이다>, <스티븐 킹 단편집> 등 90여 편이 있다. 현재 서울신문, 한국일보에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