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알면 달라지는 것-②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형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내의 한마디 ‘남성 특권 모두 버리기’ 20년후 얻은 행복 페미니즘, ‘세상’ 감옥을 함께 겪자는 권유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친구의 한마디와 아내의 한마디

몇 해 전 친구와 술 한잔하는데 이 친구 자기 부인한테 섭섭한 마음이 한 두름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나 정도면 좋은 남편 아니냐? 돈 잘 벌어다 줘. 가정에 충실해. 내가 바람을 피우냐 뭘 하냐? 도대체 뭐가 저렇게 불만이 많은 거지?” 우습게도 오래전 내가 품었던 오해이기도 했다.

신혼 초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하고 들어가도 아내는 불만이었다. 회식이 조금 늦어지면 전화로 왜 늦느냐고 타박도 했다. 당연히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회 생활이 다 그렇고 남자들의 삶이 다 그렇지 않는가 말이다. 아내의 불만이 술 때문도 아니고 늦은 퇴근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페미니즘의 인식론을 장착(?)했다면서도, 내 삶만큼은 여전히 가부장제가 가져다준 혜택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건만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아내의 몫이고 나는 “당연히” 가장의 권위를 지켜야 했다. 가부장제가 선물해준 남자 가장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싶었을까?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어느 날 아내의 말 한마디였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아내가 지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혼할 생각까지는 없고 그냥 보통 부부처럼 살아. 다들 그렇게 살잖아. 형은 다른 줄 알았지만.”

바깥세상 감옥에 꺼내 ‘가정’이란 감옥에 처넣다

82년생 김지영이 힘들어한 것도 남편 대현이 자상하지 않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그 정도면 아주 아주 괜찮은 남편”이다. 지영이 괴로운 이유는 여성에게는 결혼생활 자체가 “가부장제가 만들어놓은 감옥”이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다.

남성이 만들어놓은 체계에서 남성이 만든 규율과 언어를 따르고 남성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 옷을 입고, 178cm의 건장한 남성을 기준으로 만든 의자에 앉거나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남성 체질을 기준으로 양을 정한 처방약을 복용한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세상이지만 여성들에게는 남자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공부했다는 나마저 (여성에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온 것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바깥세상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면 내가 만든 가정이라는 감옥에 다시 처넣은 꼴이었다. 공감과 배려 없는 사랑이란 오만에 불과하다.

얼마 후, 아내(“아내”는 또 얼마나 가부장적인 단어인가!)의 발 부상을 계기로 페미니즘을 빙자한 내 껍데기뿐인 인식론에 알맹이 즉 “여성”을 넣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내 집만큼은 가부장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방법은? 내 안의 가부장제부터 전복하기. 난 그간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남성의 특권을 모두 버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후 20년, 난 그 당시 결심했던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냈다. 때마침 번역가가 되어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여력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집이라는 공간은 아내가 퇴근 후 몸과 맘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난 집안의 가사(요리, 청소, 관리)를 모두 전담하기로 했다. 아내가 원하는 건 가능한 한 모두 들어주기로 하고(그때 만든 내 좌우명이 “You say, it’s done.”이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공부하라는 얘기를 포함), 신경질, 짜증을 내거나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등등…난 내 가정을 “반(反)가부장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여성이 ‘선택하지 않은’ 의무 강요하기

몇 해 전, 이런 내용으로 신문 매체와 인터뷰를 했을 때, “사내자식이 할 일도 더럽게 없다. 돈 벌어 줘, 밥 해줘.”라는 댓글이 달렸다. 사실, 남자가 하면 특별하고 기이해 보일지 몰라도, 밥상 차리는 일도, 남편이 하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고 공손히 분부를 따르는 일도, 모두 역사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하고 강제한 일이다. 게다가 난 스스로 선택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은” 의무라는 뜻이다.

난 선택의 기적을 믿는다. 의외의 선택에는 늘 의외의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그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변하고 아내가 변하고 가족이 변했다. 위태로웠던 부부 사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바뀌고 아이들도 집을 어느 공간보다 편안해한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이건만 지금은 그 덕분에 내가 더 행복해졌다. 덤으로 20년 가까이 열심히 갈고 닦은 덕에 지금 내 요리 솜씨는 웬만한 요리사 못지않다.

물론 나처럼 가사를 통째로 떠맡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로서는 불가피한 상황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의 체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상대화해야 하는…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야말로 존재의 전이인 것이다.”

감옥 바깥에서 재소자 ‘위하려’ 하지 말기

나는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내 안의 가부장제를 전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도, 여전히 나는 여성들의 감옥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인 한 영원히 여성의 타자일 수밖에 없다. 다만 감옥 밖에서 교도관이 되어 감옥 내부의 재소자를 “위하려” 들지 말고, 함께 들어가 그 공간이 얼마나 불편하고 위태로운 곳인지 죄수의 마음으로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런 학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페미니즘을 무조건 혐오하고 배척하지 말고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공감과 배려를 위한 학문이다. 적어도 나는 페미니즘 덕분에 위태로웠던 사랑과 행복을 되찾았다. 페미니즘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여성의 현실을 이해하면 그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떠오를 것이다. 그럼 행복해진다. 여성도 우리 남성도.

글쓴이

조영학 출판번역가

조영학 출판 번역가는 텃밭을 가꾸고 야생화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일을 좋아하며, 20년 가까이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 저서로는 <천마산에 꽃이 있다>, <여백을 번역하라>,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공저), <살아있는 동안 꼭 봐야 할 우리 꽃 100>(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나는 전설이다>, <스티븐 킹 단편집> 등 90여 편이 있다. 서울신문에 <번역과 반역>으로 정기칼럼을 연재했으며, 지금은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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