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왜 ‘특수관계’일까?

[고수석의 통일수첩]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30주년에 부쳐 절묘한 ‘특수관계’의 이중성이란?

1991년 12월13일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최종 합의한 뒤, 북쪽 연형묵 정무원 총리(왼쪽)와 남쪽 정원식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아 올리며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991년 12월13일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최종 합의한 뒤, 북쪽 연형묵 정무원 총리(왼쪽)와 남쪽 정원식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아 올리며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수석 북한학 박사] 오는 12월 13일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반 독자들은 7·4공동성명, 6·15선언, 10·4선언, 4·27선언 등은 들어봤어도 남북기본합의서는 낯선 단어일 수 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합의된 내용이 진행되지 않아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준말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빛을 발한 것은 체결된 이후 그 다음 해부터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면서다. 그리고 무장간첩 침투 사건이나 일명 ‘이선실 사건’ 까지 겹쳐 남북기본합의서는 내우외환을 겪고 미완의 합의로 끝나고 말았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이 2021년 한반도의 겨울이 된 것처럼 남북관계는 예상할 수 없는 변수로 희비를 반복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체결한 합의서 가운데 최고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합의서이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대로 이행하면 평화와 통일은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전문+4개의 장+25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①상대 체제 상호 인정 ②상호 무력사용 금지 및 신뢰증진 대책의 이행 ③대폭적인 군비삭감·경제·문화·과학 분야의 교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30년간 각종 남북정상 간 합의서와 분야별 합의서의 모태가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0년 6·15공동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실천적 성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2018년 4·27 판문점선언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구조·내용이 유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뒤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의 오랜 냉전을 종식하고 남북한이 공존공영으로 평화의 시대를 여는 장전(章典)”이라고 정의했다. 김일성 주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남북외교가 시작된 이래 최초의 이정표가 되는 획기적 사건”이라고 자평했다.

이런 평가를 받은 남북기본합의서의 하이라이트는 전문에 실려 있다. 바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점이다.

특히 ‘특수관계’라는 단어는 이중성을 내포하면서 절묘했던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을 권력 실체로 인정하지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명시돼 있다. 따라서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북쪽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어 우리가 수복해야 될 영토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되 WTO위배 피하며 쌀·비료 지원 가능

둘째, 국가가 아닌 만큼 양측 간의 거래를 내부거래로 간주해 실리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국가 대 국가로 상대하게 될 경우 우리가 북한에 쌀이나 비료를 지원하면 당장 WTO에 위배되는데 그런 불이익을 사전에 피할 수 있는 묘안이 되기도 했다. (노태우 회고록)

절묘했던 ‘특수관계’ 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국제기구로부터 오해받을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남북한은 ‘옥동자’같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이후 30년 동안 많은 합의서를 체결했지만 깊은 불신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은 접촉하면서 ‘동상이몽’이었던 것이다.

남한은 접촉을 통해 북한이 모든 면에서 경쟁우위가 있는 우리 쪽으로 따라올 것으로 예상했다. 통독과정에서 교훈을 얻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기대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 만큼은 아니다.

반대로 북한은 접촉하면 북한대로 적화통일(赤化統一)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남한을 우습게 보는 북한 강경파들의 내면에 깔린 사고방식이다. 남한의 기대와 달리 접촉하더라도 무게중심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접촉의 결과가 그들의 의도(적화통일)대로 되지 않으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상호존중’ 정신만은 잊지말자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것은 탈냉전 시기에 북한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 둘 씩 한국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북한에 상당한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협상테이블에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우리의 기대와 달랐다.

당시 북한 협상 대표로 나온 김영철 소장(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협정 문안의 90%가 남측 주장에 따른 것인 만큼 이것은 당신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이 아니다.”

지금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가 북한에 위기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 시기와 다르다.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고 ‘진짜’ 자력갱생으로 버티고 있다. 협상테이블에 나오려면 ‘몸값’이 과거보다 몇 배로 뛸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정신만 남고 역사가 돼 버렸다. 올해도 남북한에서 특별한 이벤트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간직하자. 상호 존중이라는.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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