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0년...’김 샤오핑’이 되려면 이것을

[고수석의 통일수첩] 장성택에서 트럼프까지...’공칠과삼’ 정치는 타이밍...’이제는 바이든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고수석 북한학 박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지 올해로 10년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13일 뒤인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르면서다. 그의 출생연도가 1984년이니 당시 나이는 27살이었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이 사망한 뒤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 52살이니 김 위원장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지금부터 김정은 10년을 정리하고 향후 그의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발빠른 정적 제거로 권력 잡아

‘27살 수령’은 두려움 속에서 권력을 천천히 서두르면서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겉으로 충성하고 속으로는 깔보는 정적을 제거해야만 했다. 살생부 1순위는 이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총참모장은 한국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자리로 군 작전에 대한 실질적인 명령권자다. 군부는 언제든지 잠재적 도전 세력이기에 김 위원장은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이영호는 2012년 7월 군의 경제권을 민간으로 넘기는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호 후임으로 임명한 현영철은 1년도 못 채우고 2013년 5월 해임했다. 그 다음으로 총참모장에 임명된 김격식은 달랑 3개월만에 해임됐다. 김 위원장은 잦은 인사를 통해 군 수뇌부를 통제한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행정을 총괄하는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은 더 드라마틱하다. 김 위원장은 집권한 이후 10년 동안 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현영철-박영식-노광철-김정관-이영길 등 무려 9명을 교체했다. 김일성 집권 46년 동안에는 5명이 그 자리를 지켰고, 김정일 집권 17년 동안에는 3명에 불과했다.

이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성격 차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은 영화처럼 중간에 주인공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갔지만, 농구광이었던 김 위원장은 농구 경기처럼 수시로 선수를 교체했다.

정적 제거의 하이라이트는 2인자 역할을 한 고모부 ‘장성택’이다. 이는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를 세계에 알린 사건이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매제로 김씨 왕조와 운명을 같이 해왔다. 특히 북한이 개혁‧개방에 조금씩 문을 열 때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들 수 있다.

지난 2013년 12월 9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TV/연합뉴스
지난 2013년 12월 9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TV/연합뉴스

한때는 ‘김샤오핑’으로 기대를 모아

그래서 그가 ‘27세 수령’을 잘 이끌어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새로운 북한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북한에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권력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그를 견제하려는 세력들과 싸움에서 그는 안이하게 대처했다. 김일성· 김정일 빽이 오히려 그를 자만하게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장성택을 제거하려는 세력들의 간언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장성택이 처형되던 날(2013년 12월 12일) 김 위원장은 몰래 울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일은 장성택의 재주를 감안해 김 위원장이 40살이 되기 전까지는 죽이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때까지는 장성택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이처럼 ‘숙청의 칼춤’을 끝내고 김 위원장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 다음에 경제 살리기로 방향을 틀었다. 2014년 5월 30일 담화를 통해 기업에 대폭적인 자율권을 주었다.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를 도입해 기업에 자율권을 주는 대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자율권은 계획권· 생산조직권· 제품개발권· 인재관리권· 가격제정권 등 10가지를 말하는데 그동안 조선노동당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자율권을 기업에게 준다고 좋아할 것 같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 자율권을 가져 본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책임자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었다. 북한은 현재 자율권에 대한 과도기에 빠져 있다.

여기에 대북제재와 코로나-19가 더해져 경제는 자율권의 부여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달리 빛이 바래지고 있다. ‘자강력 제일주의’ 즉 1961년부터 주장한 자력갱생을 조금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1948년 건국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10년을 돌이켜보면 핵실험 4차례,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북미정상회담이다. 김일성-김정일이 오매불망 하고 싶어도 못한 일을 김 위원장이 해낸 것이다. 드디어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나 싶었다. 국내 보수 인사들도 김 위원장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정상회담. 오랫동안 꿈을 꾸었던 일이 현실로 눈 앞에 나타날 줄 알았다. 하지만 북미간의 오랜 불신의 벽에 가로막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에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 싶어했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관료들은 그렇게 선전했다. 그래서인지 유럽 언론인들은 김 위원장을 ‘김샤오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몇 년동안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덩샤오핑처럼 북미 수교를 할 줄 알았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내년에 ‘북미 대화’로 승부하기를

하지만 김 위원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햄릿’이 돼 버렸다. 내공이 부족한 탓일까? 이전의 당당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대북제재+코로나 19+경제 위기 등 3중고로 꼼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그의 10년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다.

이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재정비해 미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 그 길 밖에 없다. 덩샤오핑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미중 수교를 한 것이 아니다. 덩샤오핑도 대만 문제를 본인 뜻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워싱턴으로 갔다. 그것 때문에 소탐대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김샤오핑’이 되려면 이런 배짱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여러차례 노크를 했다. 본인의 마음에 쏙드는 제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10년 뒤 북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김일성+김정일’을 뛰어넘을 수 있다.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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