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밀가루 음식을 강조한 이유
[고수석의 통일수첩] 생활수준 향상돼 밀수요 급증 밀가루가공 공장을 지원해주자
3년째 신년사 대신 ‘노동당 회의’로 대신
1월 1일이면 전 세계 언론들의 눈과 귀를 잡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육성 신년사다. 하지만 2022년 1월 1일은 없었다. 김 위원장의 육성 신년사가 사라진 것은 3년째다. 그동안 2019년 12월 조선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 2021년 12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등의 결론이 3년 동안의 신년사를 갈음했다.
신년사는 한 해 북한의 대내‧대외 정책의 가이드라인이다. 보통 글자수는 1만2000~1만6000자 정도였다. 신년사가 발표되면 열성당원이나 사업장 간부들은 이 많은 글자를 외워야 한다. 일반 직장인들은 해당 부문만 외워도 괜찮다.
북한 언론은 이를 ‘신년사 학습 열풍’이라고 표현한다. 신년사 학습을 독려하기 위해 ‘신년사 통달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대학은 암송대회 수상자들에게 표창장과 함께 관련 과목에 최고 학점을 수여한다.
신년사 암송에 게으름을 피우면 승진이나 노동당 가입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암송 상태가 불량한 사람은 퇴근을 제때에 못한다. 벌칙으로 1시간 정도 남아서 암송하고 검사를 받은 뒤 퇴근할 수 있다. ‘원수님(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3년 동안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대북제재‧코로나 19 등으로 식량문제 강조
올해는 지난달 27일~31일 진행된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론이 신년사를 대신했다. 결론의 제목은 ‘2022년 당과 국가의 사업방향에 대하여’다. 그 결론은 6개 의제에 대한 논의로 ①당 및 국가정책들의 집행 정형 총화 및 사업계획 ②국가예산 집행 정형 및 국가예산안 ③사회주의 농촌문제의 당면과업 ④당규약 수정 ⑤당 조직사상생할 정형 ⑥조직문제 등을 다뤘다.
이번 결론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③사회주의 농촌문제의 당면과업이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로 식량문제가 과거보다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북한에서는 의식주(衣食住)가 아니라 식의주(食衣住)다. 식(食)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래서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10개년 목표를 제시했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향후 10년간 달성할 알곡 생산목표, 축산물·과일·남새(채소)·공예작물·잠업 생산목표가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밀 생산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나라의 알곡 생산구조를 바꾸고 벼와 밀농사를 강하게 추진해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북한 주민의 주식은 쌀과 옥수수, 감자 등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쌀과 밀가루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김일성-옥수수, 김정일-감자에서 김정은-밀로 ‘식생활 대전환’의 시도다. 밀 생산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2021년 9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피자‧스파게티 등 수요 늘어 밀가루 강조
밀가루 음식을 강조한 것은 과거보다 생활 수준이 향상돼 옥수수에 대한 수요는 줄고 밀가루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북한 주민들은 식생활 문화가 피자, 스파게티, 치킨 등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밀가루 수요가 늘고 있다.
북한의 대중(對中) 밀가루 수입액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5년 564만5천 달러 ▶2016년 253만6천 달러 ▶2017년 3262만3천 달러 ▶2018년 6304만7천 달러 ▶2019년 7317만8천 달러 ▶2020년 3547만6천 달러 등이다. 자료는 한국무역협회 해외무역통계다. 2017년에는 전년보다 12배나 급격하게 늘었다. 북한에서 폭증하는 밀가루 수요를 보여주는 수치다. 그 이후 계속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0년은 코로나 발생으로 전년에 비해 절반가량 줄었다.
지원은 밀가루 보다 밀가루가공공장을 선호
그런데 김 위원장의 지시로 밀농사를 확대하려면 이모작을 해야 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첫째, 비료 등 생산요소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모작 확대가 쉽지 않다. 둘째, 농기계·운반수단 등이 부족한 북한이 밀 수확과 벼 식재기 동안 집중될 농작업을 감당하기 어렵다.
북한은 이런 사정을 알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북한은 밀 재배면적을 늘리는 사업부터 추진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황해북도, 평안남도 등의 토양상태를 분석해 밀 재배면적을 2배로 늘려 이모작 적지로 정하고 밀 재배의 적기를 보장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마련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어렵게나마 밀 재배면적을 늘리더라도 이를 가공해 밀가루 제품을 만드는 공장도 더 늘려야 한다. 북한 최대 밀가루 제품 가공기지인 평양밀가루가공공장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부족하다. 따라서 북한은 밀가루 지원보다 밀가루가공공장 지원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이번 전원회의 결론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식생활개선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UN 대북제재위원회를 설득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것이 최악이다’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한 아직 최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면 아직 최악이 아닌 것이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가만있지 말고 천천히 서두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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