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연연하지 말자
[고수석의 통일수첩] 이제 ‘남북관계 2.0’ 만들어야 한다 국제협력 통한 백신공급 등 성패좌우 北이 먼저 정상회담 제안하는 환경을
올해 5월 출범할 새로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회복과 남북관계 개선이다.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라도 마찬가지다. 이 두가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가장 큰 숙제다. 오늘은 차기 정부의 과제로 남북관계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코로나-19가 변곡점...과거 남북관계 잊어야
코로나-19는 남북관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이어오던 교류·협력이 완전히 중단됐다. 감염병에 의한 교류·협력의 중단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과거 군사적 긴장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처럼 국제 스포츠를 통한 방법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남북관계 2.0’을 준비하자. 지금 팬데믹 상황을 위기로만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바꾸어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팬데믹 상황은 남북관계가 아니라 국제관계다. 국제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떻게 하면 남북관계 개선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우선 북한에 백신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한국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 북한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세계 백신 공동분배 프로젝트(COVAX)에 의한 백신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COVAX에 의한 공급량이 적다는 것이다. 유엔아동기구인 유니세프에 따르면 북한에 배정된 분량은 154만 도스(1도스는 1명 접종분량)로 2021년 811만 도스에서 대폭 삭감됐다. 북한이 백신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북한은 이왕 공급하려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2차 접종까지 고려해 5천만 도스를 요구하고 있다. COVAX는 한 국가에 그렇게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둘째, 모니터링이다. 북한은 COVAX를 통한 유엔측의 모니터링을 내정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백신을 공급받으면 몰래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이라고 선전한 북한으로서는 코로나-19가 전파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눈 뜬 북한의 변화 살펴야
차기 정부는 이 딜레마를 국제사회와 함께 풀어야 한다. 이것이 ‘남북관계 2.0’ 이다. 남북관계 1.0은 특사나 밀사를 통해 돌파구를 만들었다. 코로나-19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해놨다. 남북관계 2.0은 국제협력을 통한 시대다.
그것을 가늠할만한 좋은 사례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고위급 정치포럼에 ‘자발적 국가 검토보고서(VNR)’을 제출했다. VNR은 빈곤 종식, 불평등 감소, 기후변화, 해양자원 보존, 지속가능발전 등 17개 지속가능한목표(SDGs)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담론을 담고 있다.
유엔은 2015년 9월에 열린 제70차 총회에서 ‘2030 지속가능한목표(SDGs)’를 채택했다. 회원국은 2030 글로벌 의제를 이행하기 위해 국가별 SDGs와 지표를 마련하게 됐다. 북한이 여기에 참여한 것이다.
북한이 유엔 고위급 정치포럼에 보고서를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개 SDGs 목표 이행에 대한 북한의 정책 추진 경과와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며, 국제사회에 참여하겠다는 방증이다. 한국도 유엔에 VNR을 제출했다.
이런 북한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북한이 이번에 제출한 자료는 통계 수치가 불분명하거나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체제 방어와 선전을 위한 ‘견강부회’도 엿보인다. 그러나 그 가치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국제사회의 담론에 북한이 참여하고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北이 먼저 정상회담 제안하게 만들어야
차기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온 남북한 이벤트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와 협력에 방점을 둬야 한다. 이벤트는 그동안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지속가능한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친구를 많이 만들어 주면 좋다. UN에서 북한의 국가 SDGs 이행에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제는 더이상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하지 말자.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한국을 만들면 된다. 남북관계 1.0은 한국이 북한을 이끌었다면, 남북관계 2.0은 북한이 스스로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고수(高手)들이 접근하는 방식이다.
끝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말이다. “떠나온 해안을 잊어버릴 용기가 없다면 절대로 대양을 건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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