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자에게 조언하지 마라
[고수석의 통일수첩] 대통령 생각의 넒이+높이+깊이 부족 국민은 모기 소리로 들고, 자꾸 말하려고만 윤 당선자, 국민의 소리만 경청해야
또 등장한 ‘당태종과 링컨’ 모델
윤석열 당선자에게 많은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의 제자백가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동서고금의 통치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가장 많이 소환되는 단골 손님이 2명 있다. 당 태종과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이들은 대선이 끝나면 항상 상종가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그 이전 대통령 당선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 태종이 소환되는 이유는 위징과의 관계 때문이다. 위징은 당 태종 이세민이 권좌에 오르기 전에 권력 경쟁을 하던 이세민의 형님인 태자 이건성의 책사였다. 그는 이건성에게 야망과 능력이 형보다 한 수 위였던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고 매일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우유부단했던 이건성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결국 위징의 예상대로 이건성은 동생 이세민에게 살해당한다. 이세민이 권력을 잡자 위징은 죄인이 됐다. 위징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반한 이세민은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곁에 둔다. 그러면서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계속해서 내 험담을 하라”고 한다. 이세민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위징은 당 태종의 재임기간 동안 수없이 충언을 올렸다. 당 태종이 때로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말을 들었다. 세월이 흘러 위징이 죽자 당 태종은 “나는 거울로 삼은 인물을 잃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겁 없는 위징’도 대단하지만 그를 받아주는 당 태종은 더 위대했다. 그래서 후대의 귀감이 되는 ‘정관의 치’라는 빛나는 정치를 만들었다. 이 얘기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들었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마찬가지다. 그는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뒤 공화당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윌리엄 수어드와 새먼 체이스에게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을 맡겼다. 자신을 ‘긴 팔 원숭이’라고 조롱하던 민주당의 에드윈 스탠튼까지 불러 전쟁장관을 시켰다. 그 이유에 대해 링컨은 “능력이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이마저도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등장하는 지겨운 단골 메뉴다.
고난 겪었던 김대중 정도라면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당 태종과 에이브러햄 링컨으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당 태종과 링컨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당 태종과 링컨이 고민했던 생각의 “넓이+ 높이+ 깊이”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그릇의 크기가 달랐던 것이다.
당 태종과 링컨의 그릇의 크기에 견줄만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생각이 다른 분도 있으리라 예상된다. 김대중은 집권 초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이종찬 국가정보원장, 강인덕 통일부장관 등 보수 인사들을 과감하게 임명했다. 국정 운영은 국민을 위한 일이다. 따라서 그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아닌 과거 정부 인재이더라도 필요한 적재적소에 일을 맡겨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는 김대중의 오랜 정치 역정을 통해 ‘정치 보복+지역 감정’은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깊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진보 대통령으로서 연착륙을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도 김대중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준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관여한 이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1997년 김대중은 대통령이 됐다. 여느 사람 같으면 재조사를 지시했을 법하다. 하지만 김대중은 해외로 나가려던 이후락에게 해외로 나가지 말고 국민들과 함께 편히 살라고 했다. 그 이후 이후락은 편히 살다가 별세했다.
정치인 윤석열, 고민의 넓이+높이+깊이 부족
윤석열 당선자는 정치권에 입문한 지 255일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검사 생활이 훨씬 길었다. 정치인으로서 고민의 넓이+높이+깊이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그에게 당 태종과 링컨을 따라하거나 정신을 배워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김대중이 가능했던 것은 그에게 시련과 고난의 오랜 정치 역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정치 신인으로 쟁쟁한 국민의힘 경쟁자들을 이기고 후보가 된데다 대통령까지 오른 것을 보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처럼 최단시간에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다. 그래서 기대반 걱정반이다.
윤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고민 끝에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졸속 처리’라고 지적하고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도 속도조절론을 꺼냈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두고 봐야겠다.
국민의 목소리가 모기만 해진다면
대통령 책상 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고급 정보가 놓여지게 된다. 그 정보를 접하다보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내 손 안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대통령의 스타일과 선호도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이 바뀌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만 접하면 현실과 멀어지고, 주변 사람들의 얘기는 달콤하게 들리며, 국민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들릴락말락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채시관’이란 제목의 시에서 그것을 지적했다.
君耳唯聞堂上言(임금의 귀는 오직 당상관의 말만 들을 뿐이고)
君眼不見門前事(임금의 눈은 대궐 문 앞의 일도 보지 못한다)
대통령은 이 상황이 되면 국민을 가르치려고 한다. 사회 원로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기도 하지만 대개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잘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리가 되기 일쑤다. 이렇게 대통령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조언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윤 당선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 태종, 링컨, 김대중이 아니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는 자세면 된다. 참 쉬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백거이의 시에서 언급했듯이 그 자리에 앉으면 웬만해서는 극복하기 힘들다. 그것이 대통령의 자리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윤 당선자가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성공여부는 그의 실천에 달려 있다. 쇼가 아니라 진짜가 되려면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졸속 처리’만 지적하지 말고 5월 10일 이후 청와대에 사진 찍으러 가는 국민과 용산 대구탕집에서 식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 소리를 따르는 것 외에 진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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