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처럼 ‘매화음’(梅花飮) 즐겨보자

[김세리의 다주탐탐(茶酒耽耽)] 매화차· 매화주 즐기기 좋은 시기 김홍도는 그림 팔아 매화음 즐겨 매화주 직접 빚어 지인들과 나눠보면

갓 피어난 매화꽃과 녹차가 만났다.
갓 피어난 매화꽃과 녹차가 만났다.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

봄이 오는 듯 마는 듯하다. 햇살은 점점 따사로워지다가도 종종 칼바람이 불어와 상춘객들이 화들짝 놀라 옷깃을 여민다. 그 와중에 부지런히 고개들어 청연한 자태를 뽐내는 매화. 소박한 듯 단아하고, 고아한 자태 속에 품은 향기는 누구라도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수많은 꽃들이 있지만 매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각별하다. 왜 그럴까? 맨가지 끝에 수줍게 피어오르는 매화. 매화가 피어야 그제야 봄이 도착한 것이라고 하기에.

오동나무는 천년 세월이 지나도 항상 거문고의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번 베어내도 또 새 가지가 돋아나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상촌(象村) 신흠(1556-1628)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상촌 선생의 시구는 매화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면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문이다. 시대의 지성인 김구 선생 어록에도 남아있으며, 서예가들이 대련(對聯: 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대구)에 즐겨 쓰는 대표 문장이다. 상촌 신흠은 고산 윤선도,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차향을 즐기는 차인(茶人)이었다. 그는 밤에 등불 밝히고 개울물 소리 들으며 차 달이는 것을 행복해 했고, 때로는 밤 새우는 겨울날에 방안 화롯가에서 술한잔, 차한잔을 즐기는 소소한 여유를 아는 선비였다.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매화 사랑

여러 차인들 중에 매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아마도 퇴계 이황일 것이다. 평소 매화를 아끼고 가꾸는데 여념이 없기는 말할 나위도 없고, 평생 매화의 벗이 되어 우정을 나누었다.

그는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에 운명했는데, 육신의 마지막 힘겨운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분매(盆梅)에 보이기 싫어 “매형(매화를 존칭해 부름)에게 불결하면 내 마음이 미안해서 그렇다(於梅兄不潔 心自未安耳)”고 하며 다른 방으로 옮기게 했다.

비록 사물이지만 평생의 벗으로 지냈던 매화에 대한 예우였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사람을 대할 때도 진심을 다했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면 다과를 대접했는데, 만약 손님의 집안에 제사가 있는 것을 알면 차를 내오게 하고 정갈한 자리로 마련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물론 그는 차와 관련되는 다시(茶詩)도 지었으며 ‘다경(茶經)’과 ‘다록(茶錄)’등 차에 관련한 문헌들도 독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매화시(梅花詩) 91수를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라는 시집을 유묵으로 남겼다. 아무래도 다향(茶香)보다는 매향(梅香)에 더 심취했던 것 같다.

물론 조선 차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도 매화와 차를 소재로 하는 글과 시를 남겼다. 그의 유배지 초당 한쪽에는 매화나무가 자리했고, 날씨가 좋을 때에는 매화향을 즐기며 차를 한잔 했을 것이다. 선생은 자신이 머물렀던 다산생활에서의 이모저모를 여덞가지 정취로 노래지었는데, 차를 마시고 난 이후의 적적한 여운, 가랑비에 젖은 노란 매화에 대한 애상을 표현했다.

죽죽 뻗은 칡덩굴 부드러운 햇살 아래 / 山葛萋萋日色姸
화로에는 차 달이던 연기마저 끊겼는데 / 小爐纖斷煮茶煙
어디선가 깍깍대는 세 마디 꿩소리가 / 何來角角三聲雉
구름 속 들창 아래 잠시 든 잠 깨워대네 / 徑破雲牕數刻眠
황매가 가랑비에 숲나무 가지에 젖으면/ 黃梅微雨著林梢
수면에는 천 개나 동그랗게 물방울 일지 / 千點回紋水面交
저녁밥 몇 덩어리 일부러 남겼다가 / 晩食故餘三兩塊
난간에 기대앉아 작은 물고기 밥을 주지 / 自憑藤檻飯魚苗
-정약용, <다산팔경 노래(茶山八景詞)> 중에서

주변의 정취가 촉촉하고 적적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는 평가다. 아직 차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매화차 음용하는 방법은

그렇다면 매화차는 어떻게 마셨을까? 매화나무 아래서 봄을 맞이하는 야외찻자리를 한다면 생매화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는 찻잔 위에 매화꽃 한송이 띄워 꽃의 기품과 은은한 향기를 즐기는 것이다. 차는 녹차나 다른 종류의 차라면 향이 강하지 않게 은은하게 우리는 것이 좋겠다.

매화꽃차는 매화꽃만 정갈하게 채취해서 건조시킨다. 만개한 꽃보다는 살짝 봉오리진 쪽이 은은하다. 전기팬 위에 한지를 깔고 건조시키는 방법과 건조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수분을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또다른 방법은 차에 꽃향기를 가향하는 방식이다. 가지고 있는 녹차나 홍차(한국발효차)류에 건조한 매화꽃을 넣어 일정기간 밀봉한 후(대략 일주일 이내, 중간중간 뒤집어준다) 열처리해서 수분을 날려준다. 가정에서는 잡냄새가 없는 전기밥솥을 이용하면 쉽다. 어디까지나 봄날의 풍류로 조금 해보는 것이다. 차는 역시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본질이다.

매화꽃을 띄운 차. 사진= 김세리
매화꽃을 띄운 차. 사진= 김세리

매화꽃이 아니더라도 매화형태의 차도 있다. 병차형태의 차를 찍을 때 매화모양을 찍는 것이다. 매화병차는 눈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매화를 유독 아끼고 애정했던 조선의 화가이자 차인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1789~1866)도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 마시곤 했다. 그는 스스로 매화에 대한 편벽(偏僻)이 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는 매화대병(梅花大屛:매화그림의 큰 병풍)을 그려 침실에 두르고, 벼루는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硯)을 사용했다.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이라는 먹을 쓰고, 매화백영(梅花百詠)이라는 매화시 100수를 지었다. 거처하는 곳은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달았다. 시를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를 달여 마시고, 평생 동안 매화를 그리다가 흰머리가 됐다하여 자신의 호를 ‘매화두타(梅花頭陀)’라고 불렀던 사람. 조희룡의 매화사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낭만적인 김홍도의 매화음(梅花飮)

조선후기 대표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매화사랑도 유별난데,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수록된 유명한 일화 한 도막.​

“(김홍도의) 집이 가난해 더러는 끼니를 잇지 못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그루를 파는데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돈이 없어 그것을 살 수 없었는데 때마침 돈 3천을 보내주는 자가 있었다. 그림을 요구하는 돈이었다. 이에 그중에서 2천을 떼내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 말을 사다가는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하고, 나머지 2백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니 하루의 계책도 못 되었다.”

가난한 김홍도는 그림 팔아 쌀과 땔나무를 사도 모자란 돈으로 매화와 술을 샀다. 그리고 벗들과 매화를 감상하며 술자리를 가졌으니 이것을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비록 손 안에 돈은 없었지만 매화에 취하고 술 한 잔의 따뜻함과 사람의 온정을 나누는 낭만을 아는 진정한 풍류인이 바로 김홍도였다.

매화주 만드는 방법은

매화주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으로, 조선시대 중기 서유구(徐有榘, 1764~1798)가 쓴 <임원십육지(林源十六志)> ‘정조지(鼎俎志)’ 편에 수록된 ‘매화주 방문(梅花酒 方文)’이 있다.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으로 술에 꽃향기를 불어 넣는 방법이란 뜻이다.

멥쌀 5되를 백세(百洗: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씻음)해 물에 불렸다가 고쳐 씻은 뒤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쪄낸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준비해 둔 누룩 5되와 물 1말을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술독에 안치고, 상법(常法)대로 해 5일간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이어 술이 고이기 시작하면, 찹쌀 5되를 다시 위의 방법대로 고두밥을 짓고 돗자리나 삼베 보자기 위에 고루 풀어 헤쳐서 차게 식힌 뒤, 밑술에 물 1말과 함께 섞는다.

밑술과 고두밥이 고루 섞이도록 버무려서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재차 2일간 발효시키면 술이 괴어오르기 시작한다. 3일 정도 지나면 밥알이 동동 떠올라 있게 되는데, 이때 구들에 말려서 준비해 둔 매화 8냥을 명주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 안에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지게 매달아 놓는다.

매화주 '매일그대화'. 사진제공= 구름아양조장
매화주 ‘매일그대화’. 사진제공= 구름아양조장

<임원십육지>의 매화주는 별도로 빚어둔 술에 꽃향기(花香)를 술에 넣는 방식이다. 술에서 어떤 매화향이 날까. 지금도 다양한 방식의 매화주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매화의 고운 향기와 술의 향미를 잘 살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말린 매화를 고두밥할 때 같이 넣어서 증미하는 방식은 매화주를 만드는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이다. 그 외에도 다 익은 술에 매화꽃잎을 띄워 마시는 매화주가 있고, 소주에 매화꽃잎을 넣었다가 향기가 우러나면 마시는 혼성주법의 매화주도 있다. 매화의 열매인 매실도 좋은 술의 재료가 되는데 집에서 가장 흔하게 담는 술이기도 하다.

이제 본격적인 매화의 계절이 시작됐다. 역사 속 매화를 사랑했던 그들처럼 이제 매화를 감상할지는 우리 마음에 달렸다. 매화를 옆에 두고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왕이면 한잔의 매화차와 또 한잔의 매화주를 준비해보자. 그리고 평소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하자. 김홍도처럼 ‘매화음(梅花飮)’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진정한 낭만 매화꾼이 되어보는 거다. 지금 지나는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글쓴이

김세리 성균관대 초빙교수

김세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와 한국 현대 다법 및 차문화 콘텐츠를 다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차분야별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 <차의 시간을 걷다>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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