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추천하는 월출산 유람
[김세리의 차와술이야기 “茶酒耽耽”] 여행이 아니라 유람을 떠나보자 정약용·초의선사 함께했던 월출산 백운동 백운차실에서 ‘백운옥판차’는 그윽한 차향
현대인은 여행, 선조들은 유람
짙푸른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에는 나른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시야가 확트인 바다나 시원한 계곡이 흐르는 산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아스팔트와 끓어오르는 매연의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이라면 자연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자연만큼 편안한 안식처가 있을까. 우리는 그저 검푸른 바다의 일렁거림에, 시원하게 불어주는 산바람에 쌓여있던 피곤감을 떨쳐낸다.
언제라도 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은 욕망은 옛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의 떠남이 ‘여행(旅行)’이라면 그때는 ‘유람(遊覽)’이라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자연속에서 심신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자연의 정취를 즐기는데 머물지 않았다. 시문으로, 또는 그림으로, 그 당시 느꼈던 예술적 감수성의 흔적을 남기곤 했다.
유람을 즐겼던 조선 중기 천재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년)도 유람의 흔적들을 글로 남겼다. 오대산 유람을 통해 얻은 감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속세의 잡념을 떨치고 담담한 마음을 얻은 기쁨이 느껴진다. 풀 한포기, 구름 한조각도 놓치지 않는다.
깊은 골짜기 활짝 개어,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 맑구나.
오대산 깊은 흥취에 끌려, 이끼 길 가는 발걸음 가벼워라.
다래 덩굴 휘어잡고 절정에 오르니, 푸른 벼랑에 흰 구름 일고.
뭇 작은 산들 굽어보니, 넓게 핀 안개에 나무들 편편하네.
돌 틈에 흐르는 차가운 샘물, 한 번 마시니 세상일 다 잊고.
선방 자리에 앉으니, 상쾌함에 꿈마저 맑구나.
새벽 종소리에 깊은 반성 일거니, 담담한 마음 무어라 말하랴
『이이, 율곡전서 제1권』
동양의 사상에서 ‘자연’이라는 주제는 인간 사유의 중심에 있었다. 사상가들은 산수(山水)를 통해 세상을 보려했다. 공자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을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했고,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하여 세상을 아우르고 낮추는 물의 품성을 닮고 싶어했다. 또한 장자는 절대적 자유 안에서 노니는 경지(소요유, 逍遙遊)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산수자연의 질서를 터득함으로써 구하고자 하였다.
애다인들이 특히 사랑한 ‘월출산’
향기로운 차를 자주 즐기는 애다인(愛茶人)들도 자연을 사모하고 유람을 즐겼다. 그들이 찾는 산중에 유독 자주 거론되는 산이 바로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강진과 영암의 월출산(月出山)이다.
월출산은 소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할만한 산이다. 그 만큼 빼어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눈의 맛도 좋지만 몸의 맛도 일품이다. 산을 오르는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월출산을 오르내리면서 몸으로 느끼는 재미는 더할 나위 없다. 바위산이 주는 묘미다. 월출산의 정상은 천황봉(809m)이며 신라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큰 바위가 굵직한 능선줄기 위에서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남쪽과 서쪽지역은 크고 작은 바위들로 절경을 이룬다. 주변의 산들이 둥글둥글하니 부드러운 산형을 가진 반면 월출산은 조물주의 특별한 이벤트인건지 규모에 비해 비범하고 큰 풍경을 화폭처럼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의 월출산 유람
특히 백운동계곡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풍광은 지금도 경이롭지만 200여년 전에도 아름다웠다. 이곳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유람하게 되는 다인(茶人)은 바로 조선 차문화의 중심에 있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선생과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년)였다. 그들은 월출산을 오르고 백운동 골짜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차를 즐기는 이들이 만났으니 차향은 물론이요, 시와 그림도 함께하며 유람의 즐거움을 함께 했을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집이 바로 “백운첩(白雲帖)”이다. 1812년 음력9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이 초의와 만나 월출산을 함께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산아래 백운동에 사는 이덕휘의 집에서 머물며 만든 20쪽짜리 시화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초의는 백운동도와 다산이 당시 머물던 ‘다산초당도’를 멋지게 그려냈다. 현재 강진 다산초당의 모습은 실제의 다산초당과 거리가 멀지만 초의가 그린 다산초당도가 남아 있기에 여전히 그곳은 초당의 이름으로 건재하고 있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다산과 초의가 머물렀던 백운동 별서정원은 이담로(李聃老, 1627~1701년)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해 한국원림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곳은 자연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다. 당시 정약용이 풍광이 아름다운 지점 12곳을 선정했는데,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어지는 옆길로 월출산 다원을 천천히 산책하고, 푸른 차나무의 기운을 한껏 느껴보고.
아름다운 백운동 별서정원과 백운차실
다산과 백운동의 인연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1818년 8월 정약용의 강진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 제자들은 ‘다신계(茶信契)’의 모임을 만들어 스승님을 잊지 않고 해마다 차를 만들어 보내곤 했다. 다산의 제자 이시헌은 백운동의 당시 주인 이덕휘의 아들이다. 다산선생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던 이시헌은 그가 머무르고 있던 두릉(杜陵)으로 다산의 사후에까지도 계속 차를 올려 보냈다.
이시헌 선생의 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인을 새긴 금릉월산차(金陵月山茶)와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맥이 이어져 후손인 이한영(李漢永, 1868~1956년) 집안에 이르렀다. 지금도 월출산 아래 작고 아담한 찻집 ‘백운차실’에 가면 그윽한 차향을 맛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현재의 후손(이현정)과 함께 월산떡차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운옥판차가 단아하고 그윽한 녹차 본연의 맛을 낸다면, 속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월산떡차 맛도 뛰어나다. 찻잔의 차향을 가슴에 담으며 월출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옆자리에 다산선생도 초의선사도 함께 하는 듯하다.
‘유람적 찻자리’를 찾아가보자
우리 이제 여행을 유람해 볼까. 지금까지 우리의 여행이 관광을 하고 맛집을 찾아나서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패턴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일정을 촘촘하게 잡아 더 많은 곳을 다니기 보다는, 유람의 개념으로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조촐한 차다구 몇가지를 여행 가방에 넣어 보자. 연필과 작은 공책도 함께 넣자. 한잔의 여유와 감성을 적거나 스케치를 해본다면 또 하나의 추억과 기록이 남을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몇 초 안에 잡아내는 사진도 편리하지만, 천천히 적어보고 그려보는 손맛의 즐거움은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차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유람적 찻자리’는 더욱 의미가 있다. 이제는 우리 차문화도 예전과 다르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지역마다 특색을 가진 차들이 늘고 있다. 월출산을 간다면 백운동에서 백운옥판차를 맛볼 수 있고, 장흥을 간다면 청태전을, 강원도 고성에는 최북단에 위치한 산학다원, 동루골다원의 차맛을 볼 수 있다. 유람가는 지역마다 맛볼 수 있는 차가 다양해졌다는 뜻이다.

진정한 여행의 맛을 알고 싶다면, 이제는 빠름 보다는 느림을, 먹방에 취하기 보다는 차향에 취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담아오기 보다는 일상의 무거움을 버리고 오기를...
선조들이 유람을 통해 담담함의 기쁨을 누렸듯, 우리도 옛사람의 유람같은 여행을 통해 치유와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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