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지키는 술, 진짜 있을까...약술에 대해

[김세리의 차와술 이야기 ‘다주탐탐’] 차에 넣는 재료 따라 건강에 더 도움돼 차엔 귤, 생강, 홍국,인삼가루 등 좋아 약술 잘 만들면 신선주...회춘에 장생까지

청주 신선주. 사진=구글
청주 신선주. 사진=구글

한 잔의 향기로운 차는 차나무의 찻잎을 어떻게 익히고, 시들리고, 말리고, 또는 산화와 발효 등의 차 만드는 방식을 거쳐 다채로운 맛과 향기를 갖게 된다. 술도 마찬가지다. 쌀과 누룩을 기본으로 하지만 쌀 씻는 방식에서부터 양과 시간 조절, 술이 익어가는 환경에 따라 다른 특색을 지닌 술로 탄생한다.

순수한 재료의 차와 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은 향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 독특한 부재료를 더해 다른 차원의 향미를 얻기도 하고, 약성이 있는 재료를 더해 건강한 음료를 얻고자 했다.

차에 잘 어울리는 재료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문집 『가오고략嘉梧藁略』의 「가곡다옥기嘉谷茶屋記」에는 호남의 보림차와 제주의 귤꽃차, 연경에서 온 용정차와 우전(雨前)을 마신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내 평소에 차를 좋아한다. 사방의 이름난 차를 얻으면, 문득 산수가 좋은 곳으로 달려가 끓여 마신다. 한강 가에 살 때는 작은 집을 지어 ‘춘풍철명지대(春風啜茗之臺)’라고 하였다. 글씨는 수옹 섭동경(翁東卿)이 써주었다. 가오곡의 위쪽으로 옮겨 퇴사담(退仕潭)을 파서 좋은 물을 얻어 호남의 보림차와 제주의 귤화차를 끓였다. 근래에 연경에서 돌아온 주자암이 진품 용정차와 우전을 주었다. 못 물을 길어와 차를 넣고 끓였고 소나무 그늘과 대숲 사이에 솥과 그릇들을 늘어놓고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余性素嗜茶。得四方名茶。輒走好山水烹飮。㞐漢水上。築小屋曰春風啜茗之臺。葉遂翁東卿題贈。後移卜嘉梧谷。鑿退士潭。得聖水。煮湖南之普林茶。耽羅之橘花茶。近自燕京還。周自菴贈龍井雨前眞茶。汲潭水和煎。列鐺碗於松陰竹影之間。不知日之夕。

귤, 귤꽃, 귤껍질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이유원은 호남의 보림차, 중국 녹차인 용정차, 우전의 순수원료의 차도 마시지만, 귤향기 싱그러운 제주 귤화차도 즐겼다. 그는 유독 귤향기에 매료된 것일까, ‘귤산(橘山)’이라는 호를 사용해 스스로 이름했다. 당시 귤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귀한 과실이었다. 진상품으로 제주로부터 귤이 올라오면, 성균관과 동·서·남·중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과거를 보게 하고 귤을 나눠주었는데, 이를 감제(柑製) 또는 황감제(黃柑製)라고 불렀다. 귤을 맛보고 싶었던 유생들은 더 열심히 학구열을 불태웠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의 저자 서유구(徐有榘)는 그의 저서에 귤과 차를 이용한 귤차(橙茶) 만드는 법을 기록했다. ‘실처럼 가늘게 썬 귤껍질 한 근과 바싹 마른 좋은 차 다섯 근의 비율로 혼합한다. 그런 후 난롯불 위 조밀한 마포에 골고루 펴 놓은 후, 깨끗한 무명천으로 약 두세 시간 정도 덮는다. 이렇게 만든 귤차를 종이 봉지에 잘 밀봉하여 필요할 때 사용한다’고 했다. 가늘게 썬 귤껍질과 바싹 마른 좋은 차를 1대 5의 비율로 혼합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귤강차(橘薑茶), 강귤차(薑橘茶), 귤병차(橘餠茶) 등에서 보듯 귤은 다양한 방식의 블렌딩티로 활용되었다.

생강과 홍국도

‘차 매니아’ 추사 김정희 선생도 평소에는 담박한 차를 즐겼으나, 생강이나 홍국(紅麴)을 곁들여 마시기도 했다. 일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고, 몸이 좋지 않을 때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생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매운 열기운으로 몸을 따듯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홍국은 누룩의 하나로 술을 담는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홍국으로 담근 술을 혼합하였다는 뜻이다. 홍차 문화에서 위스키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마시듯 조선 선비들은 차에 술을 넣어 마셨다. 생강과 홍국주가 들어간 차는 상상만 해도 감기몸살이 뚝 떨어질 듯한 레시피다.

이밖에도 조선 후기 문인 홍한주(洪翰周)가 마실거리로 차와 함께 귤꽃을 끓이고, 향신료인 산초를 귀하게 여겼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서경순(徐慶淳)은 인삼가루를 차에 타 마셨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약으로서 효능을 기대하는 혼합차들이 등장하는데, 이질(痢疾)에는 묵은 생강과 봄에 만든 차를 1대 1 비율로 함께 끓여 마시도록 하였고, 천식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마황, 석고, 행인, 감초, 상백피와 함께 좋은 차(細茶) 한 줌을 생강 3쪽, 파뿌리 1대와 함께 물에 달여 먹도록 하는 등 증상에 따른 다양한 법제방식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차를 즐겼다.

진피발효차
진피발효차

술을 약으로 만드는 약초들

예로부터 적당한 양의 술은 몸을 따듯하게 하고 기운을 활기차게 하니 일컫어 ‘백약의 으뜸’, ‘신이 내린 봉록’이라 표현했다. 차에 약재를 넣어 약차를 만들어 마셨듯, 술도 약주의 개념이 있다. 약효가 있는 술, 처음부터 약재를 넣고 빚은 술을 일반적으로 ‘약주’라 부르지만,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술’을 높여 부르는 말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약주라며 청했고, 맑은 술로 탁주보다 맑고 고급스럽게 만든 술도 약주라 불렀다.

맑은 술, 약주 만드는 방법은 누룩 가루를 물이 담긴 독에 넣은 다음 찹쌀가루로 찐 떡을 넣어 밑술을 만든다. 여기에 멥쌀과 누룩, 물로 빚는다. 잘 익은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약주가 된다. 용수는 주로 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싸리나무, 버드나무 가지나 칡덩굴의 속대, 짚 등을 촘촘하게 엮어서 둥글고 깊은 원통형 바구니 모양으로 만든다. 이 때 용수 안에 창호지를 덧대어서 사용하면 더욱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번거롭지만 수고가 하나 더해지면 더 고급스러운 빛깔과 맛의 술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만드는 과정 중에 특정 약재를 넣어 빚는 경우도 많다.

구기자주와 신선주 만드는 법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약주로 구기주와 오가피주가 언급되어 있다. 구기주를 마시면 회춘한다고 적었다. 곧 고대 중국의 신선으로 알려진 백산보의 생질이 구기자를 넣은 구기주를 마시고 390세에도 얼굴빛이 열대여섯 소년 같았다고 했다. 또 이 구기주를 마신 한 사신은 100일 만에 흰 머리가 도로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서 늙지 않았다고도 적었다. 물론 약이 될 정도로 적당한 소량을 의미하는 것이지 지나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인 것이다.

규합총서.
규합총서.

『규합총서』는 구기자주, 오가피주, 도화주, 연잎주, 두견주, 소국주, 과하주, 감향주, 송절주, 송순주, 한산주, 삼일주, 일일주, 방문주, 오종주방문 등 다양한 약주들을 소개하고 있다. 흰 아지랑이와 같다하여 ‘백하주’, 푸른 파도와 같다해서 ‘녹파주’라는 낭만적인 작명도 인상적이고,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소주와 희석하는 과하주는 더운 여름계절을 나는 나름의 지혜이다.

여러 약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겠지만,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 소개하고 있는 신선주는 머리를 검게 하고 늙지 않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선주는 여러 등급으로 나눠지는데 약재의 가짓수에 따라 ‘오선주’, ‘칠선주’, ‘팔선주’가 되며, 약재가 열 가지 이상이 되면 ‘신선주’라 이름하였다.

조선 조리서인 『군학회등群學會騰』에는 우슬(牛膝), 하수오(何首烏), 구기자(枸杞子), 천문동(天門冬), 맥문동(麥門冬), 숙지황(熟地黃), 생지황(生地黃), 당귀(當歸), 인삼(人蔘), 육계(肉桂), 찰벼, 백면(白麵)을 재료로 신선주를 빚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등장하는 약재의 이름만 보아도 보약을 달이는 수준이다. 가짓수에 따라 이름도 달리하는데, 영주지방의 오정주(오선주)를 비롯하여 인천 칠선주, 변산 팔선주, 청주 신선주, 담양 제세팔선주(담양 추성주) 등 전국 각지에서 신선이 되기 위한 술을 빚어 음용했다.

그 중 청주 신선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제4호)로 전승 보전되고 있다. 전승되어 내려오는 10가지 한약재를 기본으로 한다. 고두밥을 지어 차게 식으면 감국과 지골피, 오래 달인 물과 누룩을 섞어 술밑을 빚고, 술독에 안쳐서 2차 발효를 시킨다. 이를 여과 정치하여 신선약주로 마시거나 증류하여 신선소주로 마신다. 약주의 경우 수율이 45%, 소주의 경우 20~36%로 매우 낮은 대신 술맛이 진하고 향이 강하다. 서늘한 곳에서 한 달간 숙성시킨 후 마시면 부드럽고 풍미가 더해진다. 귀하게 만든 술을 약으로 마시면 어느새 신선처럼 편안한 심신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약차와 약술은 모두 건강을 염원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금 나의 건강상태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차와 술은 무엇인지, 나에게 잘 맞는 차와 술을 찾아보는 재미도 좋을 것이다. 맹신과 과용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라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풍류요, 바쁜 현대 생활속에서 한숨 쉬어가는 휴식이 되지 않을까.

글쓴이

김세리 성균관대 초빙교수

김세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와 한국 현대 다법 및 차문화 콘텐츠를 다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차분야별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 <차의 시간을 걷다>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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