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추사 김정희를 위로한 차와 술
[김세리의 차와술이야기 “茶酒耽耽”] 19세기 조선 최고의 인물 ‘추사 김정희’ 인장의 호 540여개...그중 다호도 여럿 두번의 긴 유배에 절망하기도 했는데
19세기 조선 최고의 인물로 대표되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 <세한도>의 주인공이며, 시·서·화는 물론 금석학 연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다. 전각(篆刻) 또한 최고의 기술을 가져 천재 예술가,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원조 한류 아이돌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그의 인지도는 대단했다. 그가 제주와 북청 유배로 긴 세월을 갇혀 지내지 않았더라면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며 더 많은 분야의 최고봉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남긴 뛰어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지만 손꼽히는 명작중에 하나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다. 한 화폭 안에 그림과 함께 있는 ‘화제시(畫題詩)’로 금방이라도 학이 되어 날아갈 듯한 우아한 난초, 글의 배합 그리고 간간히 찍혀있는 인장들이 서로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림과 글의 농담이 대비되면서 세련미가 부각된다. 붉은 인장들은 청순한 난초에 고혹미를 더한다. 인장들은 대부분 추사의 것이고, 나머지는 작품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찍힌 소장자의 것이다.

인장에는 이름을 새긴 성명인(姓名印), 호를 새긴 자호인(字號印), 다른 호를 새긴 별호인(別號印), 자신의 서적·서화에 찍는 수장인(收藏印), 감식을 나타낸 심정인(審定印), 유명한 시문 구절을 새긴 명구인(名句印) 등의 종류가 있는데, 책과 그림에 찍는 추사의 인장은 무려 180개나 된다. 그만큼 추사가 사용했던 이름들은 폭넓고 다양했다. 우리는 대부분 김정희=추사(秋史)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는 완당(阮堂)이기도, 예당(禮堂)이기도 했다. 시암(詩庵) · 과파(果坡) · 노과(老果) · 노격(老鬲) · 담연재(覃硏齋) · 승련노인(勝蓮老人) 등 그가 사용한 호가 확인된 것만 540여 종에 이른다.
김정희와 차(茶)의 이름
그는 차향이 좋은 날엔 차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다로(茶老), 고정실주인(古鼎室主人), 고다노인(苦茶老人), 일로향실(一爐香室), 승설도인(勝雪道人) 등 그의 차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차의 별칭을 사용하였다.
그 중 다호(茶號)인 승설(勝雪)은 ‘용봉단차(龍團團茶)’의 최고를 이른다. 작고 단단하고 문양이 섬세한 차다. 가루내어 기품있게 마시는 최고급차였다. 승설은 그가 24세에 북경에서 경험했던 최고의 차맛인 승설차를 잊지 못해 지은 호다. 용봉단차 중에 북송 휘종 때 만들어진 것이 용원승설이다. 용봉단차는 중국 송대 황제의 차였으므로 황제의 다원 북원에서 만들어져 황제에게 진상된다. 황제는 이 차를 신하들과 귀족들에게 하사했으며, 외교적인 하사품으로 사용했다. 송의 황제들은 고려에 용봉단차를 보냈다. 차에 있어서 운이 좋았던 추사는 중국에서 처음 그 맛을 보았고, 후에 조선에서 이 차를 다시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충청도 덕산현으로 묫자리를 보러 갔다가 가야사의 5층 석탑에서 고려 때 불상과 불경, 사리와 침향, 진주 그리고 용단승설(후에 용원승설을 용단승설과 혼용하여 부름) 네 덩어리를 발견한다. 사방 2.35㎝, 두께 1.2㎝ 내외 크기의 떡차였다. 그 중 한 덩이를 이상적이 얻는다. 이상적이 누구인가? 바로 추사에게서 세한도를 선물 받은 장본인이다. 그가 존경하여 모시던 스승 추사는 자신의 호를 승설이라고 할 만큼 승설차를 그리워했는데, 우연히 그 차를 제자 이상적이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이상적이 소장하고 있던 그 귀한차를 추사에게 선물했다는 직접적인 정황은 남아 있지 않으나, 어인 일인지 추사는 그의 가장 친한 차 벗인 초의선사에게 “송나라 때 만든 소룡단(宋製小龍團·송제소룡단)을 얻었다”는 서신을 남겨 좋은 차를 함께 나누고자 했다. 1852년 12월의 일이니 함경도 북청 유배 생활을 마친 그는 어느덧 예순여섯, 당시로는 노장의 나이었다. 평생을 그리워했던 승설차를 다시 만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추사의 술 인장 ‘통음독이소’
술을 별로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추사가 ‘통음(痛飮)하며 이소(離騷)를 읽는다’고 각(刻)하여 남겼다. 통음(痛飮)은 사무치게 괴로울 만큼 술을 취하도록 마신 상태를 뜻한다. 추사는 술을 한껏 마시고 ‘이소’를 읊은 것이다. 이소가 무엇이길래, 추사를 심하게 취하게 만들었을까? 초나라 굴원의 시로 중국 문학 사상 가장 오래된 장편 서정시다. 모두 373행 2490자 길이인데, 충정을 바쳤건만 임금은 간신배의 모함만 듣고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절망스런 내용을 담고 있다.

굴원은 초왕을 섬기는데 충성을 다했으나 간신의 참소를 받아 추방되고 만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각 지방을 방랑한 뒤 끝내 절망하여 멱라(泊羅)라는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를 기려서 5월 5일 단오가 생겼다는 얘기도 있다. ‘이소’는 ‘근심을 느낀다’는 뜻이다. 추사가 ‘이소’를 읽고 통음했으니 굴원의 마음과 통하였나 보다. 그가 길고 길었던 억울한 유배의 시간 속에서 침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칠십 평생 열 개의 벼루 밑을 뚫고, 1천 자루의 붓을 헤어지게 할 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하였지만 노력 없이는 천재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김정희는 말년을 경기도 과천에서 지내며 일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는 차를 벗하고 때로는 술을 통음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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