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점의 리더십, 부통령 있었다면

[언어학자가 본 문 대통령 리더십과 한계] 자상·배려 리더십, 코로나 위기 극복 이끌어 인사실패, 윤석열 항명 저지못한 한계 보여 부통령제, 대통령의 한계 보완될 수도

5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전일 취임식을 마쳤던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 청와대로 떠나기 앞서 주민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5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전일 취임식을 마쳤던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 청와대로 떠나기 앞서 주민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막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시각과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필자는 언어학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리더십 스타일을 분석하고 공과를 성찰해 보려고 한다.

문대통령 ‘어머니형 리더십’

데보라 태넌(Deborah Tannnen)이라는 사회언어학자에 따르면 여성은 언어를 주로 교감을 위해 쓰며 배려와 존중이 언어적 특징인 반면, 남성은 언어를 주로 논쟁을 위해 쓰며 자기주장 성격이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는 전반적으로 여성적 언어 특징을 보인다. 그분의 언어를 보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남을 존중하며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국가를 가정으로 은유하면 문 대통령은 엄격한 아버지라기보다는 자상한 어머니 같은 리더십을 가졌다.

문 대통령의 언어적 정체성은 코로나 위기 때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문 대통령은 시종일관 공감, 겸손, 신뢰, 격려, 희망의 언어로 나라를 단결과 화합의 분위기로 이끌고 중심을 굳건히 잡았다. 야당과 주요 언론들이 끝없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고 폄하했지만 한국이 가진 인프라와 인력의 우수성, 의식문화의 저력 등 저변 요인들이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하도록 중심을 지키고 이끌었다. 이것은 정치 진영 논리를 떠나서 국내외에서 널리 인정하는 업적이다.

이 업적은 같은 기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미국의 트럼트 전 대통령 시절(2020-2021)과의 비교를 통해 효과적으로 증명된다. 미국은 이 기간에 50만명 이상의 귀중한 목숨을 잃었고 경제가 망가지고 사회가 황폐화되었었다. 반면 한국은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 경제와 방역에 모두 성공하였고 2022년 5월 현재 집단 면역의 희망을 꿈꾸는 국가로 손꼽혀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기간에 거짓, 허풍, 편견, 증오, 협박, 오만, 무책임, 변명, 뒤집어씌우기의 언어로 온 나라를 갈등과 분열의 도가니로 몰아갔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을 무시하던 그는 급기야 2020년 10월에 자신과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복 후 백악관에 돌아온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강조하는 파우치 박사(Dr. Fauci)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바보들(idiots)이라고 부르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들 특히 CNN을 ‘아둔한 녀석들(dumb bastards)’이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수십만의 사망자가 나온 상황에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언론의 음모론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더구나 공식적인 기자회견장에서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욕을 한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만일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와 같은 언행을 했다고 생각해 보라. 절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전문가를 존중하고 힘을 실어주면서 국민들에게 투명, 진실, 겸손, 공감, 위로의 언어로 책임 있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문 대통령의 언어적 정체성은 남북관계와 외교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 내는 데에 기초가 되었다. 임기 초기 북핵 위기 상황 속에서 북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데에는 문 대통령 개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호소한 인간적 신뢰감과 설득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 노력이 완전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평화적 무드를 조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코로나 방역 모범 국가로서의 성공과 경제적 성장, 국내 민주주의의 모범이 한류의 인기 상승을 타고 한국의 국격을 급격히 상승시켰고 외교 무대에서 큰 성과로 이어졌다. 2021년 영국에서 주최한 G7 정상회의에 초대되어 일본 수상보다 상석에 자리한 것은 그 상징적 의미가 지대했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 조치를 한 이래로 갈등이 최고조에 있었던 냉랭한 한일 관계가 지속되던 와중에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수상보다 상석에 앉고 훨씬 더 많은 정상들의 관심을 끈 것은 통쾌한 외교적 승리였다.

지난 2021년 6월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열린 G7 확대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단연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 정상은 코로나 팬데믹 대처에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한국의 대통령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 등 정상들이 문 대통령(왼쪽 앉은이)을 지목하며 농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21년 6월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열린 G7 확대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단연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 정상은 코로나 팬데믹 대처에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한국의 대통령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바이든 미 대통령 등 정상들이 문 대통령(왼쪽 앉은이)을 지목하며 농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나친 신뢰, 국정혼란 자초하기도

그러나 모든 면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문 대통령의 자상한 어머니 같은 리더십과 배려, 존중의 언어적 특징은 국내 정치 분야에서 심각한 결점이자 약점으로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에 있어서 일을 맡긴 사람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본인의 판단과 역량에 전적으로 맡기는 스타일로 일을 했다. ’맡기고 자유를 준다‘는 것이 탈권위적이고 민주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본 듯하다. 문제는 일을 맡긴 사람이 대통령의 철학과 어긋나게 일을 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때에도 지휘나 감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파행이 방치되어 심각한 갈등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예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김현미 장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을 때 과감히 교체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가장 치명적인 일은 윤석열 현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이후 벌어졌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임명 직후 대통령이 임명한 그의 상관인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을 과잉 수사와 기소권 횡포로 도륙하는 항명성 만행을 저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 것은 인사권자이자 지휘권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주장한 검찰 개혁을 ’검찰을 개혁하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고 정반대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기 위해 ’검찰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항명하듯 맞섰다. 현 정부에 반감을 가진 야당과 비판 세력들에게는 이 공격 프레이밍(framing)이 진영간 정치 싸움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정권교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야당 후보로 급부상했다. 결국 임기를 마친 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정적인 상대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만일 이 모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사람을 지휘하고 감독하고 최소한의 응징을 하는 역할을 했더라면 정치적 상황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결단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우유부단함은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무능의 극치였고 반대 진영에게는 대통령 본인과 정권 내부의 비리 때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혹독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모든 정치 과정을 방치한 최종 결과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이 결과는 문 대통령에게는 처참한 정치적 패배였으며 지지자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었다. 반대 진영에게는 승리를 안겼고 문 대통령은 무능한 정권의 지도자로 평가절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부통령이 있었다면

이 결과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정에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가 모두 필요하듯이 국가도 가부장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와 어머니형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만일 문 대통령의 곁에 엄격한 가부장적 리더십과 남성적 언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완장을 찬 부하들의 항명적 행동을 제압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각을 지휘하는 실권형 부통령이 있어서 대통령이 하지 못하는 악역을 담당했다면 결과가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너무도 광범위하고 막강하다. 문 대통령의 사례는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어서 부통령이 보완하고 보충하는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함을 웅변한다. 부통령은 대통령과 근본적인 정치 철학과 지향을 같이하되 리더십의 유형이나 언어 정체성이 상호 보완적이라면 이상적일 것이다.

이것은 현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도 깊이 생각해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가부장적 리더십 스타일과 남성적 언어 정체성을 보완하여 자상한 어머니 같은 리더십으로 배려와 존중의 언어로 국정을 부드럽게 보완할 수 있는 부통령의 존재는 윤 대통령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성찰의 글을 마치면서 한국 정치계에 부통령제 도입이라는 화두를 조심스럽게 던져 본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