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지원하자

[고수석의 통일수첩] 남북관계 신뢰성 부족으로 실무접촉 한계 윤 대통령 ‘필요한 지원’에서 ‘모든 지원’으로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게 남한이 손 내밀어야

마스크 2개 겹쳐 쓴 김정은 국무위원장. 코로나-19 감염 확산사태에 북한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마스크 2개 겹쳐 쓴 김정은 국무위원장. 코로나-19 감염 확산사태에 북한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하루 유열자(발열자)수 39만명.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가 발표한 북한 통계다. 설마설마했던 북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그동안 북한이 ‘코로나-19 감염자=0’ 이라고 발표해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건국 이래의 대동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손을 들었다. 허위 보고 탓인지, 늦장 보고 탓인지 결국 북한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 위기의 북한

지난 4월 말부터 5월 15일까지 합친 누적 유열자는 121만 3550여명이다. 누적 사망자는 50명이다. 북한은 ‘유열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검사장비 부족으로 ‘확진자’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집계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에 숨기고 싶은 통계를 대놓고 발표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며 국제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현재는 북한이 중국에게만 SOS를 쳤다. 구체적인 요청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마스크·소독약·해열제 등을 요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도 “중국의 경험을 따라 배우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화가 단단히 났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안이하게 대처한 간부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의약품 사재기와 불법 유통 등 부정적 현상들을 법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며 중앙검찰소장 등 사법·검찰 부문 간부들을 강력하게 질타했다.

북한의 의료체계를 감안하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국제사회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대북통지문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아직 통지문을 접수할 의사를 밝히지 않는 상황이다. 통일부는 “북측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발생과 관련해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 마스크, 진단도구 등을 제공하고 우리측 방역 경험 등 기술협력도 진행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한 남북 간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마 통일부 제안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북 간 실무접촉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실무접촉에서 기대한 만큼 얻지 못하면 실무자들이 낭패를 볼까 봐 우려한다. 통일부가 북측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대북통지문을 보냈지만, 김 부장이 이를 김 위원장에게 보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북한은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에서 큰 트라우마를 얻었다. 협상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따라서 결과를 먼저 확정 짓고 협상을 하는 ‘선(先)결과-후(後)협상’을 선호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북한에게는 현실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코로나-19 위협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지원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아쉬운 윤대통령 시정연설

북한은 윤석열 정부와 접촉이 없었던지라 일단 윤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부터 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대북통지문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현재는 윤 대통령의 진심을 설명할 채널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따라서 어차피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북한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지원해라. 그래야 북한이 움직일 것이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모든 지원을 ‘동포적 성의’로 다할 의사가 있다고 발표해라. 북한이 부담을 느낄 정도여야 한다. ‘필요한 지원’이 아니라 ‘모든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심지어 식량 지원까지 포함해 북한이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면 어떨까. 그래야 북한이 설령 거절하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은 실무접촉을 통한 해결은 탁상행정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심을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가 좋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몰라도. 남북관계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꽁꽁 얼어붙었다. 따라서 통 큰 제의를 먼저 하고 실무접촉을 할 필요가 있다.

기회를 살려라

이번이 좋은 기회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며 위기는 국제사회와 함께 극복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해서는 안된다. 작은 ‘만족’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불행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신(神)은 잠시 시간을 내준다.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정치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역사적인 순간을 단숨에 잡아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가는 순간, 뛰어나가 그 옷자락을 붙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다.”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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