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변화에 부합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서평: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2022년) 이현민, 김민정 공저 / 북코리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레닌그라드에서 소방수로 군 복역했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의 교향곡 7번이 초연됐다. 살인적인 추위와 인육을 먹으며 900여일을 생존했던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에게 그의 교향곡 7번은 삶과 평화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전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대표적인 잣대로 생각되는 것이 ‘문화’이며, 그 문화의 정수인 예술은 인간 역사의 장(場)에서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이유가 되고 때로는 잔혹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대중예술의 영향력은 크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환경과 만나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최근 K-콘텐츠의 선전을 목도하면서 흐뭇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반도체, 조선 등 국가 기간 산업의 선전보다 더 강력한 대중 문화의 파괴력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문화 평론가와 문화예술 전문 변호사가 만나, 급변하는 우리 대중문화의 변화 방향을 정리해 보고, 이에 따른 법 규제 및 적용 현실을 진지하게 전해주는 좋은 책이 출간되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현민 씨와 김민정 변호사가 공저한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부제: 평론가와 변호사의 수다)』는 화려한 대중 문화계와 관련된 법 규제 현실을 과연 ‘수다’처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최근의 다양한 매체로 진화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한다. 소비자가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OTT의 급부상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환경의 배경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등장한 메타버스 속 문화예술의 현실을 전한다.
새로운 매체 환경은 법 제도의 시급한 마련을 요구한다. 다양한 선택지가 등장함에 따라, 제작자가 아닌 시청자가 헤게모니를 쥐게 되었다. 그런 현상 속에서 방송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고, 연예인이나 비연예인 등 출연자의 사생활 침해 부분 등 발생 가능한 법적 문제와 대응 방안을 설명한다. 현대 미술과 대중 문화의 부분에서는 디지털 미술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NFT 환경과 관련 법제의 부조 상황을 소개한다.
대중 문화 예술이 불러온 사회 문제들을 소개하면서 사회 여론의 부적절한 굴절을 가져오는 가짜 뉴스 문제, 진정성의 실추를 불러온 유튜버들의 뒷광고 이슈, 성희롱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에 대한 올바른 법적 해석 방법을 소개한다. 연예인을 둘러싼 사건 사고 부분에서는 공인으로써 공익성을 실추했을 때 대중의 사랑이 한순간에 무거운 질타로 이어지는 준엄한 현실도 소개한다.
대중문화 예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
책은 재미있다. 한가지 대중 문화 현실에 대해, 공저자가 각자의 전문적인 시선으로 이슈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미있다. 이현민 평론가가 대중 문화 현상에 대한 생동감 있는 업데이트를 한 뒤에, 그와 관련된 법 규제 현실이나 적용에 대해 김민정 변호사의 이성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다.
코리안 인베이젼(Korean Invasion)으로 일컬어지는 <오징어 게임>의 엄청난 흥행 성공에 흥분하다가, 흥행에 걸맞는 적절한 수입이 제작사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아쉬워하게 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을 둘러싼 전국민의 뜨거운 관심에 흐뭇해하다가도 실시간 투표 부정 행위를 보고 싸늘함을 느끼는 식이다. 이(異)영역의 전문가들이 공저하였을 때 느끼는 ‘소재를 보는 시각의 다양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저자가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이기도 하지만, 합쳐져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대중 문화 예술을 복합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혜택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보면서 두드러지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 콘텐츠를 둘러싼 냉혹한 주변 환경이다. 2015년 서울대 이정동 교수는 『축적의 시간』에서 내생적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함을 지적했었다. 분야는 달라도 축적의 시간이 의미하는 내생적 성장은 중요하다. 스크린 쿼터제 축소를 직면하고 주연 배우들이 삭발 투쟁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우리 대중 문화는 2020년대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K-콘텐츠의 성공의 뒤에는 전 세계 대중문화를 쥐고 흔드는 외국 플랫폼 기업들이 존재한다. 과연 우리 콘텐츠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외국계 OTT는 전 세계로 뻗어 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내 시장도 과반을 잠식하고 있다. 자칫 우리 대중 예술 제작사가 하청업체화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 발맞춰 급변하는 산업의 변화 속도에 부합하지 못하는 법 제정이나 올바른 해석 틀 마련은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법 규정을 적시에 제정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대중 문화의 내생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법 제정의 중요성이다. 소유권이 불분명하던 디지털 예술 작품에 대해서 NFT와 같은 새로운 결제 수단이 발전했다. 이 책은 예술품의 NFT 결제 시스템을 둘러싼 법적 분쟁의 해석 방향이 정립되지 못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공연 등 새로운 공연 형태에 대해 과연 이것을 진정한 공연으로 봐야 하는지의 법 해석 문제도 존재한다.
새로운 콘텐츠들, 우린 잘 준비하고 있나
법이 먼저 생기고 사회적 이슈가 나중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선행되고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 법이 제정되는 것은 대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산업 여건 속에서, 우리의 법 제정이나 법 적용 메커니즘은 너무도 그 필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감지되었다. 선전하고 있는 K-콘텐츠에 신속한 법 대응이나 선제적으로 적확한 해석의 장치가 겸비된다면, 그만큼 우리 콘텐츠의 파괴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또 하나는 대중 문화 파급력에 걸맞는 연예인 및 인플루언서들의 인성 문제다. 대중 문화 공급자는 어느 때 보다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대중 문화의 본격적인 태동기에 독일의 미학자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강조한 ‘예술의 무기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한 시기다. 그는 예술이 사회 비판적 시선을 갖되 거리를 두어야 하고, 사회 비판이 예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됨을 강조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를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고 이현민 평론가는 지적했다. 그만큼 현대의 대중문화는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대중 예술은 모두가 콘텐츠의 제공자가 될 수 있다.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기에 콘텐츠의 중심에 서있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들의 윤리적 자질은 중요하다. 최근 그들의 인성 문제로 불거진 다양한 불법, 탈법 문제를 보면서, 수익만 창출하면 된다는 식의 천민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판단의 잣대 중심에는 공익성이 있다. 연예인은 공인이기에 그에 걸맞는 도덕적 자세를 함양하여, 윤리적 책임에 스스로 떳떳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김민정 변호사는 겉은 화려하지만 그 뒷면은 치열한 것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말했다. 한 순간에 부상해도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또 대중이 그러함을 확인하는 순간에 몰락하는 것이 대중 문화 산업의 엄정한 현실임을 우리 대중 문화 예술 분야의 모든 분들이 유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급변하는 대중 문화 예술계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우리 대중문화에 유리한 법 규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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