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PC주의, 새로운 교훈을 얻다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인어공주의 실패 vs 브리저튼의 성공 인어공주, 주인공만 흑인..배경은 백인문화 브리저튼, 인종논란 멋지게 극복...서사의 힘 “‘정치적 올바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

'샬럿 왕비:브리저튼 외전' 한 장면.
'샬럿 왕비:브리저튼 외전' 한 장면.

예전에 미국에서 할리우드의 주류 콘텐츠는 당연히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백인 배우로만 기용하는 행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스토리의 맥락과 관계없이 어느 인종을 표현하던 백인 배우만 기용하던 시절이었다. 백인들의 할리우드 장악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할리우드는 ‘토큰 블랙’(구색 맞추기용으로 흑인 캐릭터를 집어넣는 행태)으로 눈속임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과 항의는 더욱 거세지고, 전체적인 인식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각성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또한, 시대적 메시지도 변화하면서 할리우드도 이제는 “다양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2023년도 현재, 할리우드는 ‘다양성의 추구’를 넘어 다양성이 전면에 급부상한 시대가 됐다.

하지만 최근 할리우드에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데(칼럼 참조: 헐리우드의 PC주의, 역차별의 딜레마) 대한 반발로 여러가지 이견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성에 대한 시도를 반기는 이들도 많지만,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 역시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무분별한 ‘결과적 평등’에 신물이 난 이들이 ‘인종 코드’가 오히려 작품을 훼손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불만이 더 높다. 특히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경우에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 역사적 고증을 완전히 무시하고 원작을 훼손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역사가 왜곡되면서 전체 스토리의 맥락과 완성도도 함께 떨어진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완성도는 당연히 ‘인종 논란’으로 다시 귀결된다. PC주의가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망친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최근 대중들을 만난 PC주의 작품의 대표적인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인종 문제로 인한 다양한 논란을 겪는 할리우드가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려면 결국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인어공주> 실사판의 실패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이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 사랑을 받은만큼 만화 원작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와 인기는 이미 검증됐다는 평가다. 때문인지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알라딘> 실사판의 흥행 성적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2021년 캐스팅 단계부터 <인어공주> 실사판은 논란에 휩싸였다. 바로 아리엘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면서 부터다. 그리고 얼마 전 베일을 벗은 <인어공주> 실사판은 결국 기대 대신에 실망으로 결말이 났다.

'인어공주' 실사판.
‘인어공주’ 실사판.

각종 논란을 불식시킬만한 멋진 작품이 나오길 바랐던 원작 팬들의 기원과는 다르게, 영화 개봉 후에도 다양한 논란은 가속화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역시 ‘인종’ 논란인데, 단순히 흑인과 백인 캐스팅의 문제가 아닌, 흑인 아리엘의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 각색이 문제가 되었다. 흑인 배우 기용의 장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원작인 백인 관점의 문화를 그대로 차용하였고, 인어공주’만’ 흑인인 상황은 보는 이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특히 인어공주 설화의 경우, 세계 각국에 다양한 반인반수, 반인반어의 이야기가 존재할만큼 문화원형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만약 흑인 아리엘의 존재적 의미와 가치 등을 새로운 서사적 설득의 과정을 통해 풀어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원작 스토리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오히려 흑인 아리엘을 더욱 동떨어져 보이게 할 뿐이었다. 공감을 잃은 <인어공주> 실사판은 그야말로 실패한 ‘다양성 코드’의 전형으로 기억될 것 같다.

<브리저튼 외전>의 놀라운 성공

반면 넷플릭스에서 세 번째로 공개된 <브리저튼> 시리즈중 <브리저튼 외전>은 또 한번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선전했다. <브리저튼> 시즌 1은 19세기 리젠시 시대 영국 사교계의 로맨스와 아찔한 스캔들을 다뤘다. 하지만 2021년 공개 당시 엄청난 인기와 동시에 적지 않은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영국 리젠시 시대의 흑인 왕비와 흑인·유색인종의 귀족은 역사 고증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에 프로듀서 숀다 라임스는 “우리 드라마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말로 논란을 일축했는데, 단순히 이러한 논란을 무시하고 넘어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서사의 완결성과 공감대를 높였다.

예를 들어 <브리저튼> 시즌 1은 조지 3세가 흑인 왕비(실제로 포르투갈계 왕비의 피부색이 어두웠다는 설에 착안)와 결혼하면서 영국에 인종 평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장치를 마련하여 당위성을 높였다. <브리저튼 외전>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흑인 왕비의 젊은 시절, 탄생 비화를 조명하는 프리퀄(기존의 작품 속 이야기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을 제작해 시청자들의 의문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었다. 또 한번 완성도 높은 시즌 물의 제작을 통해 <브리저튼> 세계관을 빈틈없이 완성한 것이다.

인종 갈등은 미국 사회의 숙원 과제다. 오랜 시간 비슷한 갈등을 이어온만큼 그 속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할리우드도 오랜 갈등을 통해 이제는 마주해야 할 결론이 있다. 이야기의 성지, 할리우드는 서사의 완결성과 완성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사는 것이 사회적 메시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서사를 통해 울고 웃고 공감할 수 있다면 주인공의 인종이 무엇이 되었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글쓴이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이현민은 대중문화평론가, 한중 콘텐츠 연구자로 로앤컬쳐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북경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 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입체적 한중 대중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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