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 찬란하게 빛난다

서평:『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영원 불변 불멸의 가치에 짓눌린 인간의 삶 가볍게, 아름답게 삶은 다양한 가치를 누려야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스틸 컷.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스틸 컷.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 지식인의 삶을 통해서 인간이 믿고 따라야 할 ‘키치(kitsch)’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인간은 고귀하고 묵직한 철학적 이상인 ‘키치’를 추구하지만, 결국 삶의 순간의 가벼움을 추구할수록 생생하고 진실해진다고 이 책에서 주장한다. 또 인간의 삶 저마다 가치롭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4명 남녀의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

이 작품은 4명의 남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삶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토마시는 유명한 외과의사다. 사회적 명망과 달리 여성 편력이 심한 호색한이다. 토마시는 여자를 사랑의 목적이 아닌 성을 수집하는 수단으로 대한다. 편집증적인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적 인물일 뿐이다. 그런 그가 시골 호텔에서 테레자를 만나게 되면서 순식간에 사랑은 필연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알게 된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인생의 무거움이다. 토마시는 수많은 여성을 쫓아 수많은 관계를 맺지만, 결국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오직 테레자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사회적 지위와 생명의 안전도 버리고, 탈출했던 공산주의 체제하의 프라하로 다시 돌아오는 토마시. 독자는 가장 인생을 가볍게 살고 있는 것 같았던 그가 어쩌면 가장 무거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불우한 가정 출신의 테레자는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하다. 바에서 일하는 그녀 앞에 토마시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이 만남이 운명이 되리라 직감한다. 운명으로 가장한 계산된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토마시를 찾아가게 되고 토마시와 가정을 꾸린다. 그럼에도 토마시가 다른 여자들과의 애정행각을 그만두지 않자, 진정한 삶을 찾는다며 토마시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프라하로 떠난다. 토마시를 떠난 이유는 끊임없이 그에게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무기로 토마시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테레자는 결국 토마시의 죽음에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가벼움 만을 추구했던 테레자가 무거움을 쫓아가는 대목이다.

화가 사비나는 토마시의 정부다. 자칭 토마시와 ‘에로틱한 우정’을 지속한다. 그녀는 공산주의의 치하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 불변의 진리로 미학적 이상향인 ‘키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산주의의 키치와 자신의 키치가 일치하지 않아 괴로워한다. 사비나는 가장 무거운 키치를 추구했지만, 그녀의 일상은 가벼움 그 자체다. 그러면서 토마시나 프란츠 같은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는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연애를 하는 그녀로부터 키치와 같은 인생의 중대한 무거움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롭다.

프란츠는 가장 불쌍한 존재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가벼움’에 끌려 그녀에게 빠진다. 아내 마리클로드와 사랑 없고 의무만 가득한 ‘무거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프란츠는 자신의 몸을 ‘무거운’ 대상으로 여긴다. 근육질에 잘생긴 얼굴로 사비나를 유혹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프란츠는 사비나와의 불륜 관계를 아내 마리클로드에게 당당히 알리고, 사바나에게 돌아오려 한다. 그 순간 사비나는 애정이 식어 버린다. 사랑은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거운 관계로 발전될 것을 우려한 사비나가 프란츠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비탄에 빠진 프란츠는 그제서야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태국 거리에서 강도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던 그 앞에 아내 마리클로드가 지키고 있었음을 안다. 마리클로드는 끝내 프란츠를 용서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출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출판

‘프라하의 봄’이 맞닥트렸던 가벼움과 무거움

이 작품의 배경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사건이다. 프라하의 봄이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치하의 체코에서 싹튼 민주화운동이 그해 8월 소련 침공으로 막을 내린 비극적인 시기를 말한다. 이데올로기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그 시기, 누구도 획일성을 부정 못했고 누구나 무거운 가치를 추구했다. 이념과 사상을 따르지 않는 것은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며 묵직하고 필연적인 것만 가치있는 것이라 믿었다. 획일적인 가치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임을 부정받던 시기였다.

이 책에서 필자가 주목했던 부분은 삶이 권력에 침탈당한 채 인간성을 상실했을 때의 우리의 자세다. 우세한 위력에 대항하면서 우리가 나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위력에 굴복하는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준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감시와 통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 속의 국민은 항상 같은 사상과 단어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갇혀 지내야 한다.

저자는 획일성은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보다 더 악행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는 신념과 사상은 때로는 우리를 옥죄는 형벌과도 같다. 권력으로 획일을 조장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죽음을 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범죄다. 이제야말로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어야 할 때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가벼움 속에 찬란히 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흑백논리가 활개치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하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필요성도 절감한다. 영원 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열망이 일견 당연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이다. 불완전함과 인간은 한 번 밖에 못산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감정으로만 사는 것이 참된 삶인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과 타인의 실수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자연스럽게 관용과 타협의 시선이 싹트게 된다. 실수를 하고도 실수를 인정 못하는 지도자는 결국 자신은 완벽하다는 키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불변 불멸의 철학과 가치를 저자는 ‘무거움’이라고 봤다. 우리 삶의 영원 회귀성을 니체는 ‘무거운 짐’으로 표현했는데, 그 ‘무거운’ 가치를 좇아 살아가기엔 우리들의 일상은 너무나 가변적이다.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뽐낸다.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점은 이 지점이 아닐까 한다.

삶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늘 무겁고 장중하며 영속적인 것이어야 하는 걸까? 인간의 역사와 정치적 사상과 개인의 사랑 모두에 있어, 우리는 가벼움을 찬란히 발하며 살아가는 존재일까?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작품이다.

글쓴이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

필자인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는 일본 화학회사에서 오랜 기간 전자재료 마케팅을 담당했고, 이후 SK그룹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연간 120여권이상 책을 읽고 있는 독서광이다. 현재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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