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다”
서평: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한 비결이자 2022년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최근 수개월 동안 국내 서가의 ‘과학/자연’ 분야에서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 있다. 2021년 국내에 소개된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그의 배우자 버네사 우즈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다. 문·이과 지식과 감수성을 겸비한 융합형 지식인 중 한 명인 그의 책은 우리 사회에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진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시작해 사회 정치의 현안을 꼬집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에서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핵심 원인은 ‘다정함’이다.
‘자기 가축화’에서 얻은 특징 ‘다정함’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우선 ‘자기 가축화’ 가설을 통해 사피엔스가 번성했던 비밀인 다정함이 등장한다. 인류의 가장 오랜 친구라는 개를 관찰하며 손짓을 따라가며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에 주목했다. 개가 보여주는 마음 읽어내기 능력을 바라보면서 협력적 의사 소통의 중요함을 알게 된다. 야생동물의 가축화 가능성을 증명한 벨라예프의 실험을 통해 야생동물도 수세대를 걸치면 자기 가축화가 진행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인류에게 친근한 가축의 공통점인 쳐진 귀, 짧은 주둥이, 말린 꼬리 등은 수세대를 통해 뇌에서 척수를 경유해 전해진 자기 가축화의 특성임을 밝힌다.
놀라운 것은 인류 자신도 ‘자기 가축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체격도 두뇌도 열등했던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밀쳐내고 번성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다정함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역사는 유혈이 낭자한 자기파괴인 전쟁으로 얼룩졌다. 농경사회는 인류의 다정함을 무너트렸고, 독재자를 탄생시켰다. 독재자가 자주 사용하는 무기는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다. 증오와 분열을 선동하고 조장해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다정함의 반대편에는 양날의 검처럼 분열과 증오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집단의 ‘비인간화’를 통한 증오는 학습을 통해 전향될 수 있다. 타인종이나 외국인에 대해 보이는 혐오는 교육과 접촉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관용을 보여주게 된다. 다양함을 수용하고 포용력을 고취시켜, 인류가 번성했던 그 ‘다정함’으로 되돌아가자는 내용이다.
트럼프의 선동과 혐오를 보면 ‘충격’
이 책이 집필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왜 ‘다정함’에 주목했는지 이해된다. 브라이언 헤어가 이 책의 ‘감사의 글’ 부분에서 밝힌 소감을 보면, 그가 이 책의 초고를 거의 완성한 때는 2016년이었다. 원래는 인류의 최악의 본성인 증오의 발현을 경고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 대통령 선거에서 선동과 분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의 결말이 경고에서 끝나지 말고, ‘해결책’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내용을 수정하느라 2020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을 4년이나 미룰 만큼 ‘외집단’에 대한 선동과 혐오를 드러낸 트럼프가 당선된 사실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현재의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남긴다.
첫 번째는 증오와 불신이 배경이 된 독재자 탄생의 메커니즘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두뇌가 똑똑했다기 보다, 친화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정함을 간직한 인간의 역사는 왜 하필 유혈이 낭자한 전쟁의 역사가 되었을까? 근본 원인은 전쟁과 선동을 일삼는 독재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농경 생활이 시작되며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경 생활이 시작되며 인류는 끔찍한 노동과 질병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농경 사회로의 진화는 불평등과 힘겨운 노동뿐만 아니라 ‘독재자’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수렵 채집 생활에서 ‘다정함’을 무기로 번성한 인류의 가장 큰 시련은 바로 농경생활이었다. 농경을 위한 집단 거주는 이른바 가장 친화적이고 협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던바의 수’ 수준인 150명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다정함이 폭력을 누를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된 것이다. 소수 집단이었으면 쉽게 드러날 독재자가 큰 무리가 되면서 그 존재가 은폐되었다. 이후 독재자는 집단내 약자인 하위집단을 ‘비인간화’해 선동했고, 그러한 분열과 선동을 통해 집권했다. 근대 사회의 반목과 갈등도 이 독선적인 압제자들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외집단의 ‘비인간화’에 취약한 사람들의 특성이다. 저자는 자기 집단에서 협력적 의사 소통을 잘 할수록, 자기 집단에서 벗어난 외집단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비인간화’ 특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신념이 강한 극단주의자일 수록 독선으로 빠지고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다.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극단주의자의 예로 권위주의 성향과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외부자를 ‘위협’으로 간주하며, 사회지배 성향의 높은 사람들은 외부자를 ‘열등한 존재’로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한다.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 민주주의의 붕괴
2016년 미국의 대선은 그러한 ‘비인간화’가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준 전형이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 언론들과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선거인단 제도, 국소적인 사안에 대한 집요한 말다툼에 매몰된 정치인들, 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결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선동과 분열의 아이콘인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외신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성숙 단계에서 부실 단계로 강등시켰다. 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지만,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원칙이 선동으로 무너진 것이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어리석은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극단은 극단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교육과 다양한 접촉을 통해 다정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증오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저자는 넬슨 만델라의 말을 인용하여 외집단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학습되는 것이라고 했다. 불관용은 무지와 닫힌 마음의 소산임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접촉’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압제 속에서도 용감히 유대인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의 예를 들며, 이들이 나이, 인종, 성별, 교육 정도 등 측면에서 특별한 공통점이 없었음을 설명한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유대인과 나치 집권 이전에 나눴던 좋은 기억이었다. 긍정적인 접촉의 기억은 인간에게서 다정함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접촉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에서 지적했듯이, 고립은 현대인의 판단을 극단으로 내몰고 가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권력자의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다양한 구성원이 협력적인 의사 소통을 할 때 가장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대의민주주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온건한 중도 지지자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사안에 따라 자유롭게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장점만을 취사 선택할 때 민주주의 발전이 공고해진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다정함’이 가장 필요한 나라
이제 책을 떠나 현실을 되돌아본다. 우리의 현재 지도자의 모습은 어떤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능력주의를 신봉이라도 하듯 자기와 같은 대학 출신으로 방어막을 단단히 둘러쌓고 눈과 귀를 막아 다양한 의견 수용을 스스로 거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그 속에는 ‘다정함’이 들어갈 틈이 없다.
동시에 필자의 한 지인 이야기도 떠오른다. 최근에 한 이집트 유학생의 사연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의 명문대에서 학부와 석사까지 졸업하고 한국에서 취업하려 했던 그녀에게 한 단체는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 50만원의 급여를 제시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놀라운 것은 그 단체에서 “당신은 외국인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라고 당당히 말했다는 사실이다.
『제국의 미래』에서 미국의 정치학자 에이미 추아 교수는 역사 속에서 시대를 선도했던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 이면에는 ‘관용’이 존재했음을 역설했다. 에이미 추아의 ‘관용’은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함’으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다정함이 가장 필요한 곳은 2022년 대한민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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