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못읽는 리더는 가여움을 넘어 무섭다”

서평:『칼의 노래』(2012년) 김훈 / 문학동네 왕의 의심에도 백성에 눈물 흘리는 이순신 공감능력 없는 리더와 정치, 얼마나 위험한지

영화 '한산-용의 눈물'에서 이순신(박해일 분).
영화 '한산-용의 눈물'에서 이순신(박해일 분).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누적 관객수 600만명을 넘어섰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주제로 한 영화다. 세계 해전사에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적에게 마저 신으로 추앙되는 영웅의 이야기다. 이순신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은 많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은 김훈의 2012년 작품 『칼의 노래』 다.

'칼의 노래' 표지. 김훈/문학동네
‘칼의 노래’ 표지. 김훈/문학동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충무공 이순신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 역사속 전쟁사에 빛나는 명장이기에 해전에서의 승리와 무용담이 주가 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지만, 사실 이순신이란 한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이 중심이다. 전쟁을 묘사한 부분 보다는, 전화의 폭풍 속에 휩싸인 힘 없는 나라의 장수로서의 갈등, 그리고 임금에게 버림을 받지만 그렇다고 백성의 아픔을 도외시하지 않고 그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한 인간이 등장한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백의종군하는 대목부터 그려진다. 그는 복귀하자마자 몇 안 되는, 12척의 전선(戰船)을 이끌고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반면 이순신을 시기하던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섬으로 도주하다 전사한다. 이순신은 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승리를 이끌기에 최적인 장소를 찾아다니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그는 군량미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피난민을 마주칠 때마다, 그들을 내치지 않고 위로하고 보듬는다. 명나라 원군은 스스로 천군이라 자처하지만, 싸우지 않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약소국의 치욕을 느끼면서도 백성 생각뿐이다. 드디어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회군을 결정한 왜군과 만나 노량에서 전사하기까지의 내용이, 소설의 스토리 라인이다.

『칼의 노래』 속 조선은 총체적 위기에 휩싸인 국가였다. 다양한 위기의 징후가 포착되지만 필자의 눈에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리더십의 부재였다. 하버드대 교수 도리스 컨스 굿윈의 저서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에서는, 리더의 조건으로 세심함과 인내심, 그리고 신중함과 공감 능력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불행히도 왜군의 침략을 받은 그 시대 조선의 군주, 선조는 당파 싸움에 가려 간신과 충신을 구별하는 세심함도 없었고, 전공을 세운 장수를 일관적으로 믿어주는 인내심도 부족했다. 물론 공감 능력도 떨어졌다.

세심함이 부족한 우매한 군주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능력한 참모들은 재앙이다. 위기를 자초하는 필연적인 구조다. 큰 틀에서의 세계 정세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해 결국 왜적이 침입 했음에도 권력을 위한 당파 싸움과 중상 모략은 계속되나, 군주는 옥석을 가릴 혜안(慧眼)을 갖지 못했다. 충신은 이런 임금을 가여워하지만 동시에 아둔하고 노력하지 않는 군주는 위험하다고 느낀다. 소설 속 이순신은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고 표현했다. 격하게 공감하는 대목이다.

어리석은 군주, 무능력한 참모

어리석은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의 충신은 사면이 적으로 둘러 쌓여 있음을 느낀다. 소설 속의 ‘칼’은 강단과 능력의 메타포인데, 작가는 결국 이순신도 적군의 칼과 임금의 칼, 두 개의 칼 사이에서 고군분투 했음을 이야기했다. 임금은 무능한 정치와 언어의 칼로 전쟁을 수행하였음을 안타까워했다. 자신과 사직을 보위하기 위해 전공을 세운 이순신을 장차 반란의 종자(種子)로 인식해 토사구팽의 대상으로 삼고 끝없이 감시하는 모습이 소설에 나온다. 작가는 임금의 그 언어와 울음 사이 어디에도 강단과 능력, 즉 ‘칼’은 보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리더십의 부재는 곧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전란에 휩싸인 백성은 도적이 되고 거지떼가 된다. 포로로 잡혀 적장의 가마를 매기도 하고, 적선의 노를 젓는 격군으로 사용당하다가 같은 조선군이 쏴 대는 총포나 화살에 맞아 죽기도 한다. 여인들은 적군에 잡혀 적장의 수발을 들고, 아이들은 적군 말의 배설물 속에 낱알을 나뭇가지로 파헤쳐 찾아 연명하는 끔찍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손끝 하나 안대고 전공으로 기록될 적의 수급을 확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명나라 원군을 위해, 나올 것 없는 황폐한 들판에서 그나마 기름을 짜내듯 명나라 원군에게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백성들. 소설 속 조선의 모습은 생지옥이다.

이순신은 전란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명이 모질다고 느끼다가 그들을 지키지 못한 수치심에 치를 떤다. 아파하고 또 눈물을 흘렸다.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리더의 공감 능력의 모습이다. 민의를 읽고, 아픔을 공감하고 더불어 역경을 헤쳐나가는 능력 있는 리더십은 비단 전란 속에서만 필요한 덕목은 아니다. 각국이 첨예하게 경쟁하고 자칫 신 냉전주의의 대결 구도가 생길 수 있는 현재의 세계 정세는 하루하루가 위기이자 기회다. 리더십에는 휴일이 없다.

지난 주 수도권 지역을 강타한 폭우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리더십의 부재가 자칫 어떤 위기의 모습을 낳을 수 있는지를 똑똑히 지켜봤다. 폭우로 인한 수해 현장에서 사진이 더 잘 나오게 비나 왔으면 한다는 한 정치인의 모습은 가여움을 넘어서 무섭다. 공감 능력 부재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패망의 리더십의 전형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글쓴이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

필자인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는 일본 화학회사에서 오랜 기간 전자재료 마케팅을 담당했고, 이후 SK그룹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연간 120여권이상 책을 읽고 있는 독서광이다. 현재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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