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풍자하다

한국전쟁후, 압축 성장속에 가려진 중산층 서평: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박완서

박완서 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년)/ 세계사. 오른쪽은 작가 고 박완서
박완서 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년)/ 세계사. 오른쪽은 작가 고 박완서

6월이 지나가고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6월25일이다. 민족 상잔의 비극과 호국 영웅들을 기억하는 날이지만 군사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고취하자는 명목으로 이날을 정권 연장 수단으로 이용했다. 각종 반공 행사들이 열렸으며 아이들은 머리에 뿔난 도깨비 형상으로 ‘북괴’를 그려냈던 날이기도 했다.

6.25를 떠올리면 민족의 아픔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그와는 다른 시각으로 6.25를 바라본 책이 있다. 바로 2011년 작고한 작가 박완서의 1983년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다. 이 책은 1982년부터 1983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소설을 한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책이 출판된 1983년은 마침 KBS가 주관한 남북 이산 가족 찾기가 한창 진행되던 때기도 했다.

고 박완서의 1983년작

소설의 주인공은 전쟁 속에서 성장한 수철, 수지, 수인 삼남매다. 유복하던 집안은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반동 분자로 몰려 인민군에 끌러가면서 불행이 닥친다. 이후 삼남매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머문다. 유난히 식탐이 심했던 막내 오목을 질투한 언니 수지는 피난길에 일부러 막내의 손을 놓아 버려버린다. 어머니도 피난 중 사망해 수철과 수지 남매는 고아가 된다.

전쟁 후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업가로 변신한 수철은 잃어버린 막내 오목(수인)을 찾아내지만, 가족으로 품지 않고 익명의 독지가로 거리를 두며 지켜본다. 장녀인 수지는 막내를 버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수철과 수지가 막내 오목(수인)을 찾고도 가족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미 성공한 그들의 눈 앞에 수인은 그저 전쟁 고아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수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훼방을 놓아, 오목을 불행에 빠트린다. 어느덧 같은 고아 출신의 남자 인철과 결혼한 오목은 불행한 삶 속에서 폐결핵으로 죽게 된다. 수지는 오목이 죽는 순간에 자신이 친언니임을 밝히며 참회하지만, 오목은 이미 죽은 뒤다.

전쟁이 끝난후 더 분열된 사회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흔히 가족의 애사(哀史)를 그린 소설일 것으로 독자는 생각하기 쉽지만,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박완서 작가가 짚어낸 고도 성장기 속 중산층의 위선과 속물 근성이다. 따뜻했던 우리 전통 사회의 도덕적 관념은 언제 이토록 급격하게 바뀌게 되었을까?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적을 무찌르는 등 공통의 경험을 했음에도 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철되었을까?

작가는 전후 사회가 분열되고, 새로운 계층의 사다리에 올라탄 이들과 올라타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의 장벽이 공고해진 원인으로 속물주의를 지목한 것이다.

동생 오목(수인)을 찾고도 익명의 독지가로 남는 정도에 그친 오빠 수철과 거기에 한술 더 떠 보다 적극적으로 오목의 삶을 망쳐 놓는 언니 수지. 대학을 졸업해 부유층으로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나중에 나타난 오목은 가족이 아니라 초라하고 교양 없는 고아에 불과했다. ‘수년간 고아로 자란 아이를 어떻게 믿을 것이며, 또 그런 동생이 자기 가족과 같이 지내게 할 수 없다’는 수철의 말을 통해서 전쟁 고아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을 느낀다.

혈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번듯한 신분 뒤에 감춰진 사회적 체면을 중시했던 식자와 부유 계층의 위선과 허위 의식이었다. 전쟁에서 살아 남는 생존을 같이 경험한 우리가 역설적으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길로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그저 자신과 가족만이 권력의 주변에 잔존하기를 바라는 한국 사회의 속물 근성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가족만의 영달 추구하는 속물근성

산업화 시기에 가족은 핵가족화 되었지만, 오히려 타인 가족과의 벽은 높아졌고 모든 것을 가족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특이한 한국 사회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김희경 씨는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한국의 유난스러운 가족주의가 소위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지나친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재미있는 것은 박완서 작가가 지목한 ‘속물 근성’이 어쩌면 그런 김희경 씨가 지목한 편견의 근원적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소설의 수철과 수지가 동생을 외면하는 것은 아마도 오목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 아님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은 한국 경제가 전후에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후에 원조 경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윤씨 부부는 전쟁 고아들을 보살핀다. 하지만, 구호 물품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일은 또 다른 돈벌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고, 윤씨 부부는 누군가 고아원의 부동산 값을 몇 배로 쳐준다는 말을 듣고 팔아 버린다. 사명감이나 교육관은 없고, 그저 한탕을 만들고자 하는 익숙한 배금 주의의 모습만 드러난다. 그런데, 고아원 원장 부부의 모습에서 독자는 압축 성장 속에 이미 자연스러워진 ‘내 가족만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수세대를 거쳐 선진 경제를 이룩한 서양의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는 세계에서 유래 없는 고도 성장을 이뤄냈다.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통해 제도를 개혁하고 진보를 이루려 했던 서양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스스로 타인과 경쟁하며 성장해야 했다.

빠른 성장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한국 중산층이 가지게 된 속물 근성은 더 소유하기 위한 ‘부의 카르텔’에 들어가려는 탐욕으로 이어졌다. 바로 소설 속의 수철과 수지의 모습이다. 속물 근성이 낳은 비양심과 위선, 허위의식과 가족 각자 도생의 결과는 오늘날 고도화된 불평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양극화 정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 클럽이라 할 수 있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불평등의 수준은 이미 최상위권이다.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년)의 스틸 컷. 배장호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년)의 스틸 컷. 배장호 감독이 연출했다.

인철이 결혼식 사진 찍기를 꺼렸던 이유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고도 성장기에 가려진 한국 중산층의 허위 의식과 속물 근성을 비판했다. 전후의 혼란을 계기로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의 축적 과정에서 정당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같이 품어야 할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유래 없는 분열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분열의 기저에는 이를 이용하려는 자들의 탐욕과 속물 근성이 아직도 존재함을 느끼는 요즘이지 않는가? 의미 깊은 초여름 6월, 아직도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웃의 진정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소설 속에서 같은 고아원 출신의 인철과 하룻밤을 지낸 오목(수인)은 결혼식 대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길 원했다. 하지만 인철은 사진관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가 거부한 이유는 그저 철이면 들리는 자선가들을 위해 찍은 사진이 그에게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고 그런 사진은 결국 의도가 불순한 그 자선가를 통해 전 세계를 돌며 구호품을 거둬들이는데 이용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철이 말한 그 자선가의 위선과 속물 근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갑자기 인철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글쓴이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

필자인 이기환 독서 인플루언서는 일본 화학회사에서 오랜 기간 전자재료 마케팅을 담당했고, 이후 SK그룹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연간 120여권이상 책을 읽고 있는 독서광이다. 현재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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