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혁명수비대는 왜 국가 위에 군림하나
군과 민병세력이 주인인 나라...중동은 왜 멈춰있는가 ‘병영 자본주의’, 중동 이해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
- 폭력과 생산의 결합 중동의 빈곤과 독재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군부와 민병대가 국가의 예산과 주요 산업(지대)을 독점하며 시민사회의 자생력을 파괴한 ‘병영 자본주의’의 결과다.
- 외부 충격에 취약한 유리 체제 이집트와 이란처럼 단단해 보이는 체제들도 실상은 세금 대신 지대로 버티는 구조이며, 최근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급격한 몰락은 외부 지지대가 사라질 때 이 구조가 얼마나 허망하게 깨지는지 보여준다.
- 구조는 구조로만 바뀐다 중동의 미래는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아니라, 군부 바깥에서 독립적인 기업, 대학, 언론, 사법 등 ‘자율적 제도’가 자라날 공간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가 아프리카 리비아에 근무하던 2013년, 알리 자이단 리비아 총리는 잠옷 차림으로 납치됐다. 그해 10월 10일 새벽 4시,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코린티아 호텔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외교관과 장관들이 통째로 묵을 만큼 안전하다던 5성급 호텔이었다.
괴한들은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내무부와 연계된 ‘민병대’였다. 42년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국가가 아니라 수백 개의 민병대였고, 그 현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필자는 매일 눈앞에서 봤다. 총리가 잠옷 차림으로 끌려가는 나라. 그것이 카다피 이후 리비아의 민낯이었고, 지금도 그대로다.
그리고 2017년 7월 이란 테헤란. 이란은 형식상 대통령을 국민이 뽑는 공화국이지만 그 위에 종신 종교지도자인 최고지도자가 있고, 정규군과 별개로 ‘혁명의 수호’를 임무로 하는 혁명수비대(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IRGC)가 있다. 국경이 아니라 현 정권 자체를 지키는 군대다.
그 해외 공작 특수부대 쿠드스군을 이끈 카셈 술레이마니는 2020년 미군 드론에 사살되기 전까지 이란 권력의 핵심 인물이었다. 재선 직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를 “총을 가진 정부”에 넘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수비대 지휘부가 현직 대통령을 소환해 앉혀놓고 훈계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4년 뒤 유출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의 녹음이 이를 확증했다. 이란 외교에서 전장이 외교를 압도했고, 그 전장을 지휘한 자는 술레이마니였다는 것이다.
잠옷 바람으로 끌려간 총리, 장군들 앞에서 훈계 들은 대통령. 두 장면이 중동을 압축한다.
총을 쥔 자가 시장과 정치를 함께 쥔 나라에서 선거는 장식이 된다. 이것이 ‘병영 자본주의’(Barracks Capitalism)다. 군과 무장조직이 폭력 수단과 생산 수단을 동시에 장악한 체제, 곧 병영이 곧 기업이고 정부인 체제다.
이 구조는 어디서 왔는가
중동을 설명할 때 흔히 꺼내는 세 가지 이유, 이슬람과 부족 갈등, 민주주의 미숙은 현상을 짚었을 뿐 원인은 짚지 못한다. 무슬림 국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경제가 돌아가고, 부족적이지만 걸프 왕정은 1인당 소득이 한국을 넘는다. 진짜 원인은 하나다. 폭력 수단과 생산 수단이 같은 손에 있다는 것.
기원은 셋이다. 첫째, 국가보다 군대가 먼저 있었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영토를 자로 그어 나눈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결과가 지금의 시리아·이라크·요르단·레바논이고, 식민 본국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헌법이 아니라 군대였다. 1952년 이집트의 나세르, 1963년 시리아·이라크의 바트당, 1965년 알제리의 부메디엔, 1969년 리비아의 카다피가 그 계보다.
둘째, 냉전이 이 구조를 굳혔다. 소련은 이집트·시리아·알제리에, 미국은 혁명 전 이란과 사우디에 무기와 산업 설비를 동시에 쏟아부었고, 탱크 공장이 곧 가전 공장이 됐다.
셋째,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산유국 국고가 시민의 세금이 아니라 지하에서 솟는 돈으로 채워졌다. 세금을 걷지 않는 정부는 시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없다. 납세자가 없는 곳에 주권자도 없다.
‘병영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집트는 가장 정제된 사례다. 현 대통령 엘시시는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직 야전군 총사령관이다.
이집트 군은 국방부 산하 국가서비스사업단을 비롯한 여러 기업군을 통해 파스타와 시멘트, 휴대폰과 주택, 고속도로, 신행정수도 건설까지 주도한다. 이 기업군의 GDP 비중은 보수적으로 5에서 10%(퍼센트), 넓게 잡으면 40%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있다.
군 기업은 세금과 관세를 면제받고, 토지를 우선 배정받고, 징집병을 값싼 노동력으로 쓴다. 민간 기업이 여섯 달 걸리는 인허가를 군 기업은 여섯 주에 받는다. 이집트가 2016년, 2022년, 2024년 IMF 구제금융을 거듭 받은 것은 외환 부족만이 아니라 민간 제조업이 자라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더 노골적이다. 경제 제국의 중심은 하타메 알안비아 건설본부다. 이란-이라크 전쟁 복구 과정에서 군에 건설을 몰아주며 탄생한 이 조직이 오늘날 이란 최대급 건설·엔지니어링 조직이고, 가스전·지하철·공항이 모두 이들 작품이다. 통신, 항만, 제재 우회 비공식 네트워크까지 더하면 이란 경제의 3분의 1에 육박한다는 추정이 국제 싱크탱크 사이에서 꾸준히 나온다.

역설(逆說)은 여기다. 서방 제재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약화시키는 대신 강화한다. 정상 무역이 막힐수록 비공식 네트워크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은 이 제국을 해체할 권한도, 의지도 갖기 어렵다.
알제리에는 ‘르 푸부아르(Le Pouvoir)’라는 그림자 국가가 있다. 프랑스어로 ‘보이지 않는 그 권력’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은 민간인이지만 실권은 군 정보기관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있다. 1991년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이 승리하자 군이 선거를 취소시켰고, 그 여파로 10년 내전에서 10만 명에서 20만 명이 죽었다.
천연가스 수익이 흐르는 중심에는 국영 석유·가스 공사 소나트락이 있고, 수익은 퇴역 장성 네트워크를 따라 분배된다. 2019년 시민들이 20년 집권한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군은 얼굴만 압델마지드 테분 대통령으로 갈아 끼웠다. 청년 실업률은 대략 30%안팎이다.
시리아와 리비아는 귀결을 보여준다.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아사드가 세운 왕조를 아들 바샤르가 2000년부터 2024년 11일 만에 축출될 때까지 이어받았다. 체제의 핵심은 시리아 인구의 12% 안팎에 불과한 알라위파(派)였다.
50년간 군과 정보기관 요직을 이 소수 종파가 독점했고, 바샤르의 외사촌 라미 마클루프는 한때 시리아 경제의 60%를 쥐었다는 말이 돌 정도의 특권 재벌이었다. 내전 13년 동안 정권은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캡타곤(불법 합성마약) 산업과 밀수 네트워크에 깊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국가가 마약 카르텔에 가까워진 것이다.
리비아는 더 극단적이다. 아프리카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이 나라에서 석유 수익은 국가가 아니라 민병세력으로 흘러간다. 각 민병세력이 보안 서비스 명목으로 예산을 받고, 석유 시설을 점거해 협상 지렛대로 삼고, 유럽행 밀입국 송출과 인신매매로 부가 수입을 얻는다. 평화는 이들의 수입을 없앤다.
국가 형식조차 취하지 않은 비국가 무장세력도 있다. 이란이 구축한 ‘저항의 축’이라는 네트워크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하시드 알샤비, 예멘의 후티, 가자의 하마스. 이들은 각 국가의 정규군과 병렬적인 군사력과 예산,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자체 통신망과 병원, 학교, 금융조직까지 갖춘 병렬 구조를 만들어 왔다. 레바논 정부가 2019년 달러 위기로 마비되는 동안에도 헤즈볼라의 ‘병렬 경제’(공식 시스템 밖의 ‘그림자 경제’)는 이란 지원과 자체 금융망으로 버텼다.
국가가 망해도 병렬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 레바논이 21세기 최악의 경제 붕괴국 가운데 하나가 된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지역, 다른 길
중동에 군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군이 강하면서도 병영 자본주의에 빠지지 않은 나라가 바로 옆에 있다. 예외가 법칙을 증명한다.
사우디·UAE·카타르 같은 걸프 왕정이 첫 예외다. 같은 산유국이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왕실이 군을 소유한다. 군이 국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우디는 국방·내무·국가방위 축을 왕실 내부에서 분산해 관리해 왔고, UAE에서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자예드 가문이 군과 경찰, 정보기관을 직할한다.
게다가 이들은 일찍부터 외부 경제에 편입됐다. 두바이 자유무역지대, 카타르의 장기 LNG 계약,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이 주도하는 ‘비전 2030’이 석유 지대를 글로벌 자본과 묶었다. 군이 기업화될 여지가 그만큼 좁아졌다.
이스라엘과 터키는 또 다른 길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계속 전쟁 상태이고 국방비 GDP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군이 경제를 소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이 민간 경제의 발사대가 됐다.
군 신호정보 부대 8200부대 출신들이 ‘체크포인트’와 ‘팔로알토네트웍스’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창업했고,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군 복무 중 과학기술 인재를 집중 육성해 전역 후 벤처로 내보낸다. 이스라엘 군은 기업을 운영하지 않고 기업가를 배출한다.
터키는 세 차례 쿠데타로 군이 경제까지 관여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2002년 집권 후 20년에 걸쳐 군을 체계적으로 제압했다. 결과는 양면이다. 병영 자본주의의 덫은 벗어났지만 그 자리에 민주주의가 아니라 에르도안 1인 체제가 들어섰다. 군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반드시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뜻이다.

안에서 곪고, 밖에서 터진다
이 구조는 안에서 곪는다. 그러나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세금 대신 지대(地代)로 돌아가는 정부는 시민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주인을 교체할 장치인 선거와 사법, 언론을 주인이 스스로 가장 먼저 파괴한다. 외부 세력인 걸프 왕정도,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도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현상 유지에 손을 얹는다.
체제가 무너지면 공동체 전체가 학살당할 수 있다는 소수 종파의 집단적 공포가 충성을 강제하고,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의 연쇄 실패는 “대안이 없다”는 심리적 잠금을 만들었다. 이 잠금은 반세기를 버텼다. 그러나 반세기를 버텼다고 영원하지는 않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도화선이 됐다. 그 뒤 14개월, 시리아에서 일어난 일은 50년 병영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실증했다. 아사드 체제는 2011년 봉기부터 13년을 버텼다. 러시아 공군과 이란 지상군, 헤즈볼라 보병이 떠받쳤기 때문이다.
2024년 말 그 버팀목들이 하나씩 빠져나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정면 대결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크게 약화돼 있었다. 외부 지지대가 사라진 순간,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의 북부 진격에 정권이 11일 만에 무너졌다.
이 속도가 모든 것을 말한다. 체제 아래 사회가 없을 때, 시민사회도, 독립 언론도, 자율 대학도 50년간 해체돼 왔을 때, 외부 지지대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함께 무너진다. 병영 자본주의는 단단해 보이지만 한 번 깨지면 파편만 남는 유리와 같다.
2026년 2월 28일, 이란에서 더 큰 일이 일어났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체제 자체를 겨냥한 ‘에픽 퓨리 작전’을 개시했고, 개전 당일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공습으로 사망했다. 혁명의 수호자를 자임하던 체제가, 혁명의 상징이었던 인물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 거부한 권력의 세습이, 이번에는 종교 직책의 형태로 부활한 셈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걸프 미군 기지에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부었다. 헤즈볼라는 3월 초 소규모 공격에 그쳤을 뿐, 2006년이나 2024년 수준의 전면전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란이 40년 공들여 쌓은 저항의 축이, 정작 테헤란이 불탈 때 사실상 침묵한 것이다.
50년간 중동을 지탱해온 두 기둥이 차례로 흔들렸다. 아사드 체제는 2024년 무너졌고, 이란이 40년 공들여 쌓은 저항의 축은 핵심 축들이 차례로 약화됐고, 이제 혁명수비대 본체마저 외부 공격 앞에 흔들리고 있다.
셋 다 안에서 곪았고, 셋 다 외부 충격에 노출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이 병영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스스로는 개혁하지 못하되, 외부 충격 앞에 어떤 체제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어떤 체제는 흔들리며 버틴다. 이 공백이 무엇으로 채워질지가 앞으로 반세기의 중동을 결정할 것이다.
맺으며
지리도 종교도 운명이 아니었다. 결정한 것은 누가 자본과 폭력을 함께 쥐느냐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중동에 민주주의가 가능한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중동에 군과 민병세력 바깥에서 자율적 제도가 자랄 공간이 있는가. 독립 기업, 독립 대학, 독립 노조, 독립 언론, 독립 사법. 이 다섯이 하나씩 자라는 만큼만 중동은 앞으로 갈 수 있다.
13년 전 트리폴리에서 총리가 잠옷 차림으로 끌려가는 걸 지켜봤을 때, 나는 이 나라는 왜 이렇게까지 됐는가를 물었다. 지금은 다른 질문을 한다. 영원할 것 같던 구조도 결국 무너졌다. 무엇이 그 자리에 들어설 것인가.
문제는 이슬람도, 부족도, 아랍인의 정신도 아니다. 문제는 구조다. 그리고 구조는 오직 구조로만 바뀐다.
이 글은 문병준 전 사우디대사대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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