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사우디 원전, 한국기업에 기회 줄까
- 사우디의 원전 생존 전략 사우디는 오일머니 낭비를 막고 ‘비전 2030’을 달성하기 위한 전력 확보와 안보적 억지력을 위해 코르 두와이힌 대형원전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 미국의 셈법과 딜레마 미국은 중국·러시아의 진출을 막고 중동 내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하려 123협정에 서명했으나, 농축 허용 논란과 이중잣대 비판이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 한국의 기회와 시험대 이번 협정으로 미국 주도의 사업 구조 속에서 한국이 뛰어난 시공 능력과 UAE 바라카 원전의 경험을 살려 EPC 및 기자재 공급 파트너로 참여할 중대한 기회가 열렸다.
사우디는 왜 이 협정 체결에 사활을 걸었나
한마디로 ‘포스트 오일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첫째, 국내 전력수요 폭증에 대한 해답. 사우디는 여전히 전력 생산의 상당 부분을 원유 직접 화력발전에 의존한다.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원유와 연료유를 합해 하루 100만 배럴 안팎을 발전용으로 사용할 때도 있다.
수출하거나 석유화학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석유를 국내 발전에 태우는 것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원전 전환은 그만큼을 수출·고부가가치 활용으로 돌리게 해준다.
둘째, 비전 2030의 산업 다각화. 원전은 첨단 산업 생태계(중공업·정밀제조·재료공학·인력양성)의 마중물이다. 걸프만 건너편 약 90~100km 거리에서 이미 상업운전에 들어간 UAE 바라카는 원전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원전 운영 역량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셋째, 대이란 전략적 억지. 농축 능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만약 이란이 언젠가 핵무기 개발로 다시 나아간다면, 사우디도 뒤따라갈 수 있는 기술적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실제 무기화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잠재력만으로도 지역 억지력의 요소가 된다는 계산이다.
넷째, 최근 미·이란 무력충돌 국면에서의 전략적 지렛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나탄즈(Natanz)·포르도(Fordow)·이스파한(Isfahan) 등 이란 핵시설이 타격을 받았지만, 실제 핵능력이 어느 정도 약화됐는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이란이 원심분리기와 핵물질을 분산·이전해 핵프로그램을 재건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사우디로서는 이란 핵프로그램의 향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민간 원자력 기반과 미래의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다섯째, 파키스탄과의 전략적 협력 병행이다.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지난해 9월 17일 전략적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해 어느 한쪽에 대한 공격을 양국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라는 점 때문에 핵우산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협정에 핵억지가 명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협정은 사우디가 미국 이외의 안보 선택지도 함께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침묵의 의미
과거 이스라엘은 사우디의 어떠한 농축 능력 확보에도 완강히 반대해 왔다. 2018년 네타냐후는 미국의 대사우디 원전 지원을 공식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서명 후 48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인 강한 반대 입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① 최근 미·이란 무력충돌로 이란 농축시설이 상당 부분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일각에서는 미국의 통제 아래 제한된 사우디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도하는 프로그램보다 관리하기 쉽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사우디의 독자 농축 능력 자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우려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② 사우디가 미국을 버리고 중국·러시아와 손잡고 사찰망 밖에서 원전을 짓는 시나리오보다는, 미국 감시 하의 민간 원전이 상대적으로 관리 가능한 선택지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③ 바이든 시절에는 ‘사우디 원전 협정 = 이스라엘과의 정상화’라는 조건이 묶여 있었고, 협상 과정에서 한때 이 연결고리가 느슨해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2일 트루스소셜에 “이 딜은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을 전제로 한다”고 못박았고, 백악관도 다음 날인 23일 브리핑에서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참여가 협정 추진의 핵심 조건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정상화 조건은 재부상한 상태이며, 이스라엘이 침묵하는 배경에는 자신들이 원하던 카드(정상화 연계)가 이미 관철됐다는 계산도 있어 보인다.
④ 사우디와의 정상화(아브라함 협정 확장)는 이스라엘의 장기 목표인데, 여기서 원전 딜을 정면 반대하면 그 문마저 닫힌다.

이란, 논리적 딜레마와 이중잣대 프레임
7월 24일 현재 이번 협정안에 대한 이란 정부의 구체적인 공식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란은 그동안 자국의 평화적 농축 권리를 강조하며 미국의 선택적 비확산 기준을 비판해 왔다. 향후 이란은 “사우디에는 농축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왜 이란에는 포기를 요구하느냐”는 논리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란에는 농축 중단 또는 강한 제한을 요구하면서, 사우디에는 공동 연구와 추가 협상을 전제로 국내 농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협정 문서상의 이러한 해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농축은 없다”는 공개 발언 사이에는 아직 차이가 남아 있다.
이 이중잣대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종결 협상, 그리고 향후 이란과의 재협상에서 결정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이란 프로그램의 ‘완전 해체’를 원치 않고 ‘제한’만 원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전쟁 한복판에 나온 이번 협정안은 이란 강경파에게 “미국은 애초부터 이중잣대였다”는 선전 소재를 제공하며, 향후 어떤 형태의 종전 협상에서도 이란의 재무장 명분을 살려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사우디-이란 관계는 관리 국면에 있다. 사우디는 이란과 ‘불가침 협정’을 추진하며 확전을 막으려 해왔다. 사우디의 원전 행보는 즉각적 공세라기보다 “미래 이란 핵무장에 대한 보험”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는 왜 이 리스크를 감수하는가
첫째, 중국·러시아의 중동 진출 차단.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 민간 원전 시장을 중국과 러시아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전략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 사우디를 중국 패권에 빼앗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함께 자리한다.
둘째, 미국 원전 산업의 부활. 백악관은 이를 “수십 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 파트너십”으로 홍보한다. 웨스팅하우스 AP1000이 두와이힌에 들어가면, 미국 원전 수출의 30년 침체가 반전된다.
셋째, 더 큰 미·사우디 경제·안보 협력의 맥락이다. 사우디는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6,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과 약 1,420억 달러의 방산협력 패키지를 발표했다. 원자력협정은 법적으로 이 계약들과 별개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미·사우디 전략·경제협력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넷째, 대이란 지렛대. 사우디의 원전·농축 관련 능력은 이란 억지의 지역 차원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섯째, 트럼프식 순차 협상.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연계 조건은 유지된 채, 원전 협정 서명과 정상화 압박이 사실상 같은 트랙에서 함께 움직이는 모양새가 됐다.
향후 넘어야 할 산
① 미 의회 90일 심의(2026년 10월 하순 만료 예정). 상원 외교위의 초당적 저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나, 앞서 지적한 대로 상·하원 동시 통과와 대통령 거부권 재가결이라는 이중 문턱 때문에 저지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낮다.
② ‘양자 안전조치 협정’의 구체 문안.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AP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가 정당성의 시금석이다.
③ 농축의 ‘제한’ 수준. LEU(5% 이하) 한정 여부, 원심분리기 대수·용량 상한, 미국 지분 통제 방식이 결정적이다.
④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 여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를 전제조건으로 못박은 만큼, 사우디가 실제로 이스라엘 정상화에 나설지가 협정 발효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⑤ 사우디의 중국 병행 트랙. MBS는 미국과 딜을 하면서도 중국과의 원자로 협의를 놓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사우디가 중국과의 협력을 법적으로 전면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기술과 중국 기술을 병행할 경우 기술보호, 공급망 보안, 핵물질 관리와 미국의 수출통제 문제가 복잡해지므로 중국 원자로 도입의 정치적·실무적 부담은 커질 수 있다.
⑥ 이란과의 정합성. 현재 진행 중인 미·이란 무력충돌의 종결 협상에서 이 이중잣대 논란을 미국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방어할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사우디에는 농축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이란에는 봉인하라는 요구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시험대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기회이자 시험대
“미국이 주계약자로 나서더라도, 시공·EPC 부문에서 한국이 실질적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는 ‘한·미 원전 협력 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이번 협정안이 한국에 던지는 한 줄 요약이다.
기회 측면.
첫째, 한·미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사우디가 초청한 주요 원전 공급 후보 가운데 하나다. 미·사우디 123협정은 한국의 입찰 자격을 새로 만들어주는 협정은 아니지만, 웨스팅하우스 기술이나 미국산 핵물질·장비가 포함되는 사업구조에서 미국 측의 수출통제와 정부 간 협력 틀을 보다 명확히 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둘째, Team Korea의 시공 실적. 걸프만 건너편 UAE 바라카 원전- 코르 두와이힌 예정 부지에서 약 90~100km 거리- 을 정해진 기한과 예산 내에 완공(on-time, on-budget)시킨 한국의 시공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사우디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한국 기업이 EPC, 기자재 공급, 건설관리, 시운전과 운영지원 분야의 파트너로 참여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미 컨소시엄이 실제로 구성될지는 향후 입찰전략과 기업 간 협상에 달려 있다.
셋째, 후속 수주 시장. SMR·기자재·연료·운영지원·현지 인력양성·유지보수·송배전·담수화 병행·데이터센터 전력 공급까지 패키지 접근이 가능해질 여지가 있다.
위기·유의점.
① 미국의 사전 동의권(Consent Right) 강화. 한국형 원전이 미국 원천기술을 포함하는 한, 사우디 수출 시 미국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경쟁·협력 구도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한국형 원전의 미국 기술 포함 여부와 수출통제 문제에 따라 미국 측 동의나 협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구조가 반드시 웨스팅하우스 주도의 컨소시엄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② 하도급 종속의 위험. 미국 EPC의 하청으로 전락하지 않고 주도적 지분과 공급망(Supply Chain) 지분을 확보하는 고도의 협상력이 필요하다.
③ 비확산 부담의 관리. 사우디 원전 사업에 참여하는 국가는 향후 사우디 핵프로그램 운영 방향에 따라 도의적·정치적 부담을 함께 지게 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사업 참여 이전에 안전·안보 기준과 리스크 관리 원칙을 명확히 정립하고, 미국·사우디와의 3자 협의를 통해 이를 사업 구조에 반영해 두어야 한다.
맺으며
이번 협정 서명은 사우디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원전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다. 그러나 아직 미 의회 심사, 안전조치 문안의 구체적 공개, 원전사업자 선정과 인허가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 협정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다면 사우디의 에너지·산업 전략뿐 아니라 중동의 비확산 질서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UAE식 ‘골드 스탠더드’가 더 이상 걸프 원전협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게 되고, 이란 핵문제와 사우디의 전략적 선택권이 서로 맞물리며, 미국·한국·사우디 원전기업 사이의 경쟁과 협력구도도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
내가 그 황량한 사막에서 품었던 의문- “왜 하필 이란과 마주 보는 이곳인가”-의 답은 결국 전력수요·냉각수·송전망·산업 인프라라는 실용적 조건에 있었다. 바라카 원전이 걸프만 건너편 약 90~100km 거리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점도 그 답의 일부다.
사우디가 원전에 이토록 사활을 거는 이유도 정치적 야심 이전에, 원유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낭비를 끝내고 비전 2030을 뒷받침할 전력·담수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원전이 실제로 가동되기까지는 국제입찰·벤더 선정·설계·인허가·건설·시운전 등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나, 일단 첫 콘크리트가 부어지는 순간 그곳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동 에너지 질서와 비확산 논의, 그리고 역내 전략 균형이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협정 서명과 미 의회의 심의를 거쳐 실제 사업이 진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협정안은 사우디 최초의 상업용 원전 시대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자, 걸프 핵질서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은 문병준 전 사우디대사대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