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MBS)의 딜레마
전투기는 있지만 전쟁을 끝낼 군대가 없다
- 군사력의 역설과 지상군의 부재 사우디는 압도적인 전투기와 공군력을 가졌으나, 공습만으로는 점령지를 되찾을 수 없고 동맹국들의 파병 거부로 인해 전선을 맡을 통합된 예멘 지상군을 확보하지 못했다.
- 외교적 모순과 이란 변수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위해 이란과 대화해야 하면서도, 바브알만데브 해협에서는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과 싸워야 하는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 비전 2030의 비용 상승과 통치 서사 시험 후티의 지속적인 미사일·드론 공격은 방공 및 물류 비용을 높이고 네옴시티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 차질을 빚게 하며, 경제 전환과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MBS의 통치 신뢰성을 흔들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 북부를 장악하던 후티 반군은 모카·두바브에 이어 홍해의 바브알만데브해협 한가운데 마윤(페림)섬과 대·소 하니시섬까지 손에 넣었다. 하미스무샤이트·아브하·지잔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았고, 제다·얀부·타이프에도 경보가 내려졌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호르무즈를 피해 만든 동서 송유관마저 이라크 친이란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지목된 드론 공격으로 멈췄다. 평소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4%에 해당하는 물량을 운송할 수 있는 핵심 송유관이다. 부분 가동은 비교적 빨리 재개될 수 있지만 완전 복구에는 5~6주가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우디는 후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문제는 그 힘을 정치적 결과로 바꿀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후티는 영토와 함께 협상의 지렛대를 얻었다
후티가 얻은 것은 점령지만이 아니다. 공격 가능성만 보여줘도 선박회사와 보험사는 항로를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보험료와 운송비가 오르고, 미사일을 쏘지 않은 날에도 사우디는 비용을 치른다.
후티의 자신감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우디는 다시 지상전에 들어가기 어렵고, 미국은 직접 개입을 꺼리며, 반후티 진영은 분열돼 있다는 상대의 정치적 제약에 대한 계산에서 나온다.
현재로서는 후티의 남하 역시 영구적인 영토 확장의 종착지라기보다 향후 협상에서 사용할 지렛대로 읽힌다. 이 싸움은 누가 완전히 이기느냐보다 누가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느냐의 문제다.
공습만으로 전세를 되돌릴 수 있는가
반후티 진영에는 병력은 있지만 하나의 군대가 없다. 사우디 공군은 후티의 지휘시설과 무기고를 파괴할 수 있지만, 공군력만으로 점령지를 되찾아 통치할 수는 없다.
사우디군이 직접 들어가면 벗어나려던 장기전으로 돌아가고, 분열된 예멘 정부군에 맡기면 같은 패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아랍에미레이트(UAE)가 키운 남부 병력은 통일 예멘보다 남부의 자치를 우선한다. 사우디와 UAE는 같은 후티를 적으로 삼았지만 같은 예멘을 원한 적은 없다.
결국 사우디에 부족한 것은 전투기가 아니다. 공습 이후 전선을 맡을 통합된 예멘 지상군이다.
요청은 했지만 돌아온 것은 군대가 아니었다
지난 2015년, 사우디는 UAE·이집트·요르단·수단 등이 참여한 연합군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1년간의 실패를 지켜본 동맹들은 같은 전쟁에 다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사우디의 실제 통치자 무함마드 반 살만(MBS)는 미국·영국·이집트에 도움을 구했고, 이스라엘과의 정보협력도 논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이스라엘 관련 내용은 아직 이스라엘 매체 밖에서 충분히 교차 검증되지 않았다.
MBS는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두 차례 직접 전화해 후티 타격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은 대신 정보공유와 표적정보, 자문 인력을 제공했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미국이 후티 측과도 직접 대화해왔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사우디와 미국이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우디가 원하는 것은 ‘국경을 위협하지 않는 예멘’이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은 ‘자국 선박과 병력을 공격하지 않는 후티’다.
영국은 군사고문단을 사우디 리야드에 보내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해협 방어와 작전 지원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결정을 공표하지 않았다.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사우디와 걸프 국가의 안보는 이집트 국가안보의 일부”라며 연대를 다졌다. 그러나 9월 15일 카이로 정상회담의 발표문에는 파병도 함대 파견도 없었다.지난 2015년 실제 함대를 바브알만데브 해협에 보냈던 이집트다. MBS는 카이로에서 우군을 확인했지만 원군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의 위성정보와 조기경보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협력이 공개되면 후티는 자신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저항세력’으로 포장할 명분을 얻는다.
파키스탄·튀르키예와 체결한 메카 공동방위협정도 마찬가지다. 사우디 영토를 방어하는 것과 예멘에 병력을 보내 후티와 싸우는 것은 다른 결정이다. 어느 쪽도 예멘 파병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사우디가 확보한 것은 정보와 군사고문, 방어 지원과 연대 성명이다. 가장 필요한 지상군은 어디에도 없다.
이란과 협상하면서 이란이 키운 세력과 싸워야 한다
사우디는 호르무즈의 안전을 위해 이란과 대화해야 하고, 바브알만데브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란이 무기와 기술을 지원해온 후티를 막아야 한다. 9월 14일로 예정됐던 이란·걸프 국가들의 호르무즈 항로 회의가 돌연 연기된 것은 이 모순을 상징한다.
후티가 테헤란(이란)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다. 자체 지도부와 예멘 국내정치의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란의 지원이 후티의 미사일·드론 능력을 키웠고, 양측이 미국과 사우디를 압박한다는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우디로선 국경의 억지력을 회복하려 하면 이란과의 긴장관리가 흔들리고, 긴장관리를 우선하면 후티에 대한 압박수단이 무뎌진다.
MBS 앞에 놓인 것은 국경 안보와 이란, 비전 2030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머지 둘에 얼마만큼의 손실을 감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비전 2030이 치러야 할 대가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주변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후티가 사우디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4%에 해당하는 물량을 운송할 수 있는 송유관이 공격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투자자와 보험사는 위험의 반복 가능성을 다시 계산한다.
방공비와 시설 복구비, 보험료와 물류비는 그 계산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오른다. 후티가 네옴시티를 점령할 수는 없어도 네옴과 홍해 개발사업의 비용을 높이고 일정을 늦출 수는 있다.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MBS에게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된 사우디’와 경제전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통치 서사의 신뢰성이 시험받는 문제다.
MBS에게 남은 선택
사우디에는 후티를 폭격할 전투기가 있다. 그러나 폭격 이후의 예멘을 맡을 군대와 정부가 없다.
MBS가 당장 택할 가능성이 큰 것은 전면전도, 즉각적인 타협도 아니다. 제한적인 공습으로 후티의 추가 진격과 미사일·드론 능력을 줄이고, 반후티 진영의 방어선을 재편하면서 오만 등을 통한 협상 채널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목표도 후티의 제거가 아니라 추가 점령과 본토 공격을 줄여, 지금보다 더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협상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느 쪽도 대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세게 치면 이란과의 긴장완화가 흔들리고, 물러서면 후티의 영향력을 정치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대응을 미루는 동안에도 후티는 공격 가능성을 유지하며 사우디의 방공·물류·보험 비용을 높일 것이다.
MBS가 예멘에서 마주한 것은 군사력의 부족이 아니다. 전략적 선택지의 고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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