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미, 사우디에 오일 대신 원자력 패권?
- 미·사우디 123협정 서명 미국과 사우디는 민간 원자력협력협정인 ‘123협정’에 서명하며 미 기업의 사우디 원전 시장 참여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 농축·재처리 금지 조항 부재 이번 협정에는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고 IAEA 추가의정서(AP)가 전제조건에서 제외되면서, 비확산 체제 약화 및 ‘골드 스탠더드’ 예외 적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미 의회 심의와 전략적 파장 협정은 미 의회 90일 심의 절차에 들어갔으며, 사우디는 두와이힌 원전 건설 및 자국산 우라늄 활용 등 핵 연료주기 산업 육성의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
지난 2025년 사우디 근무 시절, 원전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코르 두와이힌(Khor Duwaiheen) 인근을 차를 몰고 가본 적이 있다. 물론 현장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걸프만 해안뿐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부지가 걸프만 건너편 아랍에미레이트(UAE)의 바라카 원전과 직선거리로 약 90~1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걸프 해안을 따라 원전 개발 축이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리적 조건이다.
현장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왜 하필 여기인가.’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이 마주하고 있다. 유사시 이란 탄도미사일과 드론의 사정권에 그대로 들어가는 지역이다. 원전 부지로는 오히려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보니 어느 정도 생각이 달라졌다. 원전 부지는 안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냉각수 확보(해수), 지반 안정성, 송전망 연결, 인구 밀집도, 산업단지 연계, 항만 접근성을 모두 따져야 한다. 그런 조건을 종합하면 사우디 영토 내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바라카 원전이 인근 걸프 연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이 지역이 대형 해안 원전 입지로 검토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참고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코르 두와이힌이 아니면 딱히 대안이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사우디 정부는 이미 2013년 WorleyParsons의 부지 조사, 2022년 공식 선정 절차를 거쳐 이 부지를 원전 부지로 선정했으며, 향후 1.4GWe급 대형원전 2기(총 2.8GW)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왜 하필 지금 보도되었는가
지난 7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승인 소식이 보도된 데 이어, 22일(현지시간) 미 에너지장관 크리스 라이트와 사우디 에너지장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가 민간 원자력협력협정(‘123협정’)과 별도의 양자 안전조치 협정에 실제로 서명했다.
협정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제 의회 심의 절차가 남아 있다. 최근 미·이란 무력충돌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격동의 국면에서 나온 보도였다.
일각에서는 “왜 하필 이 시점인가”라며 정치적 배경을 읽으려 한다. 이 시점의 공개가 우연이 아니라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본다.
이번 합의는 전쟁 때문에 급조된 것이 아니다. 미·사우디는 이미 2008년 원자력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약 18년간 협상을 이어왔다. 그 오랜 세월 끌어온 이견이 이제야 매듭지어진 것이며, 전쟁 국면과 시기가 맞물리면서 정치적 의미가 더욱 부각된 측면은 있어 보인다.
왜 협상은 그토록 오래 걸렸는가
미국의 123협정에는 평화적 이용, IAEA 안전조치 적용, 핵물질과 장비의 재이전 통제 등 법정 비확산 요건이 들어간다. 여기에 미국은 일부 국가와의 협상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의 포기, IAEA 추가의정서 수용 등 더 강한 조건을 요구해 왔다. UAE가 2009년 농축·재처리 포기를 명문화한 협정이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사우디에 요구해 온 강화 조건은 다음 세 가지였다.
- 우라늄 농축 포기
-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포기
- IAEA 추가의정서(AP) 수용- 핵연료주기 관련 신고 범위와 IAEA의 정보·현장 접근 권한을 확대해 미신고 핵물질이나 핵활동의 존재 여부까지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강화된 안전조치 체계.
지난 2009년 UAE가 이 세 조건을 모두 수용하고 바라카 원전을 지은 것이 바로 ‘골드 스탠더드’다. 그러나 사우디는 끝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사우디는 왜 거부했는가
사우디는 왜 이같은 조건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첫째, 주권과 자원 논리다. 사우디에는 상당한 우라늄 매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0년 가디언이 입수한 사우디 정부 내부 문서에 따르면 국내 매장량으로 자체 핵연료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 바 있다.
사우디는 채굴·정련·연료 제조까지 포함하는 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장기 구상을 갖고 있다. “우리 땅에서 채굴한 우라늄을 왜 영원히 남의 통제 아래서만 써야 하느냐”는 원칙적 저항이었다.
둘째, 이란 대응 옵션이다. MBS(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018년 CBS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우리도 가능한 한 빨리 그렇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이래 이 기조를 공개적으로 유지해 왔다.
농축·재처리 포기와 AP 가입은 이 옵션을 스스로 봉인하는 것이었다. 사우디의 논리는 단순했다. “이란은 이미 농축하는데, 왜 우리만 영원히 못 하느냐.”
셋째, 중국·러시아 카드다. 사우디는 미국이 조건을 고집하면 CNNC(중국)나 Rosatom(러시아)에 맡기겠다는 대체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왔다.
결국 사우디는 IAEA 추가의정서(AP) 가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원전은 반드시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국과 사우디는 추가의정서를 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두는 대신, 미국이 제공하는 기술·핵물질과 관련 시설에 별도의 양자 통제 및 검증 장치를 두는 방안을 협정안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 구체적인 문안과 적용 범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합의의 실체, 무엇이 담겼나
현재까지 공개된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원전 기술·자재·부품의 사우디 이전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30년으로 알려졌다. 협정 자체가 원전 건설계약은 아니지만, 향후 수백억 달러 규모가 될 수 있는 사우디 원전시장에 미국 기업이 참여할 법적 기반을 마련한다.
둘째, 협정 문서에는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로이터 등 다수 외신은 이를 두고 사우디가 장차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협정문은 “가장 민감한 영역(농축·재처리 포함)”에 별도의 안전조치·검증 조치를 두겠다는 표현도 담고 있어, 완전한 백지수표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라늄 농축은 없을 것”이라고 직접 부인했으나, 이는 금지조항 부재라는 문서상의 사실과는 결이 다른 정치적 발언이다.
셋째, 추가의정서를 협정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미국이 이전하는 핵물질·장비·기술과 관련 시설에 적용할 별도의 양자 안전조치 또는 통제 장치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양자 장치가 사우디 핵활동 전반을 검증하는 IAEA 추가의정서와 동일한 범위와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넷째, 123협정이 발효되더라도 원자로와 주요 장비·핵물질의 수출은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Part 110 허가 등 별도 수출통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설계정보, 기술지원, 교육·자문 등 원자력 기술과 서비스의 이전에는 미 에너지부의 Part 810 규제가 적용된다. 즉 123협정은 ‘골격’이고, 실제 자재·장비·기술 이전은 별도의 관문을 거친다.
다섯째, 미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웨스팅하우스와 EPC 기업인 벡텔 등이 유력한 참여 후보로 거론된다. 사우디는 그동안 두와이힌 대형원전 2기 사업을 놓고 한국(APR1400),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공급국들을 검토해 왔는데, 이번 협정으로 미국 쪽으로 정치적 무게중심이 이전보다 크게 이동했다.
여섯째, 이번 미·사우디 종합 협력 패키지에는 방산·투자·중요광물 협력 등 다양한 분야가 포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은 서명을 마치고 의회로 송부돼 90일 심의기간(2026년 10월 하순 만료 예정)에 들어간다. 의회 불승인 결의는 상·하원 모두를 통과해야 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3분의 2 재가결이 필요하다는 매우 높은 문턱을 갖고 있어, 실질적 저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워싱턴의 지배적 전망이다. ②로 이어짐.
이 글은 문병준 전 사우디대사대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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