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단’을 위해 ‘김밥’을 입었나?

[백우진의 좌충우돌] 롱 패딩 패션이 ‘집단주의’일까

겨울철마다 등장하는 롱패딩 패션. 비싼 가격에도 너나없이 구입해 착용하던 때가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겨울철마다 등장하는 롱패딩 패션. 비싼 가격에도 너나없이 구입해 착용하던 때가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 문화이론에 따르면, 처음 타 문화를 만난 사람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온라인 이곳저곳에 ‘신기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외국인의 글이 넘쳐난다. 우선 한국에서는 여름이면 다들 손에 선풍기를 들고, 겨울에는 까맣고 긴 겉옷을 입고 김밥들처럼 걷는다고 이야기한다. 사례 몇몇에 지나지 않지만, 집단주의적 한국 문화를 꽤 잘 알아본 것 같다.
  • 출처: 이미향, [우리말 톺아보기] 한국 할머니의 호랑이 담요, 한국일보, 2021.09.11.
  • [원문] 몇몇에 지나지 않지만, 집단주의적 한국 문화를 꽤 잘 알아본 것 같다. [대안] 몇몇에 지나지 않지만, 획일적인 한국 문화를 꽤 잘 알아본 것 같다.
  • [원문]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는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문화, 입신양명이 최고의 효도이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 가치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남들과 다르게 비치는 것, 튀는 것에 대한 공포. 이 집단주의 문화로 인한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 (출처: 문유석, 신해철, 마왕 혹은 개인주의자, 머니투데이, 2014.10.31.)
  • [대안] 학교, 직업, 외모, 사는 동네, 차종,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고 수직적인 척도가 지배적인 문화, 입신양명이 최고의 효도이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 가치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 더 높은 서열을 놓고 경쟁하는 이런 행태로 인해 우리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에 시달리며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개인주의적’?

제시문은 ‘집단주의’라는 추상적 단어 속에 롱 패딩 패션 일색이라는 현상을 담았다. 집단주의란 무엇인가. 『두산백과』는 ‘개인의 이익이나 목표보다는 집단의 이익이나 목표를 우선시하는 관점’이라고 요약한다. (‘관점’보다는 ‘가치관’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추상적 용어에 담긴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또는 이 관념어가 포괄하는 경험에 무엇이 있을지 뒤적여보자. 내가 떠올린 집단주의 사례 하나는 2019년에 전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다. 이 운동은 앞서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에 대응해 일본이 2019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 수출을 규제하자 이에 반발해 시작되었다. 불매운동으로 일본 맥주와 의류, 자동차의 국내 판매가 급감했다. 일본 맥주를 좋아하거나 일본 의류를 선호하거나 일본 자동차를 신뢰하는 한국인 소비자 중 대부분이 일제를 외면했다. 개인의 선호와 이익보다는 일본과 싸우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이런 행태가 사람들이 집단주의에 따른 결과라고 예시할 수 있다.

부서 단위 집단주의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경험한 분들이 있으리라. 우리 부서가 매우 중요하고 큰 회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D데이를 앞두고 일정에 맞춰 각자 업무를 분담해 모든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챙기고 있다. 계획 대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부분도 생겼다. 부서장이 야근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A사원은 그날 자신의 일에는 더 챙길 부분이 없다. 이 때 A사원한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함께 야근하면서 다른 부서원들의 일을 돕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 일은 문제가 없으니 먼저 퇴근하겠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A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자신의 편익보다 부서를 우선시하는 집단주의를 따른 것이고, 후자를 선택한다면 개인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와 반대의 가치관이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두산백과』는 “개인주의에서는 사회나 국가와 같은 집단을 개인의 이익이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한다.

‘집단주의’가 아니라 ‘획일성’의 현상

자, 이제 제시문이 ‘집단주의적 한국 문화’의 예로 든 ‘여름이면 다들 손에 선풍기를 들고, 겨울에는 까맣고 긴 겉옷을 입고 김밥들처럼 걷는’ 행태를 응시해보자. 두 행태 중 후자가 더 적절하다. 겨울에 김밥 롱 패딩 코트를 장만해들 입은 선택이 집단주의의 결과였을까? ‘나는 김밥 롱 패딩이 별로인데’가 속마음인데도,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또는 집단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선호를 억누르고 그 패션을 따라한 사람들이 많았을까? 이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김밥 롱 패딩족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데도 김밥 롱 패딩 등 행태를 집단주의 현상이라고 서술한 글이 적지 않다. 김밥 현상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가 아니라 ‘획일성’이 나타난 한 단면이다. 획일성은 집단주의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선택에 의해서 나타난다. 획일성에 대립하는 단어는 다양성이다.

대립하는 관념어의 조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집단주의 ⇔ 개인주의 (판단 기준: 이익과 집단의 압력)
획일성 ⇔ 다양성
(몰개성) ⇔(개성)

따라서 제시문 문장의 대안은 다음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 글 중 ‘집단주의’도 다른 구절로 교체되어야 한다. ‘이 집단주의 문화’를 예컨대 ‘더 높은 서열을 놓고 경쟁하는 이런 행태’ 정도로 바꿔야 한다. 모든 것을 서열화하면서 경쟁하는 행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는 집단주의와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또 ‘남들과 다르게 비치는 것, 튀는 것에 대한 공포’는 지우는 편이 낫다. 이는 획일성인데, 서열화 경쟁과 종류가 달라서다.

한국의 획일성을 집단주의 행태라고 틀리게 쓰는 사례가 많은가 하면, 일본의 다양성을 개인주의 행태라고 잘못 서술하는 사례도 많다. 다음 글은 후자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한다. 혼자 밥 먹고 술 마셔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 없고,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우리보다 훨씬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그러나 이건 큰 오해다.

사회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위에 두고, 사회에 대한 개인의 비판, 저항, 이탈을 용인하는 것을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일본은 개인주의가 매우 희박한 사회이다. 소속집단보다 개인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며, 집단을 상대로 대의 혹은 자기이익을 내걸고 투쟁하는 개인도 드물다. (출처: 박훈, 한국의 개인, 일본의 개인, 경향신문, 2017.02.08.)

애니매이션에 빠져있는 일본 오타구 문화의 한 모습.
애니매이션에 빠져있는 일본 오타구 문화의 한 모습.

일본은 다양성 용인하는 사회

그러나 이 글 또한 일본 개인들의 행태를 ‘고립허용주의’라는 부적합한 단어로 담아냈다. 이 글은 “그(집단주의) 속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긴장과 반발의 에너지를 무마하는 장치가 ‘고립의 허용’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일본 개인들의 행태는 ‘고립 허용주의’보다는 ‘다양성’ 용인이나 ‘개성표현’ 용인을 바탕으로 한다. 왜냐하면 이 글의 ‘도깨비 패션’이 가리키는, ‘획일성’의 반대편에 있는 단어는 ‘고립’이 아니라 ‘다양성’이나 ‘개성표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집단에 저항하여 집단전체의 원리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지만, 그 원리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나는 따로 살겠다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 전체의 원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이다. 교토대학생들이 면벽식사를 하도록 배려해주고, 어떤 친구가 도깨비 같은 패션으로 지하철을 타도 간섭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고립허용주의’이다(오타쿠는 사회에 당당하게 발언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허용된 고립의 공간에서 뛰노는 존재들이다). (출처: 앞과 동일)

한국은 겉으로는 국가나 민족, 민중 차원의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저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중적인 사회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중 하나로 한국 사회를 분류한다면, 한국은 개인주의 사회이다. 나만의 주장은 아니다. 앞의 글도 같은 분석을 전한다. 즉, 앞의 글은 “내가 일본에 유학할 때 도쿄대 교수 한 분이 “내가 알기로는 전 세계에서 자기주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인도인과 한국인”이라고 했다”고 들려준다. 이어 “공동의 이익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익숙하다”고 진단한다.

한국은 개인주의인데 획일적, 일본은 집단주의인데 개성적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흥미로운 조합이 나타난다. 일본은 집단주의 사회이지만 다양성을 용인하는 반면, 한국은 개인주의 사회인데 획일적이라는 양상이다. 대개 나치 독일 같은 집단주의 사회가 획일성을 띠고, 서구 자유주의 국가 같은 개인주의 사회가 다양성을 보이는데,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특이한 조합을 보인다.

글쓴이

백우진 글쟁이(주)대표

백우진은 글쓰기 강사이자 저술가, 번역가로 활동한다. 동아일보 등 활자매체에서 기자·편집장 등으로 일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 경제홍보기획단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일하는 문장들』과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단어의 사연들』, 『나는 달린다, 맨발로』, 『안티이코노믹스』, 『한국경제 실패학』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두렵지만 매력적인』 등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