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를 위한 ‘비판적 독해’를 제안한다
[백우진의 좌충우돌] 무비판 독서로는 사고력 못 키운다 정합성·적합성·완결성 챙겨 읽자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1940~2021). ‘지(知)의 거인’이라고 불린 일본 저술가다.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고양이 빌딩’이라는 자신의 서재에 약 20만 권을 소장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다수 써냈다. 1979년 작 《일본 공산당 연구》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았다. 그는 공부와 독서에 대해서도 많이 발언했고, 《뇌를 단련하다》와 《지식의 단련법》,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냈다.

학이불사(學而不思). 다치바나는 책으로 공부는 많이 했으되, 스스로의 사고력은 키우지 못했다. 두서 없이 독서량을 방대하게 쌓아올리면서 지식의 산더미 속에서 길을 잃었다. 공자가 말한 ‘학이불사 즉 망(罔)’의 극단을 보여준 인물이다. 학이불사즉망은 ‘지식을 많이 습득해도 생각하지 않으면 사물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고력은 질문력과 불가분이다. 다치바나가 망(罔)했다는 내 주장의 근거는 그가 제기한 두 가지 질문이다. 그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의 삶은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주를 경험한 사람의 그 다음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했다. 두 물음의 답을 찾아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했고, 《임사체험》과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썼다.
임사체험과 우주 경험이 사람의 이후 인생을 극적으로 바꿀까? 나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설령 두 체험이 간혹 체험자의 삶을 크게 바꿀지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시사점이 전혀 없다. 환골탈태를 위해 임사체험에 나설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일대 변신을 위해 우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두 체험이 삶을 바꾼다면, 가상현실 체험 프로그램이 이미 개발돼 인기를 끌고 있지 않을까?)
사례 제시가 길었다. 책은 많이 읽으면 좋지만, 두서 없는 독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 속독을 권하며 방법을 알려준다는 책도 있으나, 빠른 독서에서는 생각이 일어나 머물고 숙성될 수 없다.
비판적 독해의 잣대 세 가지
사고력을 키우는 독서법이 ‘비판적 독해(읽기)’다. 비판적 사고는 ‘비판적 독해’를 통해서만, 즉 글 읽기로써만 할 수 있다. 동영상으로는 어렵다. 오디오북으로도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려면 흘러가는 영상이나 음성을 정지시킨 뒤 앞부분과 대조하거나 다른 자료를 찾아보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번거롭고 쉽지 않다.
비판적 읽기란 무엇인가?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은 “글의 정확성, 객관성, 타당성, 효용성 등을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면서 읽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한편 “비판적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고 두 활동의 관계를 설명한다.
필자는 우선 두 활동의 관계를 이 사전의 서술보다 확장한다. 비판적 독해에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려면 비판적 독해를 해야 한다. 비판적 독해와 비판적 사고는 동일한 활동의 양면이다.
둘째, 정확성과 객관성은 겹치는 개념이다. 주관적이어서 객관성이 떨어지면 정확하지 않다. 글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는 저마다 챙길 부분이고, 이는 사고력과는 거리가 있다.
필자는 비판적 독해의 잣대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내적 정합성, 사실 적합성, 완결성이다. 내적 정합성을 통해 독자는 내용이 서로 들어맞는지, 서로 충돌하거나 어긋나는지 체크한다. 사실 적합성은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점검하는 기준이다. 나아가 사실의 일부 측면을 과장한 게 아닌지, 과장을 넘어 왜곡한 내용인지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완결성은 내용 서술상 불가결한 중요 정보를 누락했는지 체크하는 기준이다. 세 기준은 글을 작성할 때에도 적용해야 한다.
어긋난 사례를 살펴보자
내적 정합성. 한 책의 저자는 그 책을 쓴 계기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각각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두 계기가 서로 어긋난다.
“이 책을 구상한 건 20년 전의 일이다. (중략) 2018년 말 한 회의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중략)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방송이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경제 상황이나 전망을 특정 인물의 ‘의도’ 혹은 ‘개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도 될까? 안타깝게도 이런 식의 설명은 굉장히 많은 한계를 지닌다.” (프롤로그 중)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왜 역사와 금융을 결합한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 이 책을 처음 구상한 계기가 되었다. (중략) 그 뒤 곰곰이 생각해보고 또 책장을 뒤져도, 금융 관점에서 세계사의 변화를 추적한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중)
사실 적합성. 한 과학 칼럼은 멜라닌 색소와 비타민D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처럼 멜라닌은 비타민D의 합성을 촉진할 뿐 아니라 피부 세포의 유전자를 온전히 지킨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이 서술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문화포털 사이언스올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피부의 멜라닌 색소는 비타민D 합성 전단계에 필요한 previtamin D3의 생성을 억제한다.
사실 적합성 검증은 크로스 체크 작업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크로스 체크란 동일한 내용을 담은 다수의 자료를 대조해,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해 채택하거나 부정확함을 알고 버리는 작업을 가리킨다.
완결성. 다음 문단은 누락한 내용이 있다.
‘민간 부문의 역할은 지난 10년 동안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동안 민간 부문은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을 창출했고 조세 수입의 70%를, 혁신의 80% 이상을, 고용의 90%를 기여했다.”
누락된 정보는 이전 10년간 민간 부문이 GDP와 조세 수입, 혁신, 고용에 기여한 비중이다.
완성도 높은 글 편집·작성에 필수 역량
비판적 독해는 특히 논문 심사 교수와 언론매체 간부, 출판사 편집자에게 필요하다. 비판적 독해의 안목이 없이는 논문, 기사, 원고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다. 비판적 독해를 통한 비판적 사고는 글을 쓰는 사람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비판적 사고력을 가다듬어 가동하지 않으면 자기 글의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생각하지 않고 읽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자신의 뇌를 돌리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 독서로는 자신의 사고력을 키울 수 없다. 비판적 독해로만 스스로 생각하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비판적 사고력은 완성도 높은 글 작성의 필수 요건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