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프로젝트’ 둘러싼 오해들

[백우진의 좌충우돌] 한국에 의학·공학 등 전수 ‘이 대학 선정 이유’는 오류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교와 서울대학교는 1954년 9월 5일 기술원조 협조 협정을 체결한다. 자료=서울대학교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교와 서울대학교는 1954년 9월 5일 기술원조 협조 협정을 체결한다. 자료=서울대학교
  • 출처: 김화진, 서울대생들 다시 미네소타에 가다, 머니투데이, 2019.02.19. 중 미네소타 출신들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전쟁고아 입양도 가장 많을 정도로 미네소타가 한국과 인연이 깊어서였다. 출처: 김화진, 서울대생들 다시 미네소타에 가다, 머니투데이, 2019.02.19.
  • 출처: 미주중앙일보, 미네소타와 한국, ‘한국전쟁으로 맺어진 인연’, 2021.03.02. 725명이 전사 및 실종되었다. 출처: 미주중앙일보, 미네소타와 한국, ‘한국전쟁으로 맺어진 인연’, 2021.03.02.
  • 출처: 김태철,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 한국경제신문, 2018.03.20. . 6·25전쟁 때 참전한 미네소타 출신 군인은 당시 주 인구의 약 5%인 9만5000여 명이나 됐다. 1950년 장진호(長津湖)전투에서만 이곳 출신 군인 4000여 명이 전사했다. 출처: 김태철,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 한국경제신문, 2018.03.20.

서울대 교수 226명이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프로젝트는 짧게는 1년 연수부터 길게는 정규 박사과정까지로 구성됐다. 서울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네소타대학으로부터 의학과 보건학, 농학, 공학 등 분야에서 혁신적 성장을 이루는 바탕이 될 지원을 받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48개 미국 대학을 통해 77개 해외 대학을 지원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서울대를 도울 미국 대학으로 미네소타대를 선정한 이유나 배경은 무엇이었나?

미네소타주는 미국 주 가운데 인구가 많지 않다. 미네소타주의 2021년 인구는 570여 만 명으로 주별 인구 순위에서 22위에 랭크됐다(출처: World Population Review)

미네소타 출신이 한국서 가장 많이 전사?

6.25 전쟁 때 미네소타주의 인구 순위도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 글이 서술한 것처럼 한국에서 전사한 미군 중 미네소타주 출신의 비율이 가장 높을까? ‘한국에서 전사한 미군 중 미네소타주 출신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말은 ‘한국에서 전사한 미군 중 미네소타주 출신이 가장 많았다’는 말과 동일하다.

미국의 주별 6.25 전쟁 전사자 통계를 찾아보면 미네소타주 출신 전사자는 주별 전사자에서 20째로 많았다. 미국 군사 육군센터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출신 전사자가 2030명으로 가장 많았다(출처: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전사자가 1000명보다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 1894명, △뉴욕 1766명, △오하이오 1488명, △일리노이 1436명, △텍사스 1311명, △미시간 1242명 순이었다. 전사자가 1000명보다 적은 주 순서는 △켄터키 750명, △버지니아 750명, △인디애나 742명, △미주리 737명, △테네시 714명, △웨스트버지니아 703명, △노스캐롤라이나 694명, △매사추세츠 663명, △조지아 640명, △위스콘신 627명, △앨러배마 589명, △뉴저지 589명, △미네소타 548명 등이었다.

인구 대비 참전자 비율이 가장 높았나?

#2 기사는 미네소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비율이 가장 많은 주’라고 소개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미네소타는 인구 중 참전용사 비율에서도 미국 주 가운데 20째였다(출처: World Population Review) 인구 대비 참전용사 비율이 가장 높은 주는 메인이었고, 10만 명 당 654명이 참전했다. 다음은 웨스트버지니아 640명, 플로리다 636명, 뉴햄프셔 607명이었다. 미네소타는 514명이었다.

#3 기사는 ‘참전한 미네소타 출신 군인은 당시 주 인구의 약 5%’라고 전했다. 이는 방금 인용한 자료로 반박된다. 방금 전했듯이, 미네소타주 인구 10만 명 중 514명이 참전했고, 이는 백분율로는 0.5%다.

인구 중 5%가 참전했다는 서술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이 비율을 인구 5000만 명에 적용하면, 250만 명이 참전했다는 것이다. 참전 가능 연령대의 같은 나이 인구가 100만 명이라고 하면, 남성은 50만 명이 된다. 참전자가 250만 명이 되려면, 참전 가능한 연령대가 5년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그 연령대의 남성 전원이 참전해야 한다.

참전 대비 전사 비율이 가장 높았나?

마지막 가능성은 미네소타주는 참전자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미네소타 출신 참전용사들은 가장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많이 싸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두 사이트의 정보를 조합해서 그 비율을 산출해보자. 미네소타 출신 전사자는 548명이었다. 미네소타주 참전자는 2만 9354명이었다. 참전 대비 전사자 비율은 1.9%였다.

다른 주의 같은 비율을 살펴보자. 펜실베이니아주 전사자 2030명을 참전자 7만 4683명으로 나누면 2.7%가 나온다. 뉴욕주 전사자 1766명을 참전자 7만 5312명으로 나눈 비율은 2.3%다. 두 사례만 봐도 미네소타주는 참전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지 않았다.

요인은 “농공〮의학 우수성과 인적 구성”

서울대의 ‘미네소타 프로젝트’ 자료를 살펴보면, 이 프로젝트는 미국 대학의 해외 대학 지원이라는 틀 속에서 준비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개시되기 전 미국은 48개 대학을 통해 해외 77개 대학을 돕고 있었다. 서울대를 도울 미국 대학으로 미네소타대를 선정한 곳은 미국 연방정부 소속기관 대외협조처(FOA: Foreign Operations Administration)였다. FOA가 그 과정에서 미네소타대를 선정한 이유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서울대의 다른 자료 ‘미네소타 프로젝트, 서울대학교 재건을 위한 노력’ 은 미네소타대가 선정된 데에는 “미네소타대학교가 보유하고 있었던 농학, 공학, 의학 분야의 우수성과 인적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였다”고 설명했다. 그 다양한 요소 가운데 ‘6.25 전쟁을 계기로 한 미네소타주의 한국과의 인연’은 주요 요인은 아니었지 싶다.

글쓴이

백우진 글쟁이(주)대표

백우진은 글쓰기 강사이자 저술가, 번역가로 활동한다. 동아일보 등 활자매체에서 기자·편집장 등으로 일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 경제홍보기획단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일하는 문장들』과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단어의 사연들』, 『나는 달린다, 맨발로』, 『안티이코노믹스』, 『한국경제 실패학』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두렵지만 매력적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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