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사실외면과 자가당착
[백우진의 좌충우돌] ‘활’과 ‘바늘’ 의미를 도외시 “식량 경쟁”, “경쟁 안 했다”
- 2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속 진화 200만 년 전 다양한 인간 종 진화 5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유럽과 중동에서 진화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동아프리카에서 진화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다른 지역으로 확산 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멸종
- 15만 년 전 인간은 모든 종을 통틀어, 인도네시아 군도와 이베리아 반도 사이에 100만 명쯤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호모 속(屬) 가운데 사피엔스만 남게 됐다. 사피엔스의 무엇이 이 결과를 낳은 것일까? 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지배종이 된 힘은 언어와 상징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독자가 내 책 《사피엔스》를 이미 읽거나 접해, 이 주장에 익숙하리라. 그러나 《사피엔스》가 발간된 초기에는 이 주장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사피엔스가 지배종이 된 결과를 설명하는 가설로는 교배이론과 교체이론, 번영ᆞ몰락이론이 존재한다. 교배이론은 아프리카 출신 사피엔스가 다른 곳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다른 종과 교배했고, 현생 인류는 그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유럽과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섞였고, 동아시아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와 교배했다.
- 교체이론은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인종학살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교체이론을 믿는다. 왜냐하면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 사피엔스 집단은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집단을 몰살하기 일쑤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한 배경은 두 종이 먹을거리를 놓고 경쟁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두 종의 식량은 사슴과 견과류와 장과류로 동일했다. 그래서 사피엔스는 사상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 사피엔스는 자기네보다 근골격이 컸던 네안데르탈인을 맹공격했다. 승리한 힘은 언어였다. 사피엔스는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켰다. 전설과 신화, 신, 종교를 집단적으로 상상하면서 더 많은 숫자가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다. 사피엔스의 원거리 교역도 신화적 토템이나 토템 동물 같은 픽션을 기반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 사피엔스는 사냥 기술과 집단의 크기로 네안데르탈인을 무찔렀다.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사냥을 잘했다. 사피엔스는 수십 명이 협력해 사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혼자 또는 작은 집단으로 사냥했다. 융통성 있고 창의적인 사피엔스 500명이 전통적이고 정적인 패턴으로 협력하는 네안데르탈인 50명을 상대로 벌인 전투의 결과는 압승이었다. 요컨대 당시 정령과 부족 토템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피엔스 500명이 교역하고 축제를 벌이고 힘을 합쳐 네안데르탈인 무리를 쓸어낼 수 있게 했다.
- 번영ᆞ몰락이론은 다음과 같다. 사피엔스는 기술과 사회적 기능이 뛰어나, 네안데르탈인보다 사냥과 채취를 더 잘했다. 시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빠르게 인구를 늘리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사피엔스보다 재주가 떨어지는 네안데르탈인은 생존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었고 서서히 멸종됐다.
- 그동안 교체이론이 우세했으나, 2010년에 발표된 연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유럽과 중동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의 DNA 중 1~4퍼센트가 네안데르탈인의 DNA로 밝혀졌다. 이 연구를 반영해 나는 네안데르탈인은 대부분 사피엔스에 의해 멸절됐지만 일부 운 좋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사피엔스 특급에 편승했다고 본다.
- 그에 대해 “기존 연구로부터 근거를 대라”고 요구할 분들이 있으리라. 없다. 사피엔스 한 무리가 네안데르탈인이 거주하던 영역에 도래했을 때 두 집단이 접촉한 흔적 중 지금까지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책에 “기껏해야 뼈 화석 몇몇과 석기 한 움큼이 학자들의 면밀한 심문에도 침묵만 지킬 뿐”이라고 썼다. 중요한 것은 상상이다. 나는 사피엔스의 힘이 상상이라고 주장했고, 내 주장의 바탕은 상상이다.
- 번영ᆞ몰락이론, 즉 사피엔스가 빠르게 인구를 늘리면서 지배종이 됐다는 제3의 가설에 DNA 연구를 접목할 수도 있다. 사피엔스는 번성했고 네안데르탈인은 몰락하면서 일부의 피가 사피엔스와 섞였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나도 책에 활과 화살, 바늘을 발명했음을 서술했다. 물론이다. 사피엔스에게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 그러나 나는 이 가설은 다루지 않는다. 왜냐고? 제3의 가설은 내가 사피엔스의 특성으로 앞세운 언어와 상상보다 기술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 대해 한 마디만 덧붙이겠다. 도구 제작 능력은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사피엔스의 더 창의적인 도구 제작 능력이 협력을 통해 더욱 강화됐다는 설명이 더 그럴 법하지 않나? )
- 기술은 사피엔스에게 부차적이었다. 언어와 상상을 매개로 한 대규모 협력이 사피엔스의 강력한 힘이었다. 사피엔스는 대규모 집단을 이뤄 네안데르탈인을 인종청소하고 지배종 자리를 차지했다.
사피엔스의 부상과 네안데르탈인의 몰락은 책 《사피엔스》의 ‘대분기(大分岐)’이자 주춧돌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에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지배종이 된 사건을 기초 삼아 현생 인류의 특징과 강점을 고찰해나간다.
다음은 하라리가 《사피엔스》중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종이 된 요인을 설명하는 글이다. 그가 쓴 문장들을 거의 그대로 활용해 필자가 양괄식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밑줄 그은 대목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덧붙인 부분이다.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해 여타 호미닌이 다 멸종되는 가운데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가 된 역사를 종합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다음 글을 읽어보자. 호미닌은 유인원과 구분되는 인류 계통의 영장류 조상을 일컫는다.
인류 진화와 관련해 《사피엔스》와 비교해서 읽을 책 중 하나가 《우리몸 연대기》다. 대니얼 리버만 하버드대 인류진화생물학과 교수가 쓴 책이다. 《사피엔스》가 하라리의 단편적인 독자설이라면 리버만 교수의 설명은 종합적인 일반론이다.

이제 리버만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피엔스》와 《우리몸 연대기》를 비교해보니
리버만 교수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대신 현대 인류가 된 과정은 아무도 모른다”고 전제한 뒤 “여러 가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바로 “사피엔스가 인구를 빠르게 늘렸다는” 가설을 그중 하나로 소개한다.
이 가설은 사피엔스는 출생률이 높고 사망률이 낮았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는 “사피엔스의 출생률과 사망률이 네안데르탈인과 조금만 차이가 나도, 엄청난 차이로 벌어진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네안데르탈인의 사망률이 사피엔스보다 1%만(리버만 교수가 ‘포인트’를 누락한 듯하다-필자 주) 높아도 네안데르탈인은 30세대 만에, 즉 1000년 이내에 멸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가설은 “사피엔스가 협력을 더 잘 했고, 식량 자원을 조류와 어류 등을 포함해 더 넓게 활용했다는 것”이라고 든다. 이 둘째 가설은 앞 가설과 양립 가능하다. 둘째 가설의 결과가 첫째로 나타났을 수 있다.
리버만 교수는 사피엔스가 번성한 요인으로 ‘문화’를 제시한다. 문화를 “지식, 신념, 가치 등의 조합으로 한 그룹을 다르게 행동하도록 한다”고 정의하고 사피엔스 문화의 특징을 ‘혁신’과 ‘교류(교역)’로 요약한다. 사피엔스는 의복과 도구, 음식 등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문화가 달랐고 계속 발달시켰다. 문화는 유전자처럼 교류(교역)하는 지역 사이에, 세대 간에 복제·증식된다. 이처럼 유전자에 비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요소는 밈(meme)이라고 불린다. 그에 비해 네안데르탈인 문화는 오랜 기간 동안 변화가 거의 없었다.
사피엔스의 활·바늘을 왜 《사피엔스》는 외면?
사피엔스의 문화 밈에 대해 필자가 설명하겠다. 사피엔스는 옷을 지어 입었고 활과 화살로 사냥을 더 잘했고 더 많은 식량 자원에서 안정적으로 영양을 섭취했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보다 낮은 유아사망률과 높은 출산율로 인구를 훨씬 더 빨리 늘려나갔다.
제시문에 인용했듯이, 하라리도 사피엔스의 바늘과 활을 서술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이는 흥미로운 외면이다. 왜냐하면 활은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했다는 하라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라리가 외면한 맥락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활을 강조하면 하라리의 키워드인 언어와 상상이 뒷전에 밀리게 된다.
하라리와 달리 사피엔스의 활을 학살의 증거로 제시하는 주장이 있다. BBC가 2020년 11월에 그 주장을 전했다. 기사의 제목은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조상과 전쟁을 벌였나?(Did Neanderthals go to war with our ancestors?)’이다. 내용은 전쟁을 벌였으나 활로 무장한 사피엔스한테 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잠깐. 질문을 바꿔보자. 사피엔스가 활을 발명했어. 당신이 사피엔스 무리의 리더라면, 우리 구성원의 희생을 감수하고 그 시간에 사냥으로 얻을 고기라는 기회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네안데르탈인과 전투를 벌일까? 아니면 활과 화살로 초식동물을 사냥해 배불리 먹을까?
이 질문에 대답한 논문이 있다. 2019년 9월 발표된 ‘기계적으로 발사하는 무기에 대한 유럽 최초의 증거(The earliest evidence for mechanically delivered projectile weapons in Europe)’이다. 필자는 이 논문을 지지한다. 이 논문은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운명을 가른 무기로 활과 화살, 투창기 같은 장거리 무기를 들고, 이들 무기 덕분에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성공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강력한 신종 무기로 네안데르탈인을 사냥해 멸종시킨 게 아니라. 논문의 초록은 “발사 무기를 활용한 (사피엔스) 집단은 더 강력하게 타격하는 사냥 전략을 얻었고 다른 집단과 종에 비해 잠재적인 생존 우위도 확보했다”고 결론 짓는다.
바늘도 활에 버금가게 사피엔스에게 도움을 준 도구였다. 네안데르탈인은 바늘을 발명하지 못해 옷을 지어 입지 않았다. 그때는 빙하기가 끝나지 않아 매우 추웠다. 이정모 과천과학관장은 ‘절대 바늘’ 발명 덕에 지금까지 생존한 호모 사피엔스, 중앙SUNDAY, 2014.12.07.)에서 “네안데르탈인은 매일매일 동상과 저체온증을 걱정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덩치가 더 커서 더 많은 열량이 필요했다. 이 관장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제시한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그들의 수명은 점차 짧아졌다. 인구가 줄었으며 유년기도 덩달아 단축됐다. 짧아진 유년기는 낮은 사회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고 결국 멸종에 이르렀다.”

당시 인구밀도 희박, 전쟁 가능성도 희박
결정적인 변수가 아직 하나 남았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변수가 인구 규모다. 유럽에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수백만 명이었다면 두 종의 집단은 자주 마주쳤을 뿐 아니라 식량 자원을 놓고 경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에서 공존한 시기에 두 종의 인구가 1만 명에도 못 미쳤다면? 두 종의 조우는 드문 일이었을 테고, 식량을 둘러싼 두 종의 경쟁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책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가 중요한 추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가장 환경조건이 좋았던 시절에도 세계 인구가 1만~2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을 알 수 있다”고 전한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유럽에서 공존하던 시기에 유럽 인구는 1만 명이 채 안 됐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세 인류학자다. 뼈의 생김새와 뼈에 남은 질병의 흔적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우은진), 뼈 조직의 양상을 사람의 특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조혜란), 집단의 유전자 염기서열 자료로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 인류학자(정충원)이다.
분자고생물학을 전공하고 주로 동물 골격의 진화를 연구하는 사라시나 이사오는 책 《절멸의 인류사》에서 “때로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다투기도 했을 것”이라면서도 “다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특히 “적어도 집단끼리 다투는 일은 없었던 듯하다”고 전한다.
자가당착: “경쟁” vs “경쟁 심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을 하라리조차 《사피엔스》의 다른 대목에서 언급한다. 즉, “또한 현대인이 네안데르탈인의 근거지로 이동해왔더라도 현대인의 무리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두 집단이 먹잇감을 놓고 심각한 경쟁을 벌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서술한다.
이 문장을 씀으로써 하라리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가 책의 앞에서 쓴 다음 문장과 이 문장의 일부를 비교해보자. 두 문장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적 정합성에 어긋난다.
-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한 배경은 두 종이 먹을거리를 놓고 경쟁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두 종의 식량은 사슴과 견과류와 장과류로 동일했다.
- 두 집단이 먹잇감을 놓고 심각한 경쟁을 벌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참, 하라리의 전공은 중세전쟁사다.
마지막이다.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는 《사피엔스》의 기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말을 잘했다는 전제다.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언어 능력이 최소한 침팬지보다는 현대인과 가깝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처럼 정교한 언어를 사용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아직까지 확실한 답은 없다”고 전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종합 정리한다. 사피엔스는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는 데 능했고, 활과 바늘 같은 도구는 넓은 교류(교역)을 통해 사피엔스에 널리 공유됐다. 그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은 전통 생존방식에 머물렀고 다른 집단과 교류하지 않았다. 사피엔스는 덜 사망했고 더 2세를 낳은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간혹 두 종의 교배가 일어났다.
크게 기울인 기초에 올린 건물은 제아무리 그럴싸하게 쌓고 치장하더라도 결국 무너진다. 《사피엔스》는 그런 건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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