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경기장, 맞설 게 아니라 아예 바꿔야

[이명재의 절문(切問)] 언론의 부실하고 부주의한 프레임

공정성을 이유로 TBS의 운영방식을 바꾸려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에 반발하고 있는 김어준 진행자. 사진=연합뉴스
공정성을 이유로 TBS의 운영방식을 바꾸려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에 반발하고 있는 김어준 진행자. 사진=연합뉴스

TBS‘의’ 문제가 아닌 TBS에 ‘대한’ 외부 공격이 문제

서울시의회에 제출된 TBS설립 및 운영 조례 폐지안을 계기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TBS 사태’는 대체로 ‘TBS의 공정성, TBS의 개선 과제에 대해 논의해 보자’라는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은 과연 이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잘못된 명명(命名)이며, 잘못된 프레임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TBS‘의’ 문제가 아니라 TBS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공격과 압박에 있는 것이다.

TBS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이니 지역 방송으로서의 역할이니, 특정한 프로그램(뉴스공장)이나 그 진행자(김어준)의 공정성이니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이 어떠니를 묻는 것, 그건 그것대로 따로 토론과 모색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의 핵심은 외부의 권력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공영방송에 대해 압력을, 아니 압력 이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다른 공영방송들에 대한 10년 전과 같은 개입과 장악이 곧 현실화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들 속에서 TBS에 대한 공격이 그 신호탄이 되고 있는 것에 이 상황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어느 때보다 언론의 독립과 공공성을 수호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어느 단체에서는 김어준의 공정성과 자질에 대한 논란으로, ‘지역 저널리즘 모델’의 진통으로 이 상황을 규정하려 한다. “팬덤 정치에 종속된 시민에서 벗어나 삶의 정치에 참여할 시민의 구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안이한 발상이며, 무지한 인식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부상자에게 체질 개선의 한방 처방을 하는 꼴이다. 잘못된 프레임을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화시켜 주며 굳혀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잘못된 TBS 프레임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제대로 짜는 것에, 잘못 들어간 경기장에서 상대방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 자체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큰 프레임은 작은 프레임들의 축적

10여 년 전에 나와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은, 특히 이른바 ‘진보’에 속한다는 이들로부터 반성적 독서를 하게 만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이 책을 내면서 누구보다도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가 이 책을 반드시 읽기를 바랐다고 한다.

언론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그 사회의 여론의 프레임을 짜는 직업이다. 프레임에는 큰 프레임이 있고 작은 프레임이 있다. 작은 프레임들의 누적과 종합은 큰 프레임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언론들은, 특히 이른바 보수지들에 의한 여론의 왜곡과 오도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그에 맞서 합리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이 있는, 양식 언론을 자처하는 몇몇 언론들은 과연 큰 프레임에는 큰 프레임대로, 작은 프레임에는 작은 프레임대로 거시적이면서도 세밀한 눈으로 프레임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8일 한국의 이른바 ‘진보 언론’의 대표격이랄 수 있는 어느 신문은 1면에 이런 제목을 단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건희 특검법 발의 …추석정국 급랭’. 대통령 부인에 제기되고 있는 숱한 의혹들, 주가조작 개입과 허위경력 의혹 등 수사가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 특검을 제기한 것이 평온한 정국을 급랭시키는 원인인 것으로, 정국이 급랭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다. 편집자가 과연 그런 의도였을까. 그랬다면 이건 불공정, 부정확한 것이고,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이었다면 부주의를 넘어 부실한 제목이다.

거시적인 프레임과 함께 세밀한 프레임 제시해야

같은 신문에 며칠 전에 실린 ‘민주시민교육과 없앤다…교육부도 문재인 정부 흔적 지우기’라는 기사가 있다.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 정부 시절 만들어진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키로 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문재인 정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고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과연 올바른 시각인지 묻고 싶다.

어느 정권이건 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구상을 시도할 수 있다.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안의 핵심은 이 기사가 스스로 얘기하는 것처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없애려는 것, 시대적 흐름과 요청의 산물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신문이 며칠 뒤인 8일자 사설에서 지적하고 있듯 ‘20년 지속된 정부-시민사회 협력 체계를 끊으려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이며,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유지해 온 협력체계를 무너뜨리려는 발상’의 일환인 것이다. 지우려는 것은 전 정부가 아닌 시민참여이며, 민관협력이며, 우리 사회의 한 합의의 성과인 것이다.

뭔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두 번 본다는 것이다. 또 제대로 보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 보는 새의 눈과 함께 세부를 치밀하게 살피는 현미경의 눈, 두 개가 필요하다. 다수의 언론들이 짜 놓은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 그 두 개의 눈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글쓴이

이명재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이명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법제개선담당관, 뉴스통신진흥회 사무국장 등으로 근무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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