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이명재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법제개선담당관, 뉴스통신진흥회 사무국장 등으로 근무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명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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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태원 참사는 언론 참사다
‘이태원 참사’는 두 번 일어났다. 29일 밤 이태원 골목에서 첫 번째 참사가 일어났고, 다음날부터 신문의 지면과 방송에서 두 번째 참사가 일어났다. 첫번째는 정부의 무능에 의한 죽음이었다면 두번째는 언론에 의한 왜곡과 호도의 타살이었다. 정부와 언론에 의한 합작의 참사였다. 정부는 죽음을 방치했고 언론은 죽음을 모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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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언론보도와 ‘국익’...논란이 돼선 안 되는 것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놓고 ‘국익’ 논란이 일었었다. 아니 국익 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벌어졌었다. 이미 완료된 시제로 썼지만, 실은 여전히 잠복돼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이런 식의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논란의 요지는 국익이냐 진실 보도냐, 라는 것이다.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사실이더라도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 애국적인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논란이 될 수가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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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한국언론의 중립 아닌 중립
한국의 언론에서 특히 남용되는 말들. 그러나 그만큼 오해되는 말들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중립’을 빼놓을 수 없다. 언론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자 규범이라고 해야 할 ‘중립(中立)’은, 그러나 교조주의에 빠지는 신념과 교리가 대개 그렇듯 가장 오염되고 천박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말이 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중간이거나 균형, 절충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중립에 대한 언론의 가장 흔한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중립이건 중도(中道)이건 진정한 ‘중(中)’은 사실 진보이기도 하고 보수이기도 하다. 아니 진짜 진보, 진짜 보수라면 중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가 진정한 보수가 되기 위해서는 ‘중’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보가 진정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중도가 돼야 한다. 보수의 보수화를 위해서도, 진보의 진보화가 되기 위해서도 중도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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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잘못된 경기장, 맞설 게 아니라 아예 바꿔야
서울시의회에 제출된 TBS설립 및 운영 조례 폐지안을 계기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TBS 사태’는 대체로 ‘TBS의 공정성, TBS의 개선 과제에 대해 논의해 보자’라는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은 과연 이 사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잘못된 명명(命名)이며, 잘못된 프레임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TBS‘의’ 문제가 아니라 TBS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공격과 압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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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언론인의 정치 진출, 2중의 해악인 진짜 이유
현직 기자들의 정치권, 집권 권력으로의 직행에 대해 이른바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또 일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가 잇달아 치러진 선거의 계절, 적잖은 언론인들이 주요 정당과 후보들의 캠프에 몸을 담았고, 권력 교체 이후엔 상당수의 언론 출신들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것은 현실에서 낯익은 풍경이다. 이 같은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에 대해서는, 특히 며칠 전까지 기자로 일했던 이들의 정치권 진출에 대해서는 거의 비난 일색이다. 특히 언론계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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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한국언론의 최대 피해자는 尹
한계를 정해 놓고 행하는 비판을 비판이랄 수는 없다. 그 한도치 내의 ‘안전지역’에 머물며 가하는 비판은, 실은 비판이라는 이름의 반(反)비판이며 오히려 비판을 가장한 옹호다. 게다가 그 비판이 결국 자기 자신들의 이득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비판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유력 매체들의 최고권력자와 그 주변세력에 대한 ‘쓴소리’들이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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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질문을 잃어버린 기자
기자(記者)는 ‘쓰는 자’, 라는 말이다. 19세기 말 서구형 근대 언론 제도와 형식이 갖춰지면서 이 말 역시 일본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라고 하는 말은 사실 기자의 일 전체를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하다. 그 일의 한 부분, 특히 마지막 공정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그 전에 뭔가 쓸 것이 있다는 것이며, 그 쓸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이 먼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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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언론자유와 언론으로부터의 자유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으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두 도시 이야기’의 저 유명한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디킨스는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두 도시, 런던과 파리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모순이 극대화되는 19세기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