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가 필요한 때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비속어 누굴 대상으로 했든 불쾌하고 모욕적 대국민 듣기평가 아닌, ‘대국민 사과’ 해야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발언에 대해 해명하는 모습. 사진=SBS 화면 캡쳐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발언에 대해 해명하는 모습. 사진=SBS 화면 캡쳐

호소하면서 화를 낸 김은혜 수석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전 국민 듣기평가라니! 국민들의 듣기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 대통령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정말 몰랐다.

지난 22일 밤 늦은 시각,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국민들에게 영상 하나를 다시 들어봐 달라고 호소하는 브리핑을 가졌다. 영상에 녹음된 음성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다시 들어봐 달라고 했다. 왠지 그 영상 속의 발언을 다시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고, ‘날리면’이라는 말이 안 들리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의 브리핑이었다. 김 수석의 말투와 표정은, ‘날리면’으로 들어야만 한다고 듣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권고하는 듯했다. 자못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김 수석의 브리핑은 내용상 호소였지만 전혀 호소로 들리지 않았다. 김 수석의 말투와 표정은 대통령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어서 화가 몹시 나 있었다. 브리핑을 하는 자리이니 최대한 화를 억눌러 가며 말을 하려 하는 듯했지만 이미 온몸으로 화를 내며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 수석의 말은 호소가 아니라 윽박지름, 더 나아가 위협으로 들렸다.

들을수록 도드라지는 ‘비속어’

김 수석의 브리핑에는 왜 국민들이 그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중요하면 이렇게 늦은 시각에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말투와 표정으로 브리핑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상에 녹음된 음성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자꾸자꾸 들어보았다. 소음이 심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청신경을 곤두세우며 귀 훈련을 받은 ‘음성학자’로서 영상의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말이다.

그런데 자꾸자꾸 들을수록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들으면 들을수록 대통령의 비속어 두 개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두 비속어 중 하나는 심지어 ‘삐~’ 처리가 되어야 하는 말이었다. 잘 들리지도 않아서 애를 쓰며 듣고 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비속어가 도드라지고 또렷하게 들렸다. 부끄러움은 참담함으로 변했다.

이제 김 수석이 들어봐 달라는 영상의 소리가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중요하지도 않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비속어가 이렇게 또렷이 들리는데도 더 확인해 봐야 할 게 또 있다는 말인가?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외 순방에 나선 대한민국의 대표자인 대통령이 공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닌가? 비록 공식석상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이 오간 곳은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장이었고, 대화의 상대자는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던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이었다. 비속어가 있다는 자체가 부적절하다.

공사 구분 못한다고 고백하는 장관

그런데 박진 외교부 장관의 생각은 좀 달랐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공적인 발언이 아니라 사적인 발언이라고 했다. 23일 박 장관은 외교부 출입 기자단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해당 발언을 “대통령의 사적 발언”이며 “회의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황급히 이동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라고 했다. 박 장관의 입장은 사적인 발언이고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비속어가 섞인 것이 뭐 그리 큰 문제냐는 취지로 읽힌다.

문제의 발언은 세계 각국의 정상이 모인 큰 국제회의 장소에서 일어났다. 세계 언론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을 사적인 발언이며 지나가는 말이라서 비속어 몇 개가 섞인 게 뭐 어떻냐고 말하는 외교부 장관은 도대체 대통령이나 자신을 국민들이 어떻게 봐 주기를 바라는 걸까?

박 장관의 입장문은 오히려 대통령과 자신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사적인 발언을 공적인 장소에서 하는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또 대통령과 자신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속어를 섞어가며 지나가는 말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자백하고 있다.

사실 영상을 잘 보면 대통령의 말이 결코 지나가는 말로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대표단 전체를 향해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언을 시작할 때 대통령의 시선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은 박 장관과 나란히 걷다가 잠깐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뒤에 오는 수행원들을 향해 발언을 시작한다. 발언을 시작할 때 대통령의 시선은 박 장관 뒤에 있는 수행원들을 향해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걷고 있던 박 장관은 대통령의 말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이처럼 대통령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대표단 전체를 향해 말을 하고 있다.

첫번째 비속어 ‘해명’이 모욕적인 이유

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말에 들어가 있는 두 비속어가 향하는 대상이었다. 첫번째 등장한 비속어 ‘이 XX들’이 향하는 대상은 명백히 국회의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말 앞에 ‘국회에서’라는 말이 있고 이 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으니 ‘이 XX들’이 국회의원들을 지칭하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이견은 어느 나라 국회의원을 지칭하는가에 있을 뿐이다.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의 음성이 ‘날리면’이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지칭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리는 것처럼 ‘바이든’이라고 하면 미국 국회의원들이 된다.

그런데 ‘이 XX들’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을 지칭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국회의원들을 ‘이 XX들’이라고 표현한 것 그 자체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이 XX들’이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결국 국민을 모욕한 것이다.

두번째 비속어 ‘해명’이 불쾌한 이유

다음은 두 번째 비속어 ‘쪽 팔려서’가 향하는 바다. 핵심은 ’ 쪽 팔리다’의 주어가 누구인가 이다. 주어가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대통령실은 국민 듣기평가를 제안했으니 ‘쪽 팔리다’의 주어는 대통령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만약 대통령실이 잘 들어봐 달라고 한 부분이 ’ 바이든’이면 ‘쪽 팔리다’의 주어는 바이든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만약 대통령실이 주장 하듯이 ‘날리면’이면 ‘쪽 팔이다’의 주어는 윤석열 대통령이 된다.

결국, ‘바이든’이라면 외교적인 문제가 될 테고, ‘날리면’이라면 국민에게 상처가 되는 딜레마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을 주어로 ‘쪽 팔리다’와 같은 비속어를 사용했다면 그렇게 강조하던 동맹국의 정상에 대해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니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비하적 표현을 썼다면 이 또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대표를 맡은 기간 동안 대통령은 곧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일이 된다. 국민들은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

대국민사과, 지금이 가장 빠르다

끝으로 꼭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의 대응이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나서 전 국민 듣기평가를 한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홍보수석은 도대체 무엇을 홍보하기 위해 브리핑 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동영상을 다시 들어봐 달라고 협박같은 호소를 한 것일까? 대통령이 비속어를 쓴 것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려 한 것인가? 혹시 대통령실이 아니라 야당의 대응을 내가 잘못 안 것이었나 갑자기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대통령실이 했어야 하는 것은 전 국민 듣기평가가 아니라 대국민 사과였다. 사과를 해야 한다면 언제나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글쓴이

신지영 언어탐험가(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신지영 교수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베이스캠프로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인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언어 탐험가다.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다. 저서로는 <인어의 높이뛰기>, <언어의 줄다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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