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재인가?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 권력의 언어 ‘인재’라는 말은 판단하는 주체(권력자)와 판단 받는 대상(약자) 사이의 비대칭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
- 주체적 선언 인재는 타인에 의해 명명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역량과 쓸모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주체적인 존재여야 한다.
- 교육의 본질 획일화된 수능 점수로 줄을 세우는 ‘인재 양성’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신만의 인재성을 찾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 누군가의 ‘재목(材)’으로 쓰이기 위한 수동적 존재를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칼럼.
‘인재 전쟁’에서 만난 PD
‘인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하게 된 덕분이었다. 가끔 방송 비평 프로그램에 패널로 초대를 받는다. 그날의 비평 대상은 ‘인재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2부작이었고 함께 패널로 등장하는 분은 그 프로그램을 만든 PD였다.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던 프로그램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다큐는 ‘공대에 미친 중국’과 ‘의대에 미친 한국’을 비교하며 대한민국의 의대 쏠림 현상이 미래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잘 만든 다큐였다. 녹화를 끝내고 나는 패널로 나온 그 PD와 한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이 깊고 열정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분이어서 프로그램만큼이나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문과대학 교수로서 방송을 보고 느낀 문제의식과 함께 현재 대학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결국은 돈을 많이 버는 영역으로 인재가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차이가 없는 게 아닌지.
인재 전쟁에 문과는 아예 참전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능 점수가 높은 사람을 인재라고 우리가 너무 쉽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대 쏠림 현상이 공교육을 위협한다면 로스쿨 쏠림 현상이 대학 교육, 특히 문과대학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타 등등 다큐멘터리를 보며 느꼈던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계 편도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날의 만남은 내게 ‘인재’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2월 말, 그 PD에게서 문자가 왔다. 잠깐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약속을 정했다. PD를 만나기 전에 그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출간된, 같은 제목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느낌을 받았다.
네, 나는 인재입니다
에필로그에는 다큐를 만들며 만난 사람들에게 던진 공통 질문인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요?’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답이 정리되어 있었다.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답을 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사인을 받으려고 책을 가져 갔는데, 고맙게도 사인한 책 한 권을 내게 건넸다. 책을 건네며 그 PD는 지난 여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후속 다큐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행히 기회가 되어 현재 후속 다큐를 준비하고 있다며, 새로 준비하는 다큐에 꼭 인터뷰를 해 달라고 덧붙였다. 후속 다큐를 만들게 되었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다.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서 더 많은 생각을 이끌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PD가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인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인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답을 듣고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서 물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재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는 잠깐 망설였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답이 정말 반가웠다.
다음 순간 나는 왜 그 답이 반가웠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생각이 복잡해졌던 이유,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받았던 이유,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답을 읽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가 정리되었다.
누군가 ‘인재’라 불러야 ‘인재’가 되는
지금까지 우리는 늘 ‘인재는 누구인가?’만 물었지, ‘나는 인재인가’는 묻지 않았다. 인재란 인재임을 인정하는 ‘누군가’에 의해 명명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재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량과 쓸모를 알아봐 주는 조직이나 사회가 정하는 것이라고 학습되어 왔던 탓이다.
인재라는 말 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1) 인재인지 아닌지는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2) 그런 판단을 하는 사람(집단)은 따로 있다.
3) 인재란 그 사람(집단)의 판단에 의해 정해지는 대상이다.
결국, 인재라는 말은 우리에게 인재인지 아닌지는 ‘너희’들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고 그 판단을 너희는 그냥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재’는 이렇게 늘 대상화되어 존재해 왔던 것이다.
또 ‘인재’라는 말은 ‘인재’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인재’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늘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고 권력이 작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큰 사람은 인재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사람이지 인재인지 아닌지의 판단 대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른에게, 학생이 교수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인재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른/교수/사장에게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인재인지 아닌지는 어른/교수/사장이 아이/학생/직원을 두고 하는 말이지, 아이/학생/직원이 어른/교수/사장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꼼꼼히 살펴보니 ‘인재’라는 말이 매우 권력 비대칭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겠다.

인재라는 말에 담긴 이데올로기
지금까지 우리는 ‘인재’라는 단어에 담긴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나는 인재인지’를 묻기보다 ‘인재는 누구인가’를 물어왔다. 인재라는 말이 담고 있는 군주제의 세계관을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재성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인재됨을 인증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주인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인재이고, 또 모두 인재여야만 한다. 각자 스스로의 역량과 쓸모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과 쓸모에 맞는 일을 찾아서 각자의 인재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모두가 각자의 인재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은 스스로의 역량과 쓸모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획일화된 인재상에 갇혀 서로의 인재됨이 비교되거나 줄 세워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의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점수로 줄 세우고, 수능 점수가 인재됨의 기준이 되며, 수능 점수에 따라 대학과 학과의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을 우리 사회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유가 어쩌면 ‘인재’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인재성을 발휘하자
세상도 변하고 생각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언어는 지속적으로 언어에 담긴 낡은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주입한다. 군주제의 세계관이 담긴 ‘인재’라는 말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인재됨’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재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도 여전히 그 인재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를 묻기보다 ‘나는 어떤 인재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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