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인재들, 의사소통 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인문계 비해 떨어진다는 사교성·소통능력 이 고정관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공학 연구소에서의 경험
박사학위를 마치고 음성 공학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한 기업체 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컴퓨터가 인간의 말을 인식하게 하는 음성 인식 기술과 글자로 된 텍스트를 음성으로 출력시키는 음성 합성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였다. 국내 최초로 음성 인식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한 당시 국내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연구소였다.
연구소의 특성상 연구원들은 거의 공학 계열 석‧박사 학위자들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박사학위를 마치기까지 주로 인문학 전공자들 속에서만 지냈던 터라, 처음 연구소에 갔을 때는 분위기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우선 연구소는 매우 조용했고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거의 없었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를 제외한다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관찰자 시점으로 볼 때 혹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보다는 컴퓨터와 보내는 시간을 더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또, 연구소 사람들과 말을 하다 보면 자주 낯선 느낌을 받았다. 연구원들끼리 서로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 좀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면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듯, 말하는 것이 그리 세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달리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말할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청자일 때 상처를 받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관찰을 이어가면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상대의 입장을 두루 살피지 않고 단편적으로 말을 한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언어에 그리 민감하지는 않은 편이어서 다행히 서로의 말에 나의 우려만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상처가 되는지를 정확히 딱 짚지는 못하지만 상대의 말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기는 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연구원들과의 시간이 쌓이면서 그들이 보이는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학 계열 전공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연구소에서의 경험은, 공학 계열을 넘어 이공계 전반의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아울러 이공계 전공자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더 높이기 위해 의사소통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덕분에 공대 학장님을 설득하여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의사소통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 보기도 했다.
이공계 전공자들의 의사소통 특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확인한 이공계 전공자들의 의사소통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압축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일단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글 또한 길게 쓰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많은 정보를 압축하여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필요한 정보만 추려서 깔끔하게 압축하는 것은 좋은 의사소통 전략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달을 받는 사람이 그 압축을 풀어서 원본을 복원할 수 있는가에 있다. 전달된 압축본이 의사소통의 대상자에게 원본으로 복원되기 어렵다면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압축본을 통해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압축본을 만드는 사람이 압축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복원 가능성을 끊임없는 점검해야만 한다. 내가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략한 정보가, 압축본의 수용자들에 의해 복원될 수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압축본은 압축본이 아니라 불완전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압축본이 진짜 압축본인지, 불완전본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압축본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성공적인 전략이 되려면 자신을 중심에 둔 압축본이 아니라 상대방을 중심에 둔 압축본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방을 중심에 둔 압축본은, 동일한 내용이더라도 상대에 따라 다양한 판본이 만들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이공계 전공자들은 다양한 판본을 만드는 일에 그리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압축적인 언어의 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공계 전공자들은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에 비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중 하나가 ‘사교성이 부족하고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많은 경우 현실의 경험을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전공자들이 의사소통에 미숙한 특징을 갖게 되는 이유는 전공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의 내용과 교육 과정을 고려할 때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에 비해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전공 교육 과정 안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훈련을 받을 기회가 충분하하지 않다. 더욱이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은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말하기와 글쓰기를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다. 뿐만 아니라 전공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훨씬 자주 주어진다.
이러한 차이가 이공계 전공자들과 인문사회계 전공자들 사이의 의사소통 능력 격차를 초래하게 된다면 이는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매우 불리하다. 의사소통 능력은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에게만 요구되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능력은 전공과 무관하게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핵심 능력이다.
꼭 필요한 능력인데 전공 교육 과정에서 훈련을 받기 어렵다면 교육 과정 내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만 한다.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별도의 의사소통 교육이 훨씬 강화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전공 지식은 전문가로서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전공 지식은 더 나은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그리고 행복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행복한 삶의 핵심은 타인과의 행복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전적으로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소통하지 않는다면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전문가로서의 삶도 위협받을 수 있다.
결국,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의사소통 능력은 더 나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핵심 능력이다. 따라서 이러한 핵심 능력은 반드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될 수 있어야 한다. 이공계 전공자들의 의사소통 교육이 교육 과정 내에서 별도로 꼭 이루어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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