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권이 생긴 당신에게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어디를 가든 발언해야 할 지위에 오른 당신 좋은 발언권자가 되기 위해 지켜야할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
인생에는 여러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말하기와 관련한 아이러니도 있으니, 말을 고칠 수 있는 나이에는 발언권이 없어 말할 기회가 별로 없고, 발언권이 생긴 나이에는 말할 기회는 많은데 말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대 대학생들은 말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하기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못하면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몇 번의 피드백만으로도 큰 변화와 성장을 이룬다. 반면에 40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발언권이 생기면서 다양한 말하기 장면에 노출되게 되는데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발언권이 생긴 나이가 되면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이다.
발언권이 생기면
다음에 보인 다섯 가지는 자신이 발언권이 생겼는지를 알 수 있는 점검 포인트다.
첫째, 어디를 가면 자꾸 말을 하라고 한다.
둘째, 내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셋째, 어느 순간 나만 얘기하고 있다.
넷째, 말하는 시간이 듣는 시간보다 길다.
다섯째, 내 말을 다른 사람들이 경청하는 것 같다.
발언권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오래전에 한 분이 실제로 내게 토로했던 고민이다. 사석에서 만난 그분은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공대 교수인 그는 말주변이 그리 좋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학장이 되었더니 어디를 가면 자꾸 말을 하라고 해서 아주 당혹스럽다고 했다. 순서가 예정되어 있는 행사의 경우는 말하기를 준비해 가면 되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말할 것을 예상을 하지 않고 갔는데 말을 하라고 하는 경우였다. 그런 상황이 아주 곤혹스럽다며 어떻게 하면 좋은지 조언을 해 달라고 했다.
할 말을 준비하라
이에 대한 조언은 간단했다. 학장이 되었으니 사회적 권력이 더 커진 것이다. 권력의 크기만큼 발언권은 더 커지는 법이다. 어디를 가든 자꾸 말을 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할 말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할 말을 준비한 상태에서 모임에 가면 시켜도 안 시켜도 문제가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시키면 준비가 되었으니 준비된 대로 말을 하면 되고, 안 시키면 안 하면 되니까 문제가 될 게 없다.
간단한 조언이었지만 큰 울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만났을 때 반색을 하며 고맙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내 조언 덕분에 모임에 가는 것이 덜 부담스러워졌다고 했다. 이제는 말을 시켜도 간단히 준비한 얘기가 있어서 그리 당황스럽지 않다고 했다.
말을 준비해 가는 것은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의 성의요, 예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말은 준비되어야 간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말을 하게 되면 대체로 횡설수설하며 길어지게 마련이다. 말이 길어지면 웬만큼 좋은 내용이 아닌 한, 사람들을 집중시키기 어렵다. 길고 장황하게 핵심 없이 시간만 끌다가 끝난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힘들어진다. 대체로 사람들은 1분 30초가 넘어가면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1분 30초라면 보통 속도를 기준으로 띄어쓰기 없이 약 500개 글자 정도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악순환의 함정
위에 말한 점검포인트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발언권이 생기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악순환의 함정이다. 사람들은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기가 막히게 잘 안다. 발언권도 권력이기 때문에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여 발언권이 생기게 된다. 특히 공적인 관계라면 권력의 격차가 클수록 발언권의 비대칭도 커지게 마련이다.
사실, 발언권이 큰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하게 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발언권자 앞에서 사람들이 말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언권자의 입장에서는 침묵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시작하게 된다. 발언권자가 말을 시작하면 누구도 그 발언권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계속 혼자만 떠들게 된다.
발언권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말들을 안 하려 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다른 참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닐 수 있다. 다른 참여자들 입장에서는 말할 기회가 없어서 말을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큰 사람이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말을 시작한 것뿐인데 내가 계속 말을 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발언권자는 혼자만 말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당연히 말하는 시간이 듣는 시간보다 길어지게 된다.
말을 잘한다는 착각
마지막 다섯 번째 포인트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사람들이 내 말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경청하는 것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한다. 감탄사까지 연발하는 등 반응이 정말 열광적이다. 이런 주변의 반응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에 취하게 한다. 자신의 말에 취하기 시작하면 주변의 반응을 똑바로 살피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권력자는 자신의 말에 취해서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가며 발언권을 독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집중하는 것은 내 권력이지 내 말이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에 집중하는 것을 두고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줄 착각한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미 여러 번 반복했던 이야기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말을 잘하고 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착각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저렇게 열심히 말하고 있는데 “이미 여러 번 말씀하신 얘기예요”라며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권력자든 아니든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게다가 나보다 더 여러 번 들었을 법한 사람들도 저렇게 집중하며 열심히 추임새를 넣고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내가 나설 수는 없다. 지루해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예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저렇게 하고 싶어하는데 들어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함께 있는 그 시간을 견뎌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나는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를 못 참아서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찍힐 수는 없다.

세심히 살피라
사람들이 내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선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대체로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발언권이 큰 사람이어서 조심스럽기 때문이거나 혹은 내가 더불어 말하기에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거나. 전자라면 발언권자로서 말하기 장면을 세심히 살펴야 하고 후자라면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에 말하기 장면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면 후자의 유형이 되어 버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발언권이 생기면서 벌어지게 되는 발언권 독점의 악순화을 끊기 위해 더 세심하게 말하기 장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말하는 사람의 예의
말하기 장면을 살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예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에 있어서 ‘경청’이라는 예의를 강조한다. 누군가 말을 하면 열심히 듣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청은 듣는 사람의 예의이지 말하는 사람의 예의는 아니다. 예의란 한쪽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하기의 예의로 우리는 ‘경청’이라는 다소 일방향적인 예의만을 이야기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말하는 사람의 예의는 무엇일까?
바로,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면 나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어야 한다. 내 말에 경청의 예의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나도 경청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어야만 한다. 발언권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의인 이유다.
발언권을 독점하는 것은 그래서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된다. 경청의 예의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생겼다는 것은 자칫 발언권을 독점하는 무례한 사람이 되기 쉬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발언권은 그래서 말하는 권리가 아니라 발언권을 배분하는 권리라고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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