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강연 요청받고 생각해 본 ‘따뜻한 말 한마디’ 왜 누구나 듣기 원하지만 잘 하지는 못할까? 말에 온기를 불어넣는 첫 세대, 따뜻한 말을 다음 세대에 물려 주는 첫 세대 되면 어떨까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스틸 것.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스틸 것.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난 2019년 6월 초, 여름이 막 시작하려는 때였다. 강연을 요청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시 정신건강 복지센터였다. 서울시 50+ 재단과 함께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강연을 한 꼭지 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홍보대사인 ‘정신건강 지키미’로 위촉을 받아 활동했던 인연이 있는 센터였다. 홍보대사로서 센터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어 늘 민망하던 차에 강연 의뢰를 받으니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잘 준비해 보겠다고 말하며 강연의 주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준비해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여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겠다는 말을 해 버린 뒤였으니 말이다. 강연의 주제가 무엇인지 먼저 묻고 수락 여부를 말했어야 했다.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늘 이렇게 마음이 앞서가는 게 문제다.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경솔함을 불러내서는 난감함을 만나게 하고 있다. 강연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난감함은 아마 낭패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난색을 표하는 내게 더 무서운 말이 돌아왔다.

“교수님,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교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면 됩니다. 강연 오신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다는 생각으로요. 소통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오셨으니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교수님은 뭐든지 잘하시잖아요.”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의 부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부담 갖지 말라’는 말보다 더 부담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이 말은 묘하게도 부담스럽지 않을 때 들으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데,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들으면 부담감을 더 느끼게 한다.

물론,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나도 자주 쓰던 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득 이 말이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부담을 넘어 공포감이 들게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할 때와 내가 들을 때, 말의 거리가 이렇게 멀 수 있구나를 새삼 느꼈다. 우리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하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일수록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매우 달리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성찰의 시간

그날부터 머릿속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왜 그 주제가 나에게 어렵게 느껴졌는지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말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촉을 느낀다. 내가 상대의 말을 통해 느끼는 것처럼 상대도 나의 말을 통해 다양한 감촉을 느낄 것이다. 내 말은 어떤 감촉을 상대에게 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어떤 감촉을 느끼게 하는 말을 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

이 말에 대한 나의 답은 불행히도 ‘날카로움’이었다. ‘따스함’은 어쩌면 내 말의 감촉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하지 않은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직업의 특성상 우리는 ‘날카로움’을 훈련받는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벼려지는 내 언어가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뭉개거나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것은 ‘악’이고, 정확하고 날카롭게 표현하는 것이 ‘선’이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혔다.

렌즈의 초첨을 맞추듯,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내 말이 목표 과녁에 딱 가서 꽂히기를 바랐다. 벙벙하게 번지고 흐물흐물 늘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뜻한 말이 아니라 날카롭고 빈틈없이 쫀쫀한 말에 더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내 언어는 이제 내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내 제자들에게 날카롭게 더 날카롭게, 정확하게 더 정확하게를 요구했고 훌륭한 내 제자들은 이제 나를 앞지르는 날카로운 언어 감각을 가지고 있다.

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고 그립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왜 따뜻한 말에 대한 갈구가 별로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픈 답에 이르게 되었다. 따뜻한 말이 그리 그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응원과 지지를 해 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가족, 늘 곁에서 힘을 주는 친구들, 믿고 따라주는 제자들. 이미 나는 따듯한 말 속에서 온기 가득 살아왔던 것이다. 늘 따뜻함 속에서 살았으니 온기를 온기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나 온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데 온기 속에 살고 있으면서, 혹시 냉기 속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냉기도 가끔은 필요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닌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의 냉기에 한기를 느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왜 못할까?

그리고 주변의 언어를 살피게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일상의 말부터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드라마의 대사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 하는지를. 이유는 간단했다. 따뜻한 말을 많이 듣지 못해서였다. 많이 듣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에서 많이 들어왔던 말들이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된다. 그 상황에 놓이면 그 상황에서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들을 내 입으로 하게 된다. 부담을 느끼는 사람에게 ‘부담 갖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잘 못하는 이유는 따뜻한 말이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 따뜻한 말이 오가지 않은 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말을 못하는 이유는 따뜻한 말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모이는 온기 가득한 명절에도 따듯한 음식은 오가도 따뜻한 말은 오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고맙다, 고생했다는 온기 어린 말은 생략하기 일쑤다. 그런 말은 쏙 빼고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심이랍시고 피하고 싶은 질문만 해 댄다. 그리고 더 원하는 것, 더 필요한 것만 말한다. 밥상 앞에서도 맛있으면 말이 사라지고 맛없으면 싱겁다, 짜다 말이 많아진다. 선물을 받으며 하는 말은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뭘 이런 걸 사 왔냐’는 말이다. 선물은 물건을 받는 게 아니라 마음을 받는 것인데 마음을 받지 않고 물건을 받을 때나 어울리는 말이다.

따뜻한 말을 하는 첫 세대

흥미로운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누구나 듣고 싶어하는 말인데,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듣고 싶어한다면 누군가는 해 줘야 하는데 모두 들으려고만 하지 하려고는 하지는 않는다.

그럼 방법은 없을까? 새로운 온도의 말이 오가려면 부자연스러움과 쑥스러움을 참아서 그 말이 익숙하게 오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말은 하기도 힘들지만 듣기도 힘들다. 안 해본 말을 하면 하는 사람만 쑥스러워지는 게 아니다. 안 들어본 말을 들어도 쑥스럽기는 매일반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말을 했는데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다시 할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비아냥이 돌아온다면 어렵게 냈던 용기는 자책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받아주지 않거나 비아냥거리는 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라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몰라서 자신의 쑥스러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대의 쑥스러움 때문에 나의 용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

미운 말 대신 예쁜 말, 상처를 주는 말 대신 위로를 주는 말들이 내 귀에 많이 들렸으면 한다면 나부터 그런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런 말을 내게 해 주었을 때 그 상황에서 내가 받기를 원하는 반응을 해 주어야 한다. 나의 쑥스러움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따뜻한 말이 부족한 이유는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자라지 못해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 다음 세대도 그런 말을 많이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강연에서 나는 50+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가 말에 온기를 불어넣는 첫 세대, 따뜻한 말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첫 번째 세대가 되자고 말이다.

5월, 가정의달을 맞았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 새 길을 트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를 바란다. 사회의 온기는 가정의 온기로부터 온다.

글쓴이

신지영 언어탐험가(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신지영 교수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베이스캠프로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인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언어 탐험가다.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다. 저서로는 <언어의 높이뛰기>, <언어의 줄다리기> 등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