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사교적 상황에서 쓰는 가벼운 대화 우리는 왜 스몰토크에 인색할까? 스몰토크는 정말 쓸데없는 말일까? 타인에 대한 ‘환대’의 의미를 담길
스몰토크
스몰토크(small talk)란 사교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가볍고 소소한 대화를 말한다.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보다는 초면이거나 초면은 아니라도 서로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주로 지칭한다. 따라서 그런 관계에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하지 않은 주제, 논쟁적인지 않은 문제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태도는 공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몰토크는 문화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스몰토크 문화는 매우 다르다. 미국은 스몰토크가 영국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있게 되면 서로 스몰토크를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말을 건네는 것이 거의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반면에 영국은 미국보다 스몰토크가 시작되는 데 더 긴 시간이 요구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 비해 낯선 이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스몰토크를 주고받는 경향이 있다.
스몰토크가 어려운 우리
그럼 우리는 어떤가? 한국어 사용자들은 영어권에 비해 스몰토크를 훨씬 아끼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어 사용자들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는 일에 경험이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과도 인사를 건네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다. 낯선 이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오히려 경계심을 보인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한국어 사용자들은 영어권 나라, 특히 미국에 가서 낯선 사람과 스몰토크를 나누어야 하는 일이 버겁다. 언어 장벽에 문화 장벽까지 이중의 장벽이 가로놓인 탓에 스몰토크는 영어권 나라에 사는 한국어 사용자들을 힘들게 한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영국에서 유학할 때도 한국 유학생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파티는 더더욱 꺼리는 듯했다. 손에 음료를 든 채 서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겨우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싶으면 상대는 어느덧 다른 사람을 향해 떠난다. 혼자 좀 조용히 있으려 하면 낯선 사람이 와서 말을 거니 새로운 사람과 다시 처음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세 가지 장면
거의 귀에 들리지 않던 스몰토크라는 표현이 최근 자주 귀에 들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몰토크를 못한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스몰토크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았다. 우리 사회의 스몰토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세 가지 장면을 소개하려 한다.
먼저 인사하면 지는 거야
오래 전의 일이다. 동생처럼 지내는 후배의 가족과 장을 보러 대형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후배의 딸은 평소 이모라고 부르는 나와 함께 마트에 온 것이 신이 났는지 마트의 이곳저곳을 기분 좋게 둘러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굳은 얼굴로 종종걸음을 하며 내게 다가와서는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말했다.
“이모, 저기 우리 반 친구가 와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같은 반 친구를 만났는데 왜 아는 척을 하지 않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모, 먼저 아는 척하면 지는 거예요!”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놀랐다. 먼저 아는 척을 하면 지는 거라는 그 아이의 말에 어른들의 태도가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교 모임에 가서 누가 누구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는가로 서로의 위계를 확인하는 어른들의 못난 태도가 예민한 아이의 눈에 포착되었던 모양이다.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했던 기억이 있다.
강연이 된 대화
친구들과 여행을 하다가 한 카페에서 친구의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여행을 인솔해 주던 친구는 갓 볶은 커피를 전해 주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여행 동선에 있는 모 카페로 자신의 지인을 오게 한 것이다. 카페에 가니 그분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모두 일곱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화는 강연으로 바뀌어 있었다. 커피만 전달하고 가려던 사람이 어느새 커피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애쓰는 연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여섯 명은 뜻하지 않게 대화의 참여자에서 강연의 수강생이 되어 버렸다.
우리 여섯 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그분과 초면인 상황이었다. 안면이 있는 친구도 그분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말을 끊고 우르르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자발적으로 그분의 강연을 듣게 된 우리는, “초면에 제가 말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라는 그분의 말을 세 번 간헐적으로 듣고 “아닙니다”라고 꼬박꼬박 세 번 다 부인한 후에야 겨우 그 강연에서 놓일 수 있었다.
“스몰토크를 못해요”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켜고 출근을 준비한다.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간에는 대체로 시사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보통은 출근을 준비하느라 라디오에만 집중하기 어렵지만 그날은 주제가 ‘스몰토크’여서 잠시 출근 준비를 멈추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 스몰토크라는 말이 자주 귀에 들리기 시작해서 관심을 두어 왔던 터였다. 한 지인이 스몰토크를 잘 하지 못한다며 고민을 토로하는 바람에 갑자기 상기된 단어였다. 방송을 들으니 진행자 역시 스스로를 “스몰토크에 약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너무 말이 없어서 배우자가 불만이 많다면서 자신은 중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말이란 일과 관련된 것이라며 지금은 나이가 들어 조금 나아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스몰토크를 가로막는 문화
위에 소개한 세 일화는 모두 스몰토크를 가로막는 우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① 진짜 윗사람이라면
첫 번째 일화는 왜 우리 사회에 스몰토크 문화가 없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듯하다. 스몰토크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우리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낯선 사람과 말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낯선 이는커녕 아는 사람과도 먼저 아는 체를 하는 것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 실제로 우리 문화에서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힘이 적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다. 소위 ‘윗사람’은 소위 ‘아랫사람’의 인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소위 ‘아랫사람’은 소위 ‘윗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배운다.
물론, 사람의 위아래가 존재한다는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지만 진짜 자신이 윗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아랫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 윗사람의 여유가 아닐까? 남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해 주기 전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듯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윗사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윗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외로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②대화의 핵심은 ‘티키타카’
두 번째 일화처럼 대화의 자리를 독백의 무대로 꾸미는 사람들을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는 서로 발언권이 왔다갔다 해야 즐겁다. 요즘 흔히 사용되고 있는 ‘티키타카가 잘 된다’는 말이 대화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티키타카란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인데 빠른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진영을 압박하는 축구 전술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말이 대화에서 발언권이 적절히 왔다갔다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초면에 만나서 하게 되는 대화는 티키타카가 잘 이루어지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발언권을 독점하며 대화를 하는 것은 패스를 하지 않고 공을 독점하며 축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티키타카는 축구에서도, 대화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③언어의 기능에 대한 오해
세 번째 일화에 등장하는 진행자는 언어가 가진 기능을 다소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 사실 이 진행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언어의 기능을 ‘정보 전달의 기능’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정보 전달의 기능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의례적 기능’이 그중 하나다. 의례적 기능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의 기능을 말한다. 만나면 하는 인사가 대표적인 언어의 의례적 기능이다.
스몰토크도 언어의 의례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스몰토크를 통해 내 앞에 존재하는 사람을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예의를 갖춰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투명 인간이 아니라 한 존재로서 내게 인식되고 있다’는 환대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낯선 이와의 대화가 누구에겐들 어렵고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존재를 환대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낯선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말이 아니면 안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하다는 뜻은 일에 있어 중요하다는 뜻이다’라는 진행자의 발언은 언어의 기능을 매우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요한 말’은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일의 맥락인지, 관계의 맥락인지에 따라서 중요한 말은 달라질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편협한 생각이 어쩌면 가족을 ‘스몰토크를 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족은 스몰토크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대상이다. 일이 아니라 삶의 문제들을 나누는 대상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삶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대화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으며 삶의 에너지 충전소 역할을 하는 곳이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정은 그런 말이 흐르고 통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스몰토크를 통해 생각해야 할 것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스몰토크 주변의 일들을 들여다보니 낯선 이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듯하다. ‘우리’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낯선 사람에 대해 우리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상대의 태도가 더 익숙한 듯하다.
이러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은 낯선 이의 작은 친절을 만났을 때, 그리고 낯선 이에게 작은 무례를 범했을 때다. 우리는 낯선 이의 작은 친절에 고맙다는 표현을 하는 데도, 낯선 이에게 행한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다. 만약 상대가 아는 사람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고맙다, 미안하다가 더 쉽게 오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반대로 낯선 이의 작은 친절에 더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야 하고 낯선 이에게 행한 작은 무례에 대해 더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맙다, 미안하다에 인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의 작은 친절을, 그리고 자신의 작은 무례를 알아채지 못한 결과일까, 아니면 고맙다, 미안하다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전자라면 ‘예의’를 못 배운 것이고, 후자라면 ‘언어’를 못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기 중심적 사고’가 숨어 있다. 자신이 베푼 작은 친절을 상대가 몰라주어 서운하다면, 상대가 무례를 행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하는 게 불쾌하다면 상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친한 사이라도 표현하지 않고 알아달라는 것은 억지일 수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고도 알아달라니 말도 안 되는 요구다.
지금 아는 사람도 한때는 낯선 사람이었다. 혹시 우리가 스몰토크에 인색한 이유가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는 사람들을 구별하고 구분짓고 이를 통해 차별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상대가 아무리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않을 존재라고 해도 그 존재만큼은 서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을 담는다. 내 앞의 상대에게 ‘당신은 존재합니다. 당신은 내게 투명 인간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스몰토크는 어쩌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환대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나의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더 쉽게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낯선 이에게도 이런 나의 태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내 삶에 의미 있는 존재들과 티키타카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대화는 훨씬 더 쉬워질 것이고 더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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