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문학상에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자전적 젠더·계급 탐구 작품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불려 ‘불법 낙태’ 경험 다룬 소설 펴내기도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 위해 투쟁”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스웨덴 한림원은 “에르노는 작품을 통해 젠더,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하며, 길고도 고된 과정을 통해 작품세계를 개척해왔다”고 평가하면서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꾸임없는 예리함”을 노벨 문학상 선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에르노의 작품은 종종 비타협적이며, 평이한 언어로 깔끔하게 쓰여졌다”면서 “에르노가 굉장한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당신이 누구인지 볼 수 있도록 부끄러움과 굴욕, 질투, 무력함 등을 묘사하여 계급적 경험에서 오는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무언가 존경스럽고 영속적인 것을 성취해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에르노는 이날 수상자 발표가 나온 뒤 스웨덴 공영 방송 인터뷰에서 “이 수상이 제게 대단한 영광이라고 본다”며 “동시에 내게 주어진 대단한 책임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에르노는 자신이 용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며 “문학이 ‘즉각적인 영향’은 주지 못하겠지만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에 여성의 자유와 잊혀진 시절에 관해 이야기해 온 에르노의 수상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에르노가 지난 50년 동안 조국의 집단적이고도 친숙한 기억에 관한 글을 써왔다”고 평했다.
‘남자의 자리’, ‘세월’ 등 대표작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이브토에서 태어났으며, 루앙대학 현대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중등학교 교사 등을 지내다 1977년 부터 대학교수로 일했다.
1974년 스무살 때 불법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자신의 경험으로 시작하는 소설 ‘빈 옷장’(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한 그녀는 자서전적인 글을 많이 썼는데, 20권이 넘는 그녀의 책들 대부분은 그녀의 삶과 주변 즉, 부모, 청소년기, 성적 만남, 결혼, 낙태 그리고 부모의 죽음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초상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룬 책 ‘남자의 자리’(La Place, 1983년)는 하층 노동자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삶과 그와는 멀어져 부르주아 중상류층에 속하게 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전적 서사이고, 이와 함께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다룬 ‘한 여자’(Une Femme,1987년)는 별다른 가공이나 은유 없이 건조하게 자신이 겪은 것만을 담아 그녀의 독보적인 ‘자전적 글쓰기’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작이다.
이밖에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사진의 용도’, ‘세월’ 등도 대표작들로 꼽히는데, 에르노의 대표작 ‘세월’(Les annees, 2008)은 1941년에서 2006년까지의 세월을 한 여성의 시선으로 보면서 개인의 기억에 공동의 역사를 투영하는 소설이다. 세월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1인칭 시점인 ‘나’가 아닌 ‘그녀’ ‘우리’, ‘사람들’이라는 3인칭을 주어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다.
2011년에는 자전 소설과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로,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의 총서에 편입되기도 했다.
에르노의 자전적 글쓰기는 너무도 자유롭고 적나라해 문화계 보수 인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사회와 역사, 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 등이 배어 있어 보편적 세계를 드러내는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의 나라’를 자처하는 프랑스에서는 1901년 초대 수상자 쉴리 프뤼돔을 비롯해 로맹 롤랑(1915년), 앙드레 지드(1947년), 알베르 카뮈(1957년), 장 폴 사르트르(1964년·수상 거부) 등을 거쳐 에르노에 이르기까지 총 1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에르노는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프랑스 여성이다.
에르노 직전에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르가 201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칼 구스타프 3세 국왕이 1786년 설립한 왕립 학술원으로, 1901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이날 문학상에 이어서는 7일 평화상, 10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다.
올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경제·문학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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