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숙했고 불통했다”...트러스 英총리 사임

부자감세 포함한 경기부양책, 화 자초 내각내부·중앙은행과 소통하지 않아 금융시장 일대혼란...자유주의 기로에

취임 44일만에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는 리즈 트러스. 사진=연합뉴스
취임 44일만에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는 리즈 트러스. 사진=연합뉴스

미숙한 정책 수행 능력을 드러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만에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대처리즘’이라는 절대 미신에 취해 정부내 소통을 무시한데 따른 것으로, 우리 정부에게도 큰 반면교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가 내놓은 부자감세 정책등은 현재 세계 경제흐름에 맞지 않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등으로부터 대놓고 비판을 받으며 영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는 도화선이 됐다. 또 시대적인 배경이 다르고 국가경제가 처한 현실이 다른데도 1980년대의 자유주의 경제정책인 ‘대처리즘’을 답습하려 해 국민들로부터도 맹비난을 받아야 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상식을 무시한데 따른 대가였다.

트러스 총리는 20일(영국 런던 현지시간) 오후 총리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며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어 “다음 주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차기 보수당 대표 및 총리는 이르면 24일, 늦어도 28일에는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임결정이 갑자기 나온 만큼 후임자는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지난 번 트러스 총리와 경합했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과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 ‘파티게이트’로 쫓겨나듯 나간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부자감세 정책등을 완전히 내던지며 ‘사실상 총리’로 불리는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사임 발표한 트러스 총리는 지난 9월 6일 취임했고 이날 44일만에 총리직을 내려놓음으로써 역대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리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됐다.

트러스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내각 내에서조차 소통하지 않고 성급히 내놓은 감세 정책이었다. 6일 취임하고 17일만인 23일 내놓은 450억파운드(약 72조원) 규모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은 중앙은행인 영란은행과도 상의가 안된 것이었다. 감세와 함께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했는데, 중앙은행이 이를 매입하지 않을 경우 채권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연기금이 매입해온 국채금리가 급등(채권가격 하락)하면서 마진콜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러스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부자감세로 인한 낙수효과는 역사상 결코 없었다”며 대놓고 비판하는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영국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추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중앙은행은 뒤늦게 시장에 긴급 개입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도 물러서기 시작해서 부자 감세, 법인세율 동결 등을 차례로 뒤집고 자신의 정치적 동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내쳤고, 새로 온 헌트 재무장관은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폐기해버렸다. 금융시장은 안정됐지만 트러스 총리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트러스 총리의 사임으로 자유주의식 경제의 부활도 앞으로는 등장하기 어려워졌다. 경제문제연구소의 앤디 메이어 최고운영책임자는 “트러스 내각이 아무런 전략 설명도 없이 많은 정책들을 너무 빨리 밀어 부치려고 했다”면서 “초고소득층의 45% 소득세율을 아예 철폐하겠다는 실수를 범해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라는 큰 방향을 가리키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독립기업연맹의 존 롱워스 회장은 “트러스가 자유주의 경제라는 대철학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그러한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혹평했다.

한편 트러스 총리 사임이 발표된 후 금융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파운드화 환율은 트러스 총리 사임설이 퍼지면서 1.13달러까지 올랐다가 장 후반 상승폭이 축소되며 전날보다 0.45% 오른 1.127달러로 마감됐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3.86%로 전날보다 0.44%포인트 하락(가치 상승)했으나 3.96%로 장을 마쳤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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