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가 실패한 이유는 ‘진주’를 추종해서?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추종한 탓 마가렛의 다양한 약칭들과 변이형들 정치적 정체성을 잃은 결과 아닐지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왼쪽)와 취임 44일만에 사임한 리즈 트러스. 사진= 연합뉴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렛 대처(왼쪽)와 취임 44일만에 사임한 리즈 트러스. 사진= 연합뉴스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리즈 트러스(Liz Truss) 영국 총리가 사임했다.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사퇴 압박에 시달려 왔기에 사임 자체는 놀랍지 않지만,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사임한 것은 다소 놀랍다. 영국 타블로이드지인 데일리스타(Daily Star)는 ‘트러스 총리가 양상추보다 오래 버틸까’(Will Liz Truss outlast this lettuce?)’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둘의 대결을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중계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양상추가 시들기 전에 물러나는 바람에 패배를 안고 말았다. 이로써 임명된 지 44일 만의 퇴임이라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의 오명까지 안게 되었다.

유튜브로 중계한 '트러스 총리가 양상추보다 오래 버틸까'(Will Liz Truss outlast this lettuce?)' 대결로 트러스 총리의 무능을 풍자 조롱한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스타'.
유튜브로 중계한 ‘트러스 총리가 양상추보다 오래 버틸까’(Will Liz Truss outlast this lettuce?)’ 대결로 트러스 총리의 무능을 풍자 조롱한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스타’.

리즈가 마가렛을 찬양한 결과

트러스 총리가 실각한 원인은 그녀의 감세 정책 때문이었다. 감세를 통해 경기를 살리고 이를 통해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감세안이 국내외의 혹독한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세계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철 지난 감세안을 들고나왔을까?

보수당의 총재인 그녀는 보수당의 상징이며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와 같은 반열에 올라 제2의 ‘철의 여인’ 이라는 명성을 얻기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유효기간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 환경의 변화를 완전히 무시한 채 이를 밀어붙이는 누를 범하고 말았다. 가수에게는 리바이벌이 통할 수 있지만 정책에는 통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놓쳐 버린 그녀를 보면 각주구검(刻舟求劍), 즉 배에서 칼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하였다가 나중에 배가 움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칼을 찾았다는 초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매기 아웃’이라고 외치던 청년 리즈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리즈 트러스 인생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녀가 추앙했던 마가렛 대처가 처음에는 오히려 그녀가 배척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중산층 진보의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리즈 트러스는 본래 진보적 정치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마가렛 대처 반대 시위에 심심치 않게 참여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1996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보수당으로 전향을 했다. 전향 전에 참여했던 시위에서 그녀가 사람들과 함께 외쳤던 구호가 ‘Maggie Out’(매기는 물러가라)이었는데, 여기서 ‘매기 ’(Maggie)는 대처(Thatcher)의 이름인 마가렛(Margaret)의 약칭(diminutive)이다. 그렇다면 리즈 트러스의 실각은 어쩌면 ‘매기 아웃’을 외치던 진보 소녀가 보수로 전향한 뒤 이번에는 ‘매기 추앙’을 하다가 자기도 ‘아웃’된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가렛의 유래와 약칭들은

50대 이상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듣고는 했던 ‘메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이라는 미국 노래가 기억날 것이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여기에 나오는 ‘메기’ 가 처음에는 다들 물고기 메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세상을 먼저 떠난 화자의 아내 마가렛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마가렛(Margaret)은 프랑스어 ‘마르그리트’(Marguerite)에서 왔는데, 이는 다시 라틴어 ‘마르가리타’(Margarita)에서 온 말로서 데이지꽃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그러다가 그 의미가 아름다워서 여성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라틴어 Margarita는 어디서 온 말일까? 이는 그리스어 μαργαρίτης(마르가리테스, margaritēs)에서 기원한 말로 ‘진주’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진주’처럼 생긴 꽃이라 하여 데이지를 진주라는 뜻의 ‘마르가리타’(margarita)로 부른 것이다.

한편 영어의 마가렛(margaret)은 ‘진주’라는 의미 외에 ‘위대하다’(great) 혹은 ‘강하다’(strong) 의미도 가지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메가스(μέγ ς ᾰ megas), 즉 현대 영어등에서 엄청나게 크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메가’(mega)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이름 ‘마가렛’은 다양한 약칭을 만들어 냈는데, 앞 부분을 취하면서 r을 탈락시키거나 모음 a를 e로 바꾸어서 형성한 ‘맥, 매기, 멕, 메건’(Mag, Maggie, Meg, Megan)등이 그것들이다. 미국의 인기 여배우 멕 라이언(Meg Ryan)과 메건 폭스(Megan Fox)의 예를 들 수 있다.

프랑스어의 경우 1음절과 2음절을 취하는 형태인 ‘마르고, 마르쥬, 마르지’(Margo, Margot, Margaux, Marge, Margie) 등이 있다. 흔히 국내에서 ‘마고’라고 하는 이름이 이것이고 포도주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영어의 여자 이름에 ‘데이지’(Daisy)가 있는데 이것도 데이지꽃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를 이용하는 ‘마가렛’의 변이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식품 가운데 마가린(margarine)이 있는데, 이것도 ‘마가렛’과 관계가 있다. 이는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Michel Eugène Chevreul, 1786~1889)이 마가린의 주성분인 산(酸) 결정 상태가 꼭 진주 같다고 하여 이에 마가린산(margaric acid)이란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페기’라는 이름도 마가렛에서 나왔다고?

발음이 매우 달라져서 흔히 ‘마가렛’의 약칭으로 알지 못하는 이름도 있는데, ‘페그’(Peg)와 ‘페기’(Peggy)가 그렇다. 이는 단지 뒷부분의 각운(rime)만을 맞추면서 앞의 음을 변경하는 일종의 말장난 시도의 결과로서, ‘윌리엄’(William)에서 나온 약칭 ‘윌 ’(Will)로부터 각운만 맞추는 ‘빌’(Bill)과 ‘빌리’(Billy)가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본명이 ‘윌리엄 클린턴’이다. 참고로 여기서 나온 여성형이 Billie인데 마이클 잭슨의 노래 ‘빌리 진’(Billie Jean)과 여성 테니스계의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한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여사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약칭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단어의 앞 부분을 취하고 뒷 부분을 버리는 방식인데, 이와는 반대로 뒷 부분을 취하는 방식도 가끔 쓰인다. 라틴어 ‘마르가르타 ’(Margarita)로부터 뒷 두 음절을 딴 ‘리타’(Rita)가 나왔고, 뒷 세 음절을 딴(그리고 약간의 변형을 거친) ‘그레타’(Gret(t)a)가 있는데,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가 그 예이다.

롯데가 등장하는 순간도 말꼬리에서

이처럼 뒷 부분만 남기는 특이한 방식을 하나 더 소개하면 제과업체를 모태로 한 그룹의 이름으로 유명한 ‘롯데’가 그렇다. 남자 이름 ‘찰스’(Charles)의 프랑스어 버전은 ‘샤를르’(Charles)다. 이것의 여성형은 ‘작다’라는 뜻의 ‘-otte’(-ette의 변이형)가 붙은 ‘샤를롯테’(Charlotte)인데, 이는 여성의 이름뿐 아니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의 이름(발음은 영어식 샤알럿)으로도 쓰이고, 캐나다의 PEI주의 주도 이름에도 샤일럿타운(Charlottetown)이 쓰이는 등 도시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처럼 영어뿐 아니라 여러 언어에서 이 이름이 쓰이고 있는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간행된 시대에도 유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괴테가 작품의 여주인공 이름으로 ‘샤를롯데’(Charlotte)를 썼고, 약칭으로 뒷 부분을 취한 ‘롯데’(Lotte)를 이용한 것이 오늘날 롯데그룹 이름의 기원이다. 발음은 현대 독일어에서 ‘롯터’가 맞고, ’Werther‘도 베르터가 맞지만 오랜 관용으로 ‘롯데’, ‘베르테르’가 쓰인다.

‘롯데’처럼 ‘-ott(e)’ 접미사가 붙은 이름 중에 두세 개만 더 예를 들면 ‘리즐롯’(Lieselotte), ‘엘리엇’(Elliott), ‘메리엇’(Mariott) 등이 있다. ‘메리엇’은 ’메리’(Mary)에 ‘-ott’가 붙은 형태로 유명한 호텔 프랜차이즈의 이름에 사용되고 있다.

정치인의 생명은 자신만의 정치 철학이다. 정치 철학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리즈 트러스는 자신의 이름 ‘엘리자베스’가 의미하는 ‘하느님의 맹세’(더 칼럼니스트 칼럼 『’엘리자베스’가 가고 ‘리즈’가 왔지만...』 참조)를 지키지 않고 ‘진주’를 찾아 마가렛 대처를 흉내내는 길을 택했다. 이제 그녀는 그 길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가던 길을 멈추어야 했다.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여야 했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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