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전도사’ 라파엘 나달

[27일 나달의 은퇴경기를 앞두고] 12회 우승 프랑스 오픈의 1회전 즈베레프와 대결, 승리가 쉽지 않지만 메이저 22회우승 뛰어넘는 존재감 국민간 통합과 국가 자존심 치유

프랑스오픈에서 고별전을 준비하고 있는 라파엘 나달.
프랑스오픈에서 고별전을 준비하고 있는 라파엘 나달.

전설로 떠나는 라파엘 나달

세계에서 제일 인기있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당연히 40억 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축구이다. 그렇다면 테니스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놀랍게도 크리켓(26억 명), 하키(20억 명)에 이어 팬 수가 12억 명에 달하는 세계 4위의 스포츠이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즐기는 스포츠로는 6000만 명의 플레이어를 지닌 가장 인기 있는 개인 스포츠이다.

테니스의 세계 4대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 Roland-Garros)이 5월 26일 개막한다. 수많은 스타 라인업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이 가장 큰 주목을 끄는데, 특히 그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알렉산드 즈베레프(Alexander Zverev)와 벌이는 1회전 경기에 전 세계 테니스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선 그가 프랑스 오픈 최다 우승자(14회 우승)라는 점에다 이번 대회가 사실상의 고별 대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를 우승으로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큰 위협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세계 랭킹 4위의 즈베레프가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1라운드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달은 세계랭킹 1위였지만 부상 탓에 최근 랭킹이 276위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롤랑가로스에서 시드 배정을 받지 못했으며, 5월 27일 오후 7시(한국시간) 1라운드에서 즈베레프와 맞붙게 된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사실상의 결승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나달은 전세계 테니스 메이저대회에서 통산 22회 정상에 오른 놀라운 경력의 소유자인데, 총 24회 우승한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Novak Đoković)에 이어 이 부문 2위의 기록을 갖고 있다.

나달에겐 고별전, 즈베레프에겐 설욕전

과연 나달은 즈베레프를 맞아 어떤 결과를 보여 줄까?

우선 최근의 성적을 보면 나달이 다소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랜 부상에서 복귀한 후 클레이 코트 위에서 치른 세 대회에서 8강에 오르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20일 끝난 이탈리아 오픈에서 2회전에서 탈락했다. 반면에 즈베레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세계 랭킹 4위에 올랐고 최근 분명 상승세에 있다.

스페인의 테니스 전문가 알렉스 코레차(Alex Corretja)는 같은 스페인 국적의 나달이 승리하기를 기원하지만, “나달이 이긴다면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즈베레프의 상태가 아주 좋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코레차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앤디 머리의 코치를 맡은 바 있고 이후 해설과 후학지도를 맡고 있는데, 그랜드슬램 대회의 우승 경력이 없지만 한때 세계 랭킹 2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라파엘 나달과 두 번 맞붙었지만 두 번 다 이겼다.

그러나 나달은 다른 어떤 선수보다도 클레이 코트를 지배해 왔으며 롤랑가로스에서는 놀라운 112승 3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두 선수 간의 상대전적은 나달 쪽으로 기운다.

나달은 즈베레프와 지금까지 10번 맞붙어 7번 승리했다. 두 사람은 2022년 롤랑가로스의 센터 코트인 필립 샤트리에(Philippe Chatrier)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당시 즈베레프는 준결승전에서 발목을 접질리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3시간 13분의 혈전에도 불구하고 1세트는 6-7로 이기고 2세트는 6-6인 상태여서 나달이 앞서고 있었다. 즈베레프는 이 부상으로 인해 6개월 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부상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어섰으며 나달이 은퇴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대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번에 우연치 않게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달의 심경은 어떠할까? 기자회견에서 그는 롤랑가로스에서의 마지막 출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체력에 달렸다고 서슴없이 말해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우승에 도전하는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1회전부터 자신의 100%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37세의 선수가 말이다.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알렉산드 즈베레프(오른쪽)를 위로하고 있는 라파엘 나달.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알렉산드 즈베레프(오른쪽)를 위로하고 있는 라파엘 나달.

과연 그의 꿈은 이루어질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그는 엄청난 일들을 이룩했으니까.

나달이 꿈꾸웠던 것들, 이룩한 것들

우선 라파엘 나달은 스페인의 영웅이다. 스페인에서 그의 인기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다. 그는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의 마요르카 섬(Mallorca)에서 태어난 카탈로니아 사람이다. 카탈로니아(Catalonia)는,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위해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같은 측면은 스페인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나달은 이를 오히려 ‘스페인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는 스페인 없는 카탈로니아도, 카탈로니아 없는 스페인도 모두 의미가 없다고 역설한 바가 있는, ‘스페인 통합의 전도사’이다.

그의 성(姓) Nadal(나달)은 카탈로니아 말로 ‘탄생’을 뜻한다. 여기서의 탄생은 예수의 탄생을 말한다. 따라서 나달은 카탈로니아어에서 성탄절(Chrismas)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카탈로니아어로 ‘즐거운 성탄’(Merry Christmas)은 ‘본 나달’(Bon Nadal)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서 통합을 이루듯이 그는 스페인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역할을 해 왔다.

한편 그의 업적은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스페인은 한때 세계를 누비고 지배했던 나라이다. ‘무적함대’의 위용을 앞세워 아메리카 대륙에 어마어마한 면적의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거느렸던 제국이다. 그러나 지금의 스페인의 모습은 그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지금은 과거의 화려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 경제도 유럽연합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같은 앞서가는 나라들로부터 가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난 자존심을 어루만져주는 인물이 바로 라파엘 나달이다. 라파엘이란 이름 역시 본래 기독교에서(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존재한다고 믿는 대천사의 이름이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치유의 천사로 전해지고 있다.

‘엘’이 붙은 여러 이름들의 뜻

‘라파엘’(Raphael, 스페인어 Rafael, 히브리어 רפאל)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 치유했다’라는 뜻으로, ‘가브리엘’, ‘미카엘’과 함께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3대 천사 중 하나이다. 과연 그의 이름대로 라파엘 나달은 그의 화려한 우승 기록들로 스페인 국민의 자존심을 치유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라파엘’처럼 기독교 문화권의 서양인 이름에는 ‘엘’(El, 히브리어 אל)을 포함하는 이름들이 많이 있다. ‘엘리자베스’(Elizabeth)처럼 앞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라파엘’처럼 뒤에 들어가는 이름들도 많다. 다니엘 (Daniel), 라파엘 (Raphael), 마이클, 미카엘 (Michael), 사무엘(Samuel), 가브리엘(Gabriel), 엠마누엘(Emmanuel), 임마누엘(Immanuel) 등이 그러하다.

다니엘 (Daniel)은 히브리어 단어 din(심판하다)과 el(하느님)로 이루어진 말인다. “하느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말의 기원은 성경의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이다.

‘미카엘’(Michael, 영어권에서는 마이클 Michael)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수사적 질문)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미카엘은 천사장으로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자 하늘 군대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가브리엘’(Gabriel)은 “신은 나의 힘이다”라는 뜻이고 이스마엘(Ishmael)은 “하느님이 (네 이야기를) 들어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무엘’(Samuel). “하느님이 들으셨다”는 뜻을 갖고 있고 흔히 약칭 ‘샘’(Sam)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엠마누엘’(Emmanuel) 혹은 ‘임마누엘’(Immanuel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다윗의 집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표시로 여겨진다.

통합의 전도사, 치유의 전도사

나달은 자신의 이름 ‘라파엘(Rafael)’이 뜻하는 바와 같이 그는 스페인 국민의 상처난 자존심을 치유하고 자부심을 드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평생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살았던 그는 부상의 불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스스로 치유해 내면서 그의 영광을 이루어 냈기에 진정으로 테니스 팬들과 스페인 국민들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라파엘 나달은 테니스를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치유의 전도사’라 생각된다. 우리도 그와 같은 통합의 전도사, 치유의 전도사를 기대할 수 없을까?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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