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다 역전승이 더 통쾌한 이유
스포츠에서도 빛나는 ‘기저효과’ 지고 있을 때는 좌절감과 배신감 동점골 넣을 땐 흥분과 기대감 분출 드디어 역전골, 자아실현 욕구 충족 한 번의 축구경기도 기쁨을 주는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월 3일 새벽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호주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하면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1월 31일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에서도 먼저 실점하고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에서 역전승을 한 바 있어 두 경기 연속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더욱이 경기 종료 직전에 기적과 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기사회생을 하여 이루어낸 승리라 그 감격이 더욱 컸다. 이로써 한국의 경기는 90분경부터 보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나오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새벽에 잠을 설치면서 지켜본 경기에 열광하였고 그 통쾌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떨어진 기대치, 훨씬 큰 기쁨
그렇다면 한 판의 축구 경기의 승리가 이토록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역전승이 주는 통쾌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저효과(baseline effect) 때문이다. 즉 기준점이 낮아서 발생하는 효과다. 비기다가 이기는 것보다 지다가 이기는 것이 그 기준점이 낮아서 그 기쁨이 훨씬 큰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결과를 해석할 때, 그 전에 경험했던 기저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항상 기대치의 결과물이다. 어떤 것에 대한 결과가 기대치보다 높으면 즐거움의 감정을, 기대치보다 낮으면 불쾌함의 감정을 갖게 된다. 만일 기대치가 없다면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요컨대 감정은 기대치라는 기준점의 작용이다. 그래서 기쁨, 슬픔, 분노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모든 감정은 바로 이 기준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모두 이 기대치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상대에게 어떤 도움을 준 사람은 자기가 베푼 것으로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것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곧 잊어 버린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이 같은 입장의 차이는 향후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기대치의 차이를 형성하여, 서로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혹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라며 화를 내게 된다.
뇌는 어떻게 반응할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지고 있고, 특히 경기 종료가 다가왔는데도 이길 가능성이 낮아 보일 때, 관중의 마음에서는 다양한 심리학적, 뇌신경학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우선 경기에서 지고 있는 상황은 뇌로 하여금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만들어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한다. 다음으로 발생하는 것은 실망과 좌절감이다.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은 기대와 현실 간의 불일치(Discrepancy Between Expectation and Reality)를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불일치는 곧바로 우리의 마음을 실망과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이는 특히 높은 기대를 가졌을 때 그 강도를 더 크게 만든다.
그런데 만일 우리 팀이 원래부터 약팀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지는 것이라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해석해 줄 수 있지만, 만일 상대 팀과 우리가 전력이 비슷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더 강팀으로 평가받는 경우라면 뇌는 이 같은 기대와 현실 간의 불일치를 감지하고 이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게 한다. 또한 경우에 따라 우리는 실망감과 좌절감을 넘어 우리가 응원해 준 데 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고래고래 욕을 분출하게 된다.
또한 개인에 따라서는 자신의 응원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서 지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는데, 이는 자기효능감의 저하(Diminished Self-Efficacy)를 유발하기도 한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신의 판단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는 자존감을 낮추고, 자기에 대한 불안이나 무력감을 유발할 수 있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올 때
그런데 경기에서 지고 있다가 동점 골을 넣을 경우에는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단번에 일소가 된다.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하여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뇌 내에서 도파민과 아세틸콜린과 같은 쾌락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한다.
관중은 예상치 못한 변화에 흥분과 기대감을 느낀다. 흥분은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이제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도파민과 같은 쾌락 호르몬의 분비를 유발한다. 경기장은 대규모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소로, 관중은 서로 기대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러다 마침내 팀이 역전을 이룰 경우, 관중은 팀과의 동질감을 형성하여 마치 자신이 팀의 일원으로서 승리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응원해 주었더니 마침내 보답을 받았구나! 아, 나는 팀으로부터 배신당하지 않았구나!’ 하며 위안을 받게 된다. 물론 거기에다 승리는 기본적으로 기쁨과 만족감을 주며, 성취감과 긍정적인 자부심을 높여준다.
이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해내다니!
이상의 모든 것은, 앞서 말했듯이, 기저효과로 인해 배가되는 것이다. 역전승은 줄곧 리드하다 거둔 승리보다 그 기저효과에 의해 더욱 큰 쾌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역전승은 역경극복 스토리의 구조를 가지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보너스도 준다. 결국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도 노력하고 투지를 가지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궁극적으로 역전승은 어려운 일을 내가 해냈다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이란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제시한 인간 욕구의 최정점에 있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성취하는 경험으로, 이로부터 우리는 자기존중감을 경험하게 된다.
역전골의 순간, 우리는 자신의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목표를 달성한 만족감, 가슴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을 느낀다. 이 순간에는 부와 명예와 지위 등 세상의 모든 욕망들을 완전히 잊어 버린다. 심지어 이런 것들을 쟁취하느라 서로 경쟁을 벌였던 사람과도 감격의 포옹을 한다.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축구의 역전승은 바로 이토록 완벽하게 순수한 내적 만족의 세계로 우리 모두를 이끈다.
한 번의 축구 경기가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정치도 이런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아무튼 이번 아시안컵 대회에서 우리 축구팀이 다시 한 번 역전승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스포츠라도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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