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대한민국, 닮음꼴인 이유
전승국이 되지 못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운명도 우리와 같았다.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었다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1400여 명의 민간인들을 살상하고 수백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병원을 포함한 민간인 지역을 공격하여 팔레스타인 주민 1만 명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보복에 보복이 더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전쟁.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싸울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 세계의 여러 열강이 관여된 지구상에서의 전쟁이라는 점, 그리고 자칫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처럼 세계 경제에 파급될 여파가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사실상 배후에 여러 강대국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 한반도의 상황과 닮아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잘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그들의 땅을 빼앗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건국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나라가 있었다면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는 군인과 경찰이 있었을 것이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쉽게 밀고 들어가 국가를 건설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주인 없이 비어 있던 땅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나라가 있었단 말인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었던 나라는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들, 즉 팔레스타인인(Palestinians)들이 살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
오스만제국은 1299년 오늘날의 튀르키에(옛 터키)에서 건국된 이후 발칸 반도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광활한 지역을 근대까지 지배하였던, 그리고 유럽에서는 매우 위협적인 이미지를 갖던 역사상 최강의 이슬람 국가였다. 그런데 이 오스만제국이 점차 힘을 잃고 쇠락하여 가던 도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때 오스만 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에 가담하는 우를 범하면서 패전국이 되는 바람에 마침내 그 화려했던 역사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원래 승전국은 패전국으로부터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지만 그 외에도 상대국 영토를 가지려 한다. 상대국이 소국이면 자기네 영토로 아예 합병해 버리기도 하고, 아니면 일부 영토를 빼앗거나 되찾아온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알자스-로렌 지역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때 독일이 가져갔던 알자스-로렌 지역을 다시 합병했다.
1차 세계대전을 이긴 연합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일부는 그리스가 되찾아가고, 에게해의 섬들도 그리스령이 되었다. 소아시아의 이즈미르와 그 주변 지역은 5년간 그리스의 통치를 받되 그 후에는 주민 투표를 해서 그리스 혹은 오스만제국 어느 나라에 편입하기로 하였다. 동쪽의 아르메니아는 독립시키고, 쿠르디스탄에게는 자치권을 주었다.
만일 상대국이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으면 이들을 빼앗기도 하고 때로는 독립시켜주어 상대국의 힘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게 된 예가 여기에 속한다.
오스만 제국도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복속되어 있던 아랍 국가들인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이 모두 독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여서 여러 승전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라 곧바로 독립시켜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갈 때 꼭 지나가야 할 이렇게 중요한 땅을 그 어떤 승전국이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하려 했을까?
그래서 그들은 대신 일정 기간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위임 통치(mandate)를 하게 되었다. 말이 위임 통치이지, 실제로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니, 사실상 새로운 식민지 운영이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분단을 택하였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영‧소 열강에 의해 한때 신탁 통치(trusteeship)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승국이 되지 못한,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운명도 우리와 같았다.
영국의 간계와 배신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창설되자, 패전국의 식민지를 승전국이 가져가지 않도록 하고 국제적 감독 하에 두자고 1919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미국 대통령이 파리 평화회의(Paris Peace Conference)에서 제안하였는데, 이것이 위임통치(mandate) 제도다. 위임통치 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연합(United Nations)에서는 용어를 ‘신탁통치’(trusteeship)로 바꾸었다. 패전국으로부터 빼앗은 식민지 영토를 승전국이 합병하지 않고 향후 지위가 결정될 때까지 국제적 감독을 받는 신탁 통치국이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신탁통치 지역으로부터 독립에 대한 청원(petitions)을 받았으며 주기적으로 국제 관리단을 파견하는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위임 통치에 비해 다소의 진전을 이루었다.
사실 용어만 보아도 그러하다. ‘위임 통치’라는 말이 통치권을 다른 국가에 위임한다는 말인데, 이는 영어 mandate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명사로 ‘권한’이라는 뜻으로, ‘(다스릴) 권한을 주다’, 즉 ‘통치 권한을 위임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 어휘는 본래가 ‘명령’, ‘명령하다’라는 뜻(라틴어 mandatum)에서 온 말이어서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어감을 갖고 있다.
반면에 trusteeship은 ‘신탁’(信託)이라는 뜻, 즉 ‘믿고 맡긴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식민국가의 경영을 국제기구에 신탁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보다 긍정적인 어감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위탁이건 신탁이건 결국 나라의 운영을 타국에 맡긴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영국의 간계와 배신
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1916년 5월에 러시아의 묵인 아래 사익스-피코 협약(Sykes-Picot Agreement)을 맺고 패전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들의 통치권을 비밀리에 배분했다.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익스(Mark Sykes)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François Georges-Picot)가 연필과 자로 그은 안이었다.(지도 참조) 이 밀약에 따라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이라크와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이 위임 통치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독립을 이룬 다른 나라들과 달리 팔레스타인 지역은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은 1917년 12월부터 팔레스타인에 들어갔는데, 국제연맹이 설립된 1920년부터 1948년까지 이 땅의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그런데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 내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율배반적인 전략 외교전을 전개했다. 1915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분열을 꾀하기 위해 제국 영토 내의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후세인-맥마흔 서한), 1917년에는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실상 유대인을 위한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다. 시온주의자 유대인들에게는 국가 건설의 꿈을 행동에 옮기게 하면서 아랍인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배신 행위를 한 것인데, 이는 두 나라로 하여금 하나의 땅을 놓고 서로 차지하도록 하는 ‘보복의 프레임’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한국은 분단을, 팔레스타인은 전쟁을
팔레스타인도 대한민국도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지 못한 죄과를 뒤집어쓴 것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승전국이 되지 못하고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상태가 위임 통치 혹은 신탁 통치의 빌미가 되었는데, 이는 두 나라 모두 지정학적 요충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신탁 통치보다는 차라리 분단을 택했고, 그들은 전쟁을 택했을 뿐이다. 병합기간이 400여 년에 이르고 종교도 같은 이슬람이었던 팔레스타인과 달리, 우리는 식민지 경험 기간이 짧아 그 기억이 생생하고 그로 인해 독립의 꿈을 신탁 통치라는 또 다른 이름의 식민 통치와 바꾸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중계약의 덫에 걸려 하나의 땅 위에서 끝없는 전쟁의 구렁텅이에 들어가고 말았다.
오늘도 뉴스를 보면 양측은 서로에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들어보면 양측의 말이 모두 맞는 상황이 이어지고 해결에 대한 그 어떤 답도 없다. 강경책은 더욱 센 강경책을 부르기 때문에 선(善)은 사라지고 악(惡)만 남게 되었다. 이런 경우에 유일한 해결책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과오도 잊어 버리고 오직 최초의 평화로웠던 공존의 시기로 되돌아가려는 마음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 국제 사회는 윤리적인 역량과 정치적인 역량을 동시에 시험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의 싸움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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