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는 되는데 ‘마약 김밥’은 왜 안돼?

‘은유적 표현’의 상반된 두가지 예 ‘악마’는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 남아 ‘마약’은 긍정적 이미지화하는 중 악마는 멀고, 마약은 가깝기 때문? 법까지 바꿔서 막을 일일까?

마약김밥 표현의 원조격인 서울 광장시장의 한 김밥집.
마약김밥 표현의 원조격인 서울 광장시장의 한 김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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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은유적 표현’

이제 ‘마약 김밥’이나 ‘마약 떡볶이’ 같은 이름을 더 이상 못 보게 될지 모르겠다. 지난해 12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학교 주변에서 판매하는 식품의 이름에 ‘마약’이라는 표현을 금지하는 조례가 최근 인천과 대전 등 몇몇 지자체에서 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청소년 마약 범죄가 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많이 먹는 식품들에 ‘마약’이라는 표현이 명칭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경각심이 해이해지고 심지어 마약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만들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여기서 ‘마약’이란 실제 마약이 아니라 ‘김밥’, ‘국수’, ‘떡볶이’, ‘호떡’, ‘치킨’ 등의 음식을 가리키는 명사에 붙어, 중독될 정도로 맛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은유’(metaphor)적 표현이다.

은유란 어떤 대상을, 이와 유사한 성질이나 특징을 지닌 다른 대상으로 가리키는 표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간은 돈이다’라는 은유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이고 비감각적인 것을 ‘돈’이라는 친숙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이해를 보다 쉽게 해 주고 있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시간’과 같이 은유 표현이 나타내려고 하는 의미를 ‘목표 영역’(target domain)이라 하고, ‘돈’처럼 이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보다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를 ‘근원영역’(source domain)이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돈’처럼 ‘소중’한 것이기도 하고 ‘시간’을 ‘돈’처럼 ‘낭비할’ 수도 있고 ‘절약할’ 수도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은유는 한 영역의 논리를 다른 한 영역에 사상(mapping), 즉 체계적으로 대응시키는 인지작용이라 하겠다.

버려지지 않는 이미지

그런데 이때 근원영역의 모든 세부 사항들이 목표영역에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돈’은 ‘쌓아놓을’ 수도 있고 ‘예치’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선풍기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부분을 우리는 ‘날개’라고 부르는데, 오직 바람을 일으킨다는 단 한 가지의 유사점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부분들, 즉 선풍기의 날개는 새의 날개와 전혀 모양이 비슷하지도 않고 또 새처럼 선풍기를 날아오르도록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련된 의미만을 남기고 목표와 상관없는 나머지 요소는 인식 내용에서 버리는 것이 은유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만일 근원영역 중에서 목표영역에 대응되지 않는 내용들인데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문제를 야기한다. 예컨대 버려야 하는 사항들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경우,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언중들이 있어 갈등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의 명칭인 ‘붉은 악마’가 그러한데, 이는 본래 근원영역인 ‘악마’가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졌고, 그래서 결코 지지 않는다는, 또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들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관계없는 나머지 의미들, 즉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파멸에 이끄는 악한 기운이라는 의미는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도 신경이 쓰여서 버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명칭이 나온 직후 기독교의 일부 보수적인 단체들은 이 명칭에 반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가 더욱 오래된 유럽에서도 ‘붉은 악마’(Red Devils, Diable rouge)라는 명칭이 벨기에 국가대표 축구팀과 영국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별명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악마의 부정성이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었다. 한때의 분란을 뒤로하고 이제 붉은 악마는 완전한 정착단계에 들어서 있다.

‘마약’은 왜 긍정적 은유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마약 김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인지주의 은유 이론에 따르면,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만 남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는 마약의 부정적 의미는 버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약’의 경우에는 이것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왜냐하면 ‘악마’와 달리 버려지지 않고 오히려 그 유해성이 긍정성으로 탈바꿈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라는 표현은 아무리 사용해도 ‘악마’를 미화하지 않지만, ‘마약 김밥’은 자꾸 사용하게 되면 ‘마약’을 긍정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역할을 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응원단이 아무리 많은 선한 활동을 해도 ‘악마’가 긍정화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선 아마도 악마가 추상적인 존재이고 비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 없는 존재이니 악마가 선행을 베푸는 존재로 미화될 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약’은 현실적 존재자이고, 최근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는 엄청난 쾌감은 그 파괴적 중독성을 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이니 그 이미지의 긍정화는 당연하다 하겠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이유는 근원영역과 목표영역 간에 있는 인식상의 거리 차이이다.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축구 응원단과 추상적 존재인 악마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거리가 너무 멀고, 세계 내에서 결코 양립가능하지 않다. 반면에 마약은 김밥과 마찬가지로 모두 먹는 것이어서 인식상의 거리가 너무나 가깝다. 그러므로 맛있는 김밥의 섭취가 쾌감을 주는 마약의 불법성과 유해성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마약을 친근한 대상으로 여기게 할 가능성이 이렇게 탄생한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 명칭인 '붉은 악마'에서 '악마'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지지않는 강력한 힘'이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사진= 연합뉴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 명칭인 ‘붉은 악마’에서 ‘악마’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지지않는 강력한 힘’이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사진= 연합뉴스

법까지 바꿔서 막을 일일까?

물론 ‘마약’이라는 단어 하나가 들어간다고 얼마나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고 호들갑을 떠는가 하고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속적으로 반복 노출이 되면 누구나 그 대상에 익숙해져서 그에 대한 반감이 감소하고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것이 많은 심리학 실험으로 입증되어 있다. 소위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이다.

게다가 문제는 이것이 청소년에게는 더욱 위험하다는 점이다. 특히 사고력과 감정 및 문제 해결 등 계획과 정보의 조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완결되지 않은 시기이고 자기 통제 능력이 아직 부족한 시기이므로 성인에 비해 마약의 유혹에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더구나 요즘은 마약이 청소년들에게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어 그 위험도는 더욱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돈을 벌기 위해 청소년 음식에 마약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천박해졌을까? 우울한 생각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것을 꼭 법으로 해야 할까? 사회 운동, 계도 등으로 하면 안 될까?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자정능력을 상실했나?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 ‘마약’이라는 단어를 없앤다고 과연 마약 사범이 줄까 하는 정책 효과에 대한 의문 등은 모두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또 다른 문제들이다.

그나저나 이번 조례들의 단속 대상은 ‘마약’이 아니라 마약이라는 ‘단어’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말이 제일 무섭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인가 보다.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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