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와 국가의 참된 의미에 대해

[언어학자가 본 ‘서울의 봄’] 어원상 쿠데타는 ‘국가 반란’ 또는 전복 군사반란· 권력이동이라는 표현은 잘못 보수의 관람 방해, ‘국가’ 지키기에 반대하나 권력 독점 경계한 ‘republic’도 이해해야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쿠데타의 의미

‘서울의 봄’이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첫 영화다.

쿠데타(coup d’état)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프랑스어에서 coup(쿠)는 ‘일격, 타격’, de(드, d’로 축약)는 ‘~의’, état(에타)는 ‘국가’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국가의 일격’이라는 뜻이다.

이때의 état(국가)는 절대왕정을 연 프랑스 루이 14세의 상징적인 선언으로 알려진(확인되지는 않지만) “짐이 곧 국가다”라는 뜻의 “L’État, c’est moi.”의 état(에타)이다. 이 état는 영어에 들어가서 state(스테이트)가 되었는데,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독립적 정치 주체인 주(洲)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그리고 coup(쿠)는 두 물체가 서로 충돌하는 움직임을 말하는데, 이는 ‘주먹질’(로 인한 타격)을 뜻하는 라틴어 colaphus에서 왔다.

자동차 애호가라면 잘 아는 ‘쿠페’(coupé)라는 자동차의 종류도 이와 어원이 같다. 이는 (충격을 가하여) ‘자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couper의 과거 분사 coupé(잘린)에서 온 명사이다. 표준보다 짧게 만든 (보통 뒷좌석이 없는) 자동차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 state는 ‘국가’라는 뜻 외에 ‘상태’를 뜻하는 말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상태’라는 뜻에서 ‘국가’라는 뜻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state(스테이트)는 철자의 변이형인 estate(이스테이트)와 동일한 단어인데, 이것이 어떻게 하여 ‘재산’과 ‘땅’을 뜻하게 되었고, real과 결합한 real estate가 어떻게 하여 ‘부동산’을 뜻하게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은 ‘서다’(stand)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stare(스타레)의 과거분사인 status(스타투스)에서 출발한다. 이는 명사가 되어 다양한 뜻을 갖게 되었다.

우선은 ‘(서 있는) 위치’라는 뜻과 이로부터 ‘배치’라는 뜻을 파생하게 되었는데, 이는 영어에 들어가 station(정거장, 역)이라는 단어를 형성하였다. ‘정거장’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배치’하거나 파견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찰서를 영어로 police station이라 하고, 투표소를 polling station이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다음으로 status는 ‘(서 있는) 방식’, 즉 ‘자세’를 뜻하는데, 이는 (사람이나 사물의) ‘상태’ 혹은 ‘환경, 조건’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어 영어의 state의 기원이 된다.

셋째로 status는 (서 있는) 위치라는 첫 번째 뜻으로부터 (사람의) 사회적 위치, 즉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것이 영어에 그대로 들어가 status(스테이터스)가 되었다.

넷째로 status는 또한 ‘위치’라는 뜻으로부터 ‘장소’나 ‘땅’이 되었다. 그런데 땅은 매우 중요한 재산이므로 이로부터 ‘재산’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이는 영어로 들어가 estate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현대 미국영어에서는 부동산을 real estate라고 하는데, 이는 자연적으로 있는 재산, 즉 움직일 수 없는 재산을 뜻한다. 반면에 움직일 수 있는 소유물인 ‘개인 용품’은 personal estate(동산)로 불러 구분하였다. 이로부터 realty(부동산), realtor(부동산 중개인) 등의 단어가 파생되었다.

공화국의 의미

한편 오늘날 ‘공화정’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republic(리퍼블릭)은 라틴어의 res publica(공적인 것, 공공성)라는 표현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로마시대 때 공화정을 만들면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으로 만들었다. 당시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권력의 사적 점유의 방지였다. 즉 권력의 공공성(res publica)을 추구하였고, 이를 위해 권력을 적절한 분할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각 세력이 온 힘을 기울였다.

귀족을 대표하는 원로원뿐 아니라 평민을 대표하는 민회를 두었고 집정관은 민회가 뽑되 원로원의 승인을 받도록 하며, 또 민회를 통해 법률을 제정하고, 원로원의 결의에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는 10명의 호민관을 두었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많은 가치를 공유하지만 차이도 보인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다수결원칙을 통해 개인들의 이해관계나 선호를 최대한으로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치중하는 반면, 공화주의는 다양한 타협의 장치와 권력의 분할 제도를 통한 ‘공공선’의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오늘날의 공화정에는 권력분립의 제도로 도입되어 있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해야 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국민들로 구성된 정치공동체 ‘국가’

로마시대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말한 이후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되었던 ‘status rei publicæ’(공공성의 조건)에서 status만이 남아서 ‘국가’를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란 바로 ‘공공성의 조건(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그의 저서 『군주론』(Il Principe, 1532년)에서 이 status를 ‘국가’의 의미로 썼는데 이 저서가 워낙 유명하고 영향력이 크다 보니 status가 ‘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국가’를 ‘공공성’ 즉 ‘국민들로 구성된 정치적 공동체’를 성립시키기 위한 ‘조건, 환경, 체제’로 개념화한 것이다. 이는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가가 ‘국민 전체를 정치 단체’(정치적 조직)로 간주한 것을 보여준다.

사실 권력의 공공성에 기초한 공화국 전통의 로마를 게르만족들이 멸망시키고 왕조 국가들을 세운 것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퇴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공화주의를 되살려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 이 라틴어 status(스타투스)는 프랑스어 estat, état(에타)를 거쳐 영어로 들어가 state(스테이트)가 되었는데, 163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를 states로 부르기 시작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직 독립도 하기 전인 이때부터 이미 스스로를 준독립적인 정치 단위로 부르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던 것이다. state는 결국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연방 공화국을 이루는 정치 단체가 되었다.

이상에서 보듯이, 현대 영어 state(스테이트)는 라틴어 status가 가지는 의미 중 ‘정거장, 역’의 의미를 가져간 station(스테이션)과 ‘지위’, ‘신분’의 뜻을 가져간 status(스테이터스)를 제외하고, ‘상태, 환경, 조건’의 의미와 ‘장소, 땅’의 의미, 그리고 ‘공공성의 조건(환경)’이 되는 ‘국가’를 갖게 되었다. 요컨대 ‘상태’에서 출발하여 물리적 환경인 ‘장소’와 정치적 환경인 ‘국가’로 의미가 확장되어 온 것이다.

사진=YTN 캡쳐
사진=YTN 캡쳐

보수는 ‘국가 전복’을 옹호하나

주로 땅에 기반한 개념인 country와 달리, 국민의 주권에 기반한 개념인 state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état에 대해 쿠데타(coup d’état)라는 말이 생긴 것은 의미심장하다. 쿠데타는 한 마디로 주권에 타격을 가하는, 주권을 정지하는 행위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쿠데타를 흔히 ‘군사반란’(군란), ‘정변’, ‘모반’ 등으로 번역하지만 이는 분명한 오역이라 할 수 있다. 쿠데타를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지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고 하는 사전적 정의는 턱없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쿠데타는 글자 그대로 ‘국가’(état, state)에 대한 반란이고 국민 주권의 정지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최근에 이 영화의 단체 관람을 놓고 벌어진 논쟁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일부 보수단체가 해당 학교를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학교 측은 <서울의 봄>뿐 아니라 다른 영화 중 하나를 골라서 볼 수 있게 했다고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단체는 학교장까지 고발하였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 영화가 “학생을 선동해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준다며 단체 관람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2·12는 이미 법원의 판결에 의해 쿠데타로 규정되었고, 지난 17일 이원석 검찰총장도 대검찰청 간부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하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희생과 노력으로 어렵게 이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쿠데타’(coup d’état)라는 말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국가’(state)의 전복이고 국민(people)에 대한 테러이다. 그러므로 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행위이다. ‘국가’를 지키는 데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지 않은가!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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