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서울의 봄’을 꿈꾸는가
[1979년 12월12일 밤을 기억하며] 44년 만에 다시 떠올리는 12· 12 그날 “1980년 서울의 봄은, 진짜 봄이었다” 지금, 군부 대신에 발호하는 세력들이 민주 질서를 심히 교란하고 있는데
구속됐던 선배들이 풀려나고
1979년 12월 12일 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난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갑작스레 죽음으로써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있던 선배와 친구들이 하나둘 석방되면서 우리는 그날 한 자리에 모여 일종의 출소기념식을 하던 참이었다.
독재자의 죽음으로 유신체제에 금이 가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기 위해 친구들 여럿이 함께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려고 했으나, 총검을 든 병사들이 다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군인들은 되돌아가라고만 할 뿐이었다. 우리 일행은 부득이 여의도에 있는 누군가의 친척집에 신세를 져야 했다. 모든 한강의 다리들을 건널 수 없다는 사실 외에 우리는 아무런 관련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모든 것이 드러났다. 12·12 군사쿠데타!
44년 전의 그날에 있었던 쿠데타의 자세한 내막을 나는 4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생생하게 인지하게 된다. 물론 그전에 여러 매체를 통해 12·12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대충은 알고 있었으나, 영화를 통해 다시 새삼 확인한 것이다. 영화의 앞머리에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하되 디테일한 장면에서는 상상을 가미했다고 밝히고 있다. 디테일의 측면에서야 실제와는 다른 사실들이 있겠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윤색은 허용될 법하다.

진짜 ‘서울의 봄’은 이랬다
불안과 우려로 지새웠던 44년 전 그날 밤의 갑갑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내가 이 영화를 아니 보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영화를 관람한 날도 우연히 12.12였다. 감회가 색달랐을까. 시종일관 영화 속으로 몰입하였다. 영화 속의 시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2월 14일까지로, 그 사이에 일어난 한국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한 지점을, 이 영화는 군대 내부의 갈등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12월 12일과 그 다음날까지 9시간 여 동안에 일어난 군사반란 과정에 영화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특히 대립하는 두 주인공의 갈등을 중심으로 상황을 박진감 있게 전개하고 있어 충분히 흥미를 끌 만했다.
영화는 12·12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 제목을 ‘서울의 봄’이라 붙였다. 한겨울을 배경으로 하면서 봄이라니... 한국현대사에서 흔히 ‘서울의 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부터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직전까지의 정치적 격변을 통칭한다.
그러나 나에겐 적어도 1980년 3~5월까지의 두 달 남짓의 기간 동안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가를 휩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가리킨다(일부 언론에서는 그 명칭이 1968년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빗댄 것이라고도 하나, 두 사건은 상당히 다르다). 쿠데타에 성공한 신군부가 권력을 하나하나 장악해가고 있는데도, 정보가 부족하고 철없이 젊었던 나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로 마냥 들떠 있었다. 정녕 ‘서울의 봄’은 계절적으로만 봄이 아니라 내겐 심정적으로도 봄이었다.
그렇다면 제목을 <12.12>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서울의 봄’이란 용어 속에 담긴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 대신에, 영화에서는 전두광을 비롯한 특정 군부세력(하나회)의 권력욕만이 들끓고 있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서울의 봄’이기는커녕,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쿠데타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고만 ‘서울의 겨울’이자 ‘그들만의 봄‘이 아니던가.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영화에서는 부제를 <12.12: The Day>라고 해놓았다. 그러니까 ’서울의 봄‘은 어쩌면 역설적인 제목인 셈이다.
장태완의 泰와 이순신의 臣=이태신
곧 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무협지적 구성에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의 주된 갈등은 전두광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육사 출신이 주축인 하나회)과 이태신을 중심으로 한 군부 내 온건세력(갑종 출신 등 비육사계 군부세력) 간에 선악 대결구도로 잡고 있다. 마치 무협계의 사파와 정파처럼. 무협지의 세계는 대체로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나,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는 사파(악)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사실 사파는 너무 강했다. 정보 독점과 통신 감청이라는 비장의 무기와 하나회라는 조직과 인맥을 가진 사파는 법률적 절차적 정당성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지만, 철저한 준비와 강력한 욕구로 난관을 돌파해간다.
그런 가운데 정파를 대표하는 한 고수가 막판에 벌이는 일대활극이 이 영화의 중요 관전 포인트. 그와 함께 하던 정파의 무사 두 명(김준엽 헌병감과 공수혁 특전사령관)이 쓰러지자 악의 무리에 맞서 혈혈단신 외로이 싸우는 고독하고도 처절한 패배를, 사파의 우두머리 전두광과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비장’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엔딩곡으로 흐르는 군가 <전선을 간다>는 그 비장미를 더해줄 따름.
게다가 이태신이란 작중 이름은 실제 인물 장태완 소장과 역사 인물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교묘하게 조합한 것이 아닌가(맙소사! 한자 명패에도 李‘泰’臣으로 나온다. 또 영화 끝부분에 세종로로 진격하는 장면에서 이 용감한 정파의 고수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마주한다). 이태신을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불퇴전의 용기를 지닌 진정한 군인정신의 모범으로 그려냄으로써, 감독은 그에게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자 한 것이다. 더구나 그 배역을 한국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 정우성에게 맡긴 것은 이태신 영웅 만들기의 절정이라 하겠다.

사족들:
① 통신 감청, 이게 반란군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담당했던 보안사 비서실장 문일평 대령의 표정을 보라. 영화에서도 이 점을 잘 포착한 것 같다. 난 치가 떨렸다. 그는 실제 인물 허화평에 해당하는 자인데, 난 지금껏 생존해 있는 반란의 무리 가운데 한 명만 끝까지 추궁하라면 그를 선택하련다. 영화에선 그다지 비중 있게 나오지 않는 편이지만, 나는 쿠데타의 실질적인 세부 기획설계자로 그를 지목하고 싶다.
② 하나회의 조직망이 또 하나의 반란 성공 요인이라면, 그 수괴 전두광 이전에 군대 내 사조직을 오히려 묵인하고 지원했던 자, 바로 박정희에게 그 원죄를 물어야 할 터. 어떤 면에서 12.12와 이어지는 5.18을 통해 박정희의 망령이 전두환의 집권으로 군사독재를 되살려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10.26 이후 합수부장을 겸하여 손쉽게 권력의 정점에 이르게 만든 보안사령관직, 운좋게도 그 자리에 전두환을 앉힌(1979년 3월) 것도 박정희였다.
③ 12.12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개입 문제는 줄곧 논란이 있어 왔으나, 영화 속에서 미국은 두 장면에서만 슬쩍 비친다. 사건 전 ‘전두광을 조심하라’는 전문과, 총격전 이후 한미연합사로 도망친 국방장관 오국상의 등장. 영화에서는 미국의 개입에 대해 일단 절제하며 피해가는 방식을 취한 듯하다, 그러나 반란군이 한국군대를 자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내버려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마냥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1946년 미군 대위로 이 땅에 건너와 한국 정부와 군부를 주물렀던 CIA 정보장교 제임스 하우스만이 1981년 미국으로 돌아간 후 남긴 증언들에 붙는 미묘한 물음표들을 고려할 때, 그가 이 ‘서울의 봄’ 동안과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어떻게 간여했는지를,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한국현대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더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④ 실제 역사에서 12.12반란이 성공하고 ‘서울의 봄’이 좌절된 데는, 박정희의 철권통치에 길들여진 당시 관료들의 무능과 안일함에도 통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박정희 사후 긴급조치를 해제하는 등 위기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신군부의 반란을 막지 못했고 무능함과 기회주의적 태도로 일관하여 민주화의 열망을 좌절시킨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에서도 한미연합사로 도망쳐 눈치만 보던 국방장관이나, 질서 유지의 책임자인 계엄사령관(참모총장)이 부재한 위기를 우왕좌왕하며 더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은 육참차장의 모습은 그 전형적인 행태라 할 수 있다. 또 오랜 관료 출신인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의 태도 역시 역사의 단죄를 피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리라.
영화를 다 보고나서 내 가슴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 맘껏 영화를 누리던 반란의 범죄자들을 단죄하긴 했으나 다시 사면해줌으로써 국민통합은커녕 정의 바로 세우기에도 실패한 정치권의 선택에 아쉬움이 크고, 훗날 하나회 척결로 군부의 발호는 진정됐다고는 하나 군부를 대신한 듯 새로이 권력의 핵심을 틀어쥔 오늘의 또 다른 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민주질서의 교란 또한 심히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영화는 또 다시 우리들에게 ‘서울의 봄’을 꿈꾸자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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