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문학평론가
김윤태는 한때 문학평론가로 잠시 활동하면서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한 연구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어쩌다 그냥 잡문이나 끄적이는 낭인(?)이라 스스로 평한다.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저서도 오래 전에 출판한 <한국 현대시와 리얼리티>(2001) 등이 있다.
김윤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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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10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단 한 명의 가수를 꼽으라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는 조용필이 차지할 것이다. 그는 특히 198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었는데, 당시 거의 모든 가수·가요상을 휩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기야 1987년부터는 TV 프로그램에서 주는 그같은 가요 관련 상들의 수상을 스스로 거부했다고 한다. 이젠 방송이나 언론에 거의 비치지 않는 그에게 아직도 대중들은 ‘가왕’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그를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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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5월의 두 표정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는 데는 아마도 5월의 기후가 1년 중에 가장 좋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온도가 영상 18~20℃라는데, 서울 기준으로 5월의 평균기온이 대체로 17~19℃쯤 되니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5월은 4월에 이어 역시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화려한 자태를 더욱 뽐내고, 신록의 계절이라 부를 만큼 주변의 자연환경이 온통 초록으로 변해간다. 5월은 사람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들이 살아가기에도 아주 적합한 철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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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4월의 노래들 - 특히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어느새 4월이 다 갔다. 올해는 4월 하순에 이르러 평균기온이 25℃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이미 초여름인 양 더운 날씨다.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일컫는, 봄의 절정기라 할 5월도 채 되기 전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저절로 입가를 맴돌 지경이다. 이제 4월의 마지막을 앞두고 우리 역사 속에서 4월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자. 우선 4월 하면 여러분은 어떤 시가 생각나는가? 젊은 시절 시를 공부했던 나는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 4월이 가장 잔인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에 대한 해석은 아주 다양하겠지만 그런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잠시 우리의 4월 그 주변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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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봄날의 우국수심(憂國愁心)...우린 무얼 바랄까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春分, 3월 20일)이 지났다. 흔히 봄의 시작을 입춘(立春)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으나, 그 시기가 2월 3~4일경이라 아직 날이 차기 때문에 입춘이라 해도 여전히 겨울이라고 느끼는 게 일반적인 실감일 것이다. 겨울 속에서 봄의 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입춘이라 한 것이지, 실제로 봄이 온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춘분 즈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날씨가 따뜻해지고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평균기온을 감안할 때 체감상 명실상부한 봄날의 시작은 서울지역으로 한정해 놓고 보자면 요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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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명절 풍속 재현의 묘미 - 백석의 「여우난곬족」
1988년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이다. 이 해에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인 정한모 시인에 의해 월·재북 문인들의 작품이 약 40년 만에 해금되어 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월·재북 문인들은 한국문학사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이름조차 함부로 불릴 수 없었고, 부득이 표기해야 할 경우에는 정○용, 이○준, 박○원, 김○림, 임○, 이○영, 한○야 등과 같이 이름자 하나를 지운 채 출판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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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이육사는 왜 겨울 무지개를 ‘칼’이라 했을까
며칠 전(1월 20일) 절기로 대한(大寒)이었다. 올해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비가 내릴 정도로 영상의 포근한 날씨였지만 곧이어 맹추위가 몰려왔다. 대한은 1년 중 가장 춥다고 알려진 날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회자될 만큼 덜 추운 경우도 더러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선 두 날이 한겨울의 맹추위를 상징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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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또다시 ‘서울의 봄’을 꿈꾸는가
1979년 12월 12일 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난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갑작스레 죽음으로써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있던 선배와 친구들이 하나둘 석방되면서 우리는 그날 한 자리에 모여 일종의 출소기념식을 하던 참이었다. 독재자의 죽음으로 유신체제에 금이 가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기 위해 친구들 여럿이 함께 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려고 했으나, 총검을 든 병사들이 다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