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노래들 - 특히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김윤태의 한국시 산책] 역사적 사건이 점철된 4월 4.3사건, 4.19혁명, 그리고 세월호참사 ‘껍데기는 가라’, 이항대립의 선명성이란! 송경동의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이윤의 극대화’하는 한국 자체가 세월호

제주4·3 창작 오페라 '순이 삼촌'의 한 장면.
제주4·3 창작 오페라 '순이 삼촌'의 한 장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어느새 4월이 다 갔다. 올해는 4월 하순에 이르러 평균기온이 25℃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이미 초여름인 양 더운 날씨다.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일컫는, 봄의 절정기라 할 5월도 채 되기 전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저절로 입가를 맴돌 지경이다.

이제 4월의 마지막을 앞두고 우리 역사 속에서 4월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자. 우선 4월 하면 여러분은 어떤 시가 생각나는가? 젊은 시절 시를 공부했던 나는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 4월이 가장 잔인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에 대한 해석은 아주 다양하겠지만 그런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잠시 우리의 4월 그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의 현대사만 슬쩍 들여다봐도,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여겨도 될 만큼 충격적인 일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4월 3일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섬”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주도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제주 4.3사건),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에 항거해 일어난 민주주의 시민혁명(4.19 혁명),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4.16 세월호 참사)... 어느 하나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4.3사건의 작품들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4.19에 대해서는 ‘학생의거’로만 배웠다(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의거로 그 의의가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땅의 깨어 있는 정신들은 그 사건들의 의미를 잊지 않고 후세대에게 일러주었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학적 주인공은 소설가 현기영이다. 그는 스스로 “제주 4.3의 영령을 진혼하는 무당”이라고 했듯이 이 사건에만 전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표작 『순이삼촌』(1978)이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 3권의 장편으로 출간된 『제주도우다』(2023)는 4.3사건을 다룬 결정판이라 평가된다. 2015년 전 12권으로 번역·출간된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1965~1997년 집필)도 유명하다. 한편 시 쪽의 성과로는 이산하의 서사시 『한라산』(1987)이 단연 주목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시인은 구속되어 참혹한 고통을 겪었으며,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03년 시집으로 재탄생하였다.

껍데기는 가라

4.19에 대해서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어느 정도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도 제법 접할 수 있었다. 적잖은 문인들이 4.19를 노래했지만, 혁명에 가장 열광하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망을 오롯이 자신의 문학세계에 엮어 넣은 시인을 단 한 명만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신동엽을 선택할 것이다.

신동엽 시집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집 ‘껍데기는 가라’

4.19 당시 그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4.19혁명을 노래한 학생과 시민, 그리고 문인들의 작품을 모은 『학생혁명시집』(1960)을 직접 편집·발간하였는데, 이 점만 봐도 그가 4.19혁명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품었던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시집의 제3부에는 박두진 박목월 신동문 조지훈 등 유명한 현역 시인 28명의 작품이 각 한 편씩 실렸는데, 당시 신인에 불과했던 신동엽 자신도 시 「아사녀」를 실었다. 서사시 「금강」(1967)에서도 1960년 4월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운동의 연속선상에 4.19혁명을 자리매김함으로써, 그러한 흐름을 민족사의 정통성으로 파악하려는 시인의 역사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출한 시가 너무나도 유명한 「껍데기는 가라」(1964)이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아주 빈번하게 실려 있는 데다가 워낙 강렬한 선언으로 각인될 터라 별도의 설명을 덧보태지 않아도 대개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사월이 곧 4.19혁명을 지칭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총 4연 17행의 짧은 시구 속에 압축된 의미의 풍성함과, 껍데기-알맹이 혹은 쇠붙이-흙가슴과 같은 이항대립의 선명성 등에 대해서도 새삼 재론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그리고 마지막! 딱 10년 전에 일어난 잊을 수 없는 대참사. 이 사건에 대해서도 구구한 설명을 더하고 싶지 않다. 사건 당시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였던 내가 받은 충격은 이전에 발생했던 여타의 큰 사건들 이상의 것이었다. 그 충격이 나만의 것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무렵 나는 강은교 등 69인의 시인들의 시를 모아 펴낸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2014)의 발문을 썼다. 거기서 나는 전후 일본의 ‘무책임의 참회’라는 개념과, 재난 관리를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재난자본주의’라는 개념 등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과 그것을 추모하는 시작품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무슨 말이 더 소용 있겠는가. 이 시집의 표제와 동일한 송경동의 시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한 편이 그 모든 걸 담아내고 있음을...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그렇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노동자세월호에 태워진 이들이 900만명이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이런 자본의 재해 속에서

오늘도 하루 일곱 명씩이 산재라는 이름으로

착실히 침몰하고 있다

생계비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알아서 좌초해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하선실에 가두어진

이 참혹한 세월의 너른 갑판 위에서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이었다.

그들의 안전만을 위한 구조변경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되었다

무한한 자본의 안전을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법제화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안전의 업무가

평화의 업무가 평등의 업무가 외주화되었다

경영상의 위기 시 선장인 자본가들의 탈출은 언제나 합법이었고

함께 살자는 모든 노동자들의 구조신호는 외면당했고

불법으로 매도되고 탄압당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은 언제나 자유로운 합법이었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되었다

그런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세월호의

선장으로 기관장으로 갑판원으로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평형수로 에어포켓으로

다이빙벨로 긴급히 나서야 한다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사건이 나고 그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이 급기야는 탄핵·파면·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그후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정치세력이 집권하였으나 그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여전히 미해결의 숙제로 남겨진, 어떤 면에서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러우면서도 비통한 사건, 그 10주년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사건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 둘 것이다.

그러던 올 4월 어느 날, 집으로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세월 1994-2014(문은아 글, 박건웅 그림, 2024)라는 그림책이다. 세월호라는 배가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침몰한 때까지의 20년 동안의 사연을 글과 그림으로 엮어 “4.16세월호 참사 10주년”을 추모하고자 한 것이다. 책 후반부의 그림 한 컷. 제주도일까, 진도일까,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바닷가에서 한 소녀가 달려가고 있는 풍경, 그 앞 바다에는 세월호가 떠 있고, 우리는 그저 그 노란색의 리본으로 추모할 따름... 이렇게 또 봄날은 간다!

글쓴이

김윤태 문학평론가

김윤태는 한때 문학평론가로 잠시 활동하면서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한 연구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어쩌다 그냥 잡문이나 끄적이는 낭인(?)이라 스스로 평한다.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저서도 오래 전에 출판한 <한국 현대시와 리얼리티>(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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