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속 재현의 묘미 - 백석의 「여우난곬족」
[김윤태의 한국시 산책] 토속성 짙은 백석 시의 ‘백미’ 고향 평안도 정주 사투리로 명절 풍경을 근데, 왜 추석 아닌 설날이라 추측할까?
1988년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이다. 이 해에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인 정한모 시인에 의해 월·재북 문인들의 작품이 약 40년 만에 해금되어 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월·재북 문인들은 한국문학사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이름조차 함부로 불릴 수 없었고, 부득이 표기해야 할 경우에는 정○용, 이○준, 박○원, 김○림, 임○, 이○영, 한○야 등과 같이 이름자 하나를 지운 채 출판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의 작품이 해금되고 독자들에게 두루 읽히기 시작하면서 앙상하고 빈약했던 한국의 현대문학은 훨씬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그들 대다수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빼어난 작품들을 남긴 문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린 문인은 단연 ‘시인 백석’이라 할 만하다.
잘생긴 외모와 애절한 듯한 연애사, 불운한 사회정치적 생애 등 문학외적인 요소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기도 하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필자도 역시 그의 시들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제 소개할 「여우난곬족」(『조광』1권 2호, 1935.12)은 그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명절날나는 엄매아배따라 우리집개는 나를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있는 큰집으로가면
얼굴에별자국이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걸이는 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 벌하나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많은 新里고무 고무의딸李女 작은李女
열여섯에四十이넘은홀아비의 후처가된 포족족하니 성이잘나는 살빛이매감탕같은 입술과 젓꼭지는더깜안 예수쟁이마을가까이사는 土山고무 고무의딸承女 아들承동이
六十里라고해서 파랗게뵈이는山을넘어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된 코끝이빩안 언제나힌옷이정하든 말끝에설게 눈물을짤때가많은 큰곬고무 고무의딸洪女 아들洪동이작은洪동이
배나무접을잘하는 주정을하면 토방돌을뽑는 오리치를잘놓는 먼섬에반디젓담ㄱ(주)으러가기를좋아하는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그득히들 할머니할아버지가있는 안간에들뫃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내음새가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차떡의내음새도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잔디와고사리와 도야지비게는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놓은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하고 숨굴막질을하고 꼬리잡이를하고 가마타고시집가는노름 말타고장가가는노름을하고 이렇게 밤이어둡도록 북적하니논다
밤이깊어가는집안엔 엄매는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웋간한방을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화디의사기방등에 심지를멫번이나독구고 홍게닭이멫번이나울어서 조름이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그림자가치는아츰 시누이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끄리는 맛있는내음새가 올라오도록잔다
(백석 시집 《사슴》, 1936)
(주)원문에는 받침이 ㅁㄱ으로 되어 있다. 현대국어에서는 그런 받침이 없어 부득이 저리 표기했다.
백석 시 「여우난곬족」 살펴보면
이 작품은 명절날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쉬운 편에 속하는 시라 하겠다. 특별한 시적 장치도 없고, 백석의 고향인 평안도 정주 지역의 사투리가 더러 섞여 있을 뿐 그리 어려운 어휘도 없다. (여우난골은 정주에 있는 제석산에 여우가 많이 살아 생긴 지명이라 함.-편집자주) 다만 띄어쓰기가 현대한국어 문법에 맞지 않아 다소 읽기에 불편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눈여겨보면 하나의 호흡단위에 맞춰 시인이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인용한 시도 현대문법에 맞게 쓰지 않고, 최대한 그의 시집에 실린 그대로 표기해 두었다. 위 시의 띄어쓰기에 맞춰 한번 낭송해 보시라. 산문시처럼 한 행이 긴데도 리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가.
지난 2월 10일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설날(음력 1월 1일)이었다. 위 시도 어쩐지 설날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의 내용만으로는 그 ‘명절날’이 설날인지 아닌지 사실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먼 곳으로 시집간 딸들의 가족까지 큰집에 다 모여드는 걸로 봐선 적어도 큰 명절, 즉 설날 아니면 추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언급된 명절 음식이나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유추해 보려고 해도 설인지 추석인지 특정하기란 쉽지 않고, 계절과 관련된 시어를 찾아낼 만한 지점도 딱히 없다. 명절과 관련이 있을 법한 어휘로 ‘송기떡’이 주목되는데, 그것은 단오나 백중 때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단오나 백중은 가족이 다 모일 만큼 큰 명절이라 하기는 어려우니, 그때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편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을 겨울로 간주한 해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시를 제재로 해서 출간된 그림책 『여우난골족』(창비, 2007)이 바로 그것이다. 책의 표지에서부터 눈 내리는 풍경 가운데 명절날 모인 아이들이 큰집 앞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림책 속의 모든 페이지에서 겨울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시인은 명절을 설날이라고 특정하지 않았는데, 그림책을 그린 화가 홍성찬(1929~2017)은 왜 설날로 특정했을까? 그림책의 끝부분에 있는 해설을 읽어봐도,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필자 혼자서 나름 추측해 볼 뿐이다.

이 시가 설날 직후임을 추측하는 이유
설날이나 추석 같은 우리의 전통 명절은 대개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음력 팔월 보름인 추석은 양력으론 대체로 9월 중순에서 10월 초순에 해당하므로, 그 시기는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익어가는 때라 추수를 앞둔 한창 농번기인 셈이다. 이처럼 일손이 바쁜 시기에 시집간 딸들이 시댁도 아닌 친정에 명절을 쇠러 간다는 것은 당시 풍습으로 보면 쉬이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1935년경의 한국 사회에서 농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⅔를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농번기인 추석 때의 먼 거리 이동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딸의 친정 나들이도 역시 요즘에 비해 매우 힘든 형편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농한기 때인 설날로 추정하는 게 이 시에서는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또 설날이라고 해도 바로 그날은 시댁에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므로, 이 시의 시점은 설날 다음날이거나 그 이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 ‘설’이란 말은 음력 정월 초하루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설날 당일부터 정월 ‘대보름날’인 음력 1월 15일까지를 통칭한다는 견해도 있다. 사소하지만 시 3연 2행의 끝부분에 나열된 명절 음식들을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라고 한 대목도 겨울이 연상될 만한 표현이라 하겠다.
백석 시의 특징을 말할 때 흔히 나오는 키워드는 “토속성, 향토성, 민속적, 공동체적, 고향, 세시풍속”등이다. 그러한 키워드들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으로 이 시 「여우난곬족」을 꼽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본다. 이 시에 나오는 낯선 언어들에 대해선 그 뜻을 일일이 풀이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 아쉽긴 하지만, 요새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유명한 시에 대한 해설이 꽤 많기에 자세한 것은 부득이 생략한다.
새로 생겨난 상업성 짙은 기념일들
설, 대보름, 삼짇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추석, 동지 등 우리의 전통 명절은 농경문화의 산물이다. 산업-정보문화 시대에 이른 오늘날, 3일 연휴의 국가지정 공휴일로 남은 설날과 추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명절들은 점차 잊혀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농업공동체의 풍속에 뿌리를 둔 전통 명절은 사회적 기반이 점차 상공업 위주로 변함에 따라 그 위상도 자연스레 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에 따라 새로운 명절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구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지난 2022년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일어나 충격을 안겨줬던 할로윈 축제일(10.31), 애초엔 기독교 기념일인 것을 일본과 한국에 들어와서는 청춘남녀가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변한 발렌타인데이(2.14) 따위가 이미 오래전부터 혹은 요즘 들어 점차 문화적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서양의 명절 족보에조차 없는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빼빼로데이 같은 상업적 기념일들이 생겨나 명절처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영국인지 일본인지 어느 제과회사에서 초콜릿 판매 증가를 위해 부활시킨 발렌타인타이를 모방하여 유래가 모호한 온갖 신명절(?)들이 유행이라 하니, 필자 같은 노년층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풍속)은 변해가는 것이고, 그것을 뉜들 막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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