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의 진짜 감사 대상은 ‘국회의원’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준비 소홀한 의원들, 툭하면 호통·막말·깐죽 국민이 국감장 의원·고위공직자들 감사해야

지난 10월 4일부터 진행된 제 21대 국회의 2022년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4일부터 진행된 제 21대 국회의 2022년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사진=연합뉴스

또 그렇게 끝나버린 국정감사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끝났다. 올해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막말과 고성은 여전했고 정책 감사는 실종됐다. 정책 감사가 실종된 자리에는 거대 양당의 정치적 대립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이 중요한 국감이 상투적인 연례행사가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마음이 무겁다.

국감장의 언어는 올해도 혼탁했도 답답했다. 의원들끼리의 고성과 막말이 오가고 서로의 목소리가 뒤엉키고 뒤섞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 난무한다. 이성이 날카롭게 충돌해야 하는 자리에 감정이 둔탁하게 교차한다.

독백과 훈시의 시간

그나마 발언의 순서대로 정상적인 진행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국회의원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질문’의 자리를 ‘독백’이 채운다. 국회의원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7분 혹은 5분의 질의 시간을 ‘훈시’의 시간으로 만들기 일쑤다.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대신 일장 훈계가 이어진다. 호통은 기본이고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국정을 감사하는 일에 당적이 무슨 관계인지 훈시의 내용에 당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야당은 호통만 치고 여당은 감싸기만 한다.

말하러 왔다가 보고만 가는 증인

그나마 훈계의 대상이 된 증인들은 그래도 온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증인으로 출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국감장의 ‘증인(eyewitness)’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말’하러 왔다가 ‘보기’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간의 준비가 허탈해진다.

증인들을 국감장에 출석시킨 이유는 ‘증언’을 하게 하기 위해서다. 국감의 현장을 보고 듣게 하려고 오게 한 게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인들은 그냥 그 자리를 병풍처럼 지키다가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국감장을 떠난다. 그 바쁜 사람들이 그 오랜 시간을 긴장 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이 모두 모여 옹기종기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그야말로 국정 공백이 우려될 뿐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감사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을 감사하는 일이다.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실로 막강한 권한이다. 그런 막강한 권한이 국회에 주어진 이유는 명확하다.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이 바로 국민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이다.

국감 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이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잘 수행되고 있는지 정부의 각 기관을 밀도 있게 감사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해결해야 할 정책적 문제들을 발굴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정책 수행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더 나은 정책을 고민하도록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바로 국감의 존재 이유다. 그러니 국감에 여야가 따로 있어서도 안 되고, 국감장이 여야의 정쟁 장소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감사의 주체가 정치적 입장을 갖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거대한 음모

이전투구 속에 소득없이 끝나가는 국감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국감 혐오증을 만들어 국민들이 국감을 보지 않도록 하고, 더 나아가 국감 무용론을 확산시켜 국감을 없애려는 국회의원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감은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업무다. 국감만 아니라면 국회의원들은 국민에게 자신의 실체를 이렇게 낱낱이 노출하지 않고도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국민의 입장에서 국감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국정을 감사하는 국회의원들과 증인으로 출석한 고위공직자들을 국민의 눈으로 직접 감사하는 기회인 것이다.

또 다른 감사 대상: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이처럼 국감을 통해 감사를 받는 것은 정부 기관만이 아니다. 정부를 감사하는 국회의원들과 증인으로 출석한 고위공직자 개인도 국민들로부터 사실상의 감사를 받는다.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이 과연 우리를 대표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국감만큼 잘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한편,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온 고위공직자들의 응답 내용과 응답 태도를 보며 그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을 무섭도록 잘 드러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국감장의 국민 감사 대상 1순위는 국회의원이다.

독백의 시간 때우기, 고성의 호통 개그, 막말의 깐죽 개그

이렇게 생각하니 국감장 이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백의 훈시, 고성의 호통, 막말과 깐죽이는 말투의 용도가 모두 사실은 준비 부족을 가리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노련한 전략임이 보였다. 국감장에서의 훈시, 고성, 막말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모두 개그로 보이기 시작했다. 독백의 시간 때우기, 고성의 호통 개그, 막말의 깐죽 개그. 웃기지도 않은 개그에 헛웃음이 나온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훨씬 더 전문성을 가진 증인과의 질의응답은 자칫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이때 가장 안전한 것은 준비한 원고를 일방적으로 읽어 버리는 독백의 훈시다. 훈시가 되어야 하는 건 자신이 감사의 주체임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안전하고 탁월한 선택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독백은 자칫 위원장으로부터 제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대충 질문을 만들면 된다. 엉뚱한 질문으로 증인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거나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상대의 답변 태도를 두고 버럭 화를 내며 호통과 훈계로 시간을 보내면 된다.

만약 상대가 이 정도로 걸려들지 않으면 다음은 막말의 함정을 파면 된다. 막말을 해서 증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다혈질의 상대 당 의원의 심기를 건드리면 된다. 상대 당 국회의원들도 동병상련이니 훌륭한 연기로 위기의 순간에 구원 투수가 되어 준다. 그렇게 막말과 호통이 난무하다 시간은 가 버린다. 싸움이 격해지면 정회가 선언될 테니 일단 위기는 모면할 수 있다.

정회가 되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채워야 할 시간이 길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몇 마디 호통이 오가다 보면 마이크가 꺼진다. 발언 시간이 끝난 것이다. 마이크가 꺼지면 그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 마치 뭔가를 많이 준비한 듯 옆에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뒤적거리며 시간이 없어 안타깝다는 듯이 횡설수설 쫓기듯 얼버무리면 무사히 1라운드가 끝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준비 소홀의 증거

국회의원의 국감 준비 상태는 결국 언어로 다 드러난다. 오래, 철저히 준비했다면 주어진 시간에 긴 훈시와 호통, 막말이 끼어들 여유가 없다. 국감장에서 주어지는 단 몇 분을 위해 수 개월 동안 국회의원 본인은 물론, 보좌직원 8명과 인턴 1명, 이렇게 총 10명이 매달려 한 준비인데 그 귀한 시간을 어떻게 훈시와 호통, 막말로 날려버리겠는가?

준비가 철저했다면 질문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그렇게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전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지 않은가? 자료는 바로 상대의 답지다. 그 답지를 바탕으로 총 10명의 고급 두뇌들이 질의응답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증인들의 입을 통해 정책의 문제점, 새로운 정책 방향의 필요성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그 아까운 시간을 독백, 호통, 막말로 채우겠는가?

결국 시간을 허비하는 모든 언행은 준비가 소홀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질문하는 능력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질문하는 능력은 고도의 능력이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그러니 답을 찾기 위해 적절한 질문은 필수다.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을 감사한다면 우리는 국회의원이 보이는 질문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를 대표하여 좋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한댜.

결국, 국민에게 국감의 더 중요한 감사 대상은 국정이 아니라 국회의원이었다. 국민에게 국감은 국회의원이 국정을 감사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이 그 국회의원을 감사하는 자리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더욱이 국감은 소위원회로 나뉘어 진행된다. 같은 감사 대상을 감사하는 만큼, 국회의원 간의 비교도 가능하다. 국회의원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감사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국회의원의 능력을 감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국정감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되어야 하고 수박 겉핥기가 되지 않도록 더 길게, 더 밀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국정감사 강화가 답이다.

글쓴이

신지영 언어탐험가(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신지영 교수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베이스캠프로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인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언어 탐험가다.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다. 저서로는 <인어의 높이뛰기>, <언어의 줄다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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