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빈 살만 왕세자, 남은 경협 기대감

중동 최고 산유부국 실력자의 방한 사우디 현대화에 한국 기업 기회 ‘활짝’ 우리 경제, 제2중동붐으로 돌파구 마련을

무함메드 빈 살람 사우디 왕세자와 이재용 삼성전자회장, 최태원 SK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오른쪽에서부터)가 환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함메드 빈 살람 사우디 왕세자와 이재용 삼성전자회장, 최태원 SK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오른쪽에서부터)가 환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함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한국 방문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재산이 2800조원에 달한다고 하는 부자로 중동 최대 산유국의 개혁을 이끌고 있는 젊은 왕세자의 방한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킨 관심은 자못 크다. 지금 세계경제는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위기 와중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간의 전쟁에 따른 소위 신냉전 현상으로 우울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곡물과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의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 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기업들과 가계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유부국 사우디의 왕세자가 한국에 던진 우호적 메시지들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으로 중동 특수(特需)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살만 왕세자 방한에 따른 기대감

살만 왕세자는 11월 15~16일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그 다음날 바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18~19일에는 태국 방콕에서 열린 APEC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당초 일정으로는 19일에 일본을 방문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무슨 일인지 태국 일정중 전격적으로 일본 방문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의 환대에 감사한다는 특별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초 지난 10월에는 살만 왕세자가 방한을 취소하고 발리와 방콕에 들른 후 바로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 그 일정이 전격적으로 바뀐 것이다. 일련의 파격적인 행보 속에서 그가 한국에 와 기업인들을 면담하고 한-사우디 경협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우리에게는 일단 반가운 일이다. 한국측에서는 11월 4~9일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업인들과 함께 원팀코리아라는 사절단을 구성하여 사우디를 방문하고 양국간 협력사업들을 논의했다. 우리측의 이러한 노력이 이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사우디는 2030년 예정된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의 개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수도 리야드가 우리의 부산, 이탈리아의 로마 등과 함께 강력한 경쟁후보로 경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방한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사우디 ‘비전 2030’ 참여와 방산 협력 등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논의가 진전됐다. 40조원 규모의 26개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사실은 일단 우리에게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실제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테지만, 우리 기업들로서는 충분히 기대감을 가질 만하다. 사우디 언론들도 이번 방한으로 기대되는 양국간 경제협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시했다.

사우디 비전 2030: 탈석유 개방·포용 이슬람국가를

이번 방한 중에는 특히 사우디의 ‘비전 2030(Vision 2030)’ 이행과 네옴(NEOM) 신도시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기업의 참여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비전 2030은 2016년 4월 당시 부왕세자였던 살만의 주도로 입안하여 발표된 사우디의 국가 개혁 프로그램이다. 개혁의 전반적인 기조는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다변화하면서 비석유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사우디가 수십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오고 있는 국가적 목표이자 당면과제다. 이 계획은 경제와 사회, 문화 각부문에서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하여 사우디를 세계 15대 경제강국으로 끌어올리고, 아랍과 이슬람세계의 심장, 글로벌 투자의 파워하우스,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3대륙의 허브가 된다는 3대 비전하에 6대 프로그램과 7대 실행계획을 담았다.

이를 위해 국가개조 프로그램(National Transformation Program: NTP)을 실행하며 이를 지휘할 기관으로 내각 산하에 경제개발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nd Development Affars: CEDA)를 설립하여 그 의장을 살만 왕세자가 맡았다. 경제분야에서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와 PIF(국부펀드, Public Investment Fund)를 비롯해 공공부문을 개혁하고, 민영화와 인적자원 개발에 역점을 두며 경쟁력 있는 제조업, 신재생에너지, 산업장비, 금속광물과 관광산업도 적극 육성하며 신도시들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이 가운데 네옴 신도시 개발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참여문제는 이번에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홍해의 가장 안쪽 아카바만 연안의 타북 지방에 서울시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2만6500㎢ 면적의 신도시를 만든다는 이 사업은 총예산이 5000억달러(약 70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당초보다는 조금 지체되고 있지만 2025년까지 주요 공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네옴은 각종 최첨단 문명의 이기가 동원된 친환경도시가 될 것이며,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이슬람국가를 만들겠다는 살만 왕세자의 철학을 반영해 관광과 스포츠 등 신산업의 상징적 도시로 기획되고 있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최근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한국의 슈퍼주니어와 BTS 등의 공연이 이루어진 사실이 시사하듯이 엄격한 종교율법이 지배하던 나라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밖에도 그린 리야드, 킹 살만 에너지 공원 등 각종 대형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사우디 건설공사현장에 있는 정주영(왼쪽). 1970년대 중동건설붐으로 오일달러를 벌어들인 한국 기업인중 선두주자는 정주영 현대건설 창업주였다.
사우디 건설공사현장에 있는 정주영(왼쪽). 1970년대 중동건설붐으로 오일달러를 벌어들인 한국 기업인중 선두주자는 정주영 현대건설 창업주였다.

1970년대 중동붐과 2020년대 새 기회

한국은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과 아랍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로 인한 세계 경제의 오일쇼크 와중에 역설적으로 대규모 중동 건설붐을 누렸던 바 있다. 세계 경제가 치솟은 기름값으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겪고 있던 시기에 한국은 오일머니를 활용해 대대적인 개발 사업을 추진한 산유국들의 건설붐에 편승,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처음 수주한 이래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1983년까지 615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건설수주고를 기록했다.

건설수주는 관련 기자재 수출과 인력 진출 등에도 큰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총수출이 100억 달러를 처음 넘어섰던 해는 1977년인데, 이 해에 한국은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 무렵에 사우디는 미국 일본에 이은 한국의 3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바 있다. 한국 인력파견은 1975년 6천명에서 한 때는 20만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때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외국생활을 해보는 경험을 했다. 한국 기업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대규모 영업을 하는 국제화 경험을 본격적으로 한 후 한국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지속해왔다.

2022년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지금 세계의 상황이 팬데믹과 기후변화, 전쟁 등으로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울한데다 1970년대 중동 상황이 지금과는 다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도 돌파해나갈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훌륭하게 극복하면서 빠른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 우리의 자랑스런 현대사다.

살만 왕세자의 방한으로 온갖 화제가 만발하니 중동의 사막을 누비면서 현지 사정을 연구했던 학자의 한 사람으로 각별한 감회를 느끼며 이런 소식들이 모쪼록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주동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위촉전문위원

필자인 주동주(朱東柱)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의 위촉전문위원이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국제개발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에 근무하면서 정부, 학계,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오랜 동안 개발도상국 경제와 공적개발원조(ODA)를 연구하고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한 지구의 위기와 지속가능개발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위기의 인류,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는 있는가(2020) ◆수메르 문명과 역사(2018) ◆70억의 별, 위기의 인류(2016) ◆한국형 ODA 모델 수립(2012,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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